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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걸 다 놓고 싶을 때는 존재하기만 해

그녀가 가진 커다란 구멍이 채워진 순간

by 다움

우리만의 방식이 생기고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동거 라이프는 안정을 찾아갔어요.

하지만 인생은 평온해지면 늘 어디에선가 불안과 어려움이 툭 하고 던져주곤 하지요.

집 안이 안정되니 집 밖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녀는 일터의 문제로 인해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었어요.


이 시기 그녀의 퇴근길은 늘 눈물과 함께였습니다.

회사 밖을 나오면서부터, 지하철을 타고나서, 지하철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오면서, 집 현관문을 열고 나서..

갑작스럽게 터져 나오는 눈물을 막을 수 없었어요.

특히 집에 돌아와 그의 얼굴을 마주할 때면 정말 누군가 수도꼭지를 돌린 것 마냥 그녀의 눈에서는 눈물이 콸콸 쏟아졌지요.

그의 옷의 어느 한 부분은 늘 그녀의 눈물로 젖어있었다고 하면 믿으시려나요.

그녀는 울고 그는 늘 눈물을 닦으며 달래주는 일상이 몇 주간 계속되었지요.



그 와중에도 그녀는 포기하지 않겠다며 몸부림쳤어요.

회사에서 남아있는 에너지를 모두 불태우고 집으로 돌아왔고요.

때문에 집에서의 그녀는 무기력했습니다.

집에 오면 바닥에 쓰러져 공허한 눈으로 울고만 있었지요.


무너져있는 그녀를 마주하는 그는 마음은 너무나 아팠어요.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그녀를 지지해주고 싶었지요.

그는 늘 그녀가 가고자 하는 길을 가장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사람이었으니까요.

큰 그릇을 가진 그는 주 7일을 우는 그녀를 받아냈습니다.



주 7일 눈물을 흘리는 일상이 몇 주가 아니라 몇 달이 되어가며 문제는 심각해졌어요.

그는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퇴사를 이야기했습니다.

"포기하고 싶지 않은 그 마음은 알아.

하지만 스트레스로 지하철에서 쓰러질 정도면 그만둬야지..

퇴사하자.. 응?"


그녀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어요.

인정할 수 없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맞을 것 같기도 하네요.

아주 고심하고 고심해서 선택한 세 번째 회사였기에, 1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기간 내에 이 도전을 마무리해야 하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이대로 그만두는 선택을 한다면 과거의 나의 선택이 틀렸다고 인정하는 것 같았어요.

이 선택을 하면서 다른 기회들을 날려버린 과거의 스스로가 너무도 원망스러울 것 같았고요.


그녀가 인정할 수 없었던 것에는 스스로보다 더 큰 이유가 있었어요.

자신의 선택이 틀렸다고 인정하고 나면, 틀린 선택에 많은 사람을 끌어 들었다는 것도 인정해야 했으니까요.

인터뷰에서 진심을 호소하며 어렵게 모셔온 동료들이 마음에 아주 무거운 돌처럼 얹혀있었습니다.

심지어 그녀 주변의 지인도 그녀가 직접 추천해서 조인했으니..

그녀는 이제 포기해야 한다는 걸 인정하고 나면 찾아올 자괴감과 죄책감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어요.



그렇게 그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로 무너져갔습니다.

극단적인 생각이 무너진 그녀의 마음속을 조금씩 갉아먹고 있었고요.

'내 삶이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면 내 인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굳이 그런 인생을 살아야 할까?

그런 인생이 쓸모 있을까..?'

이런 극단적인 생각의 씨앗이 점점 싹을 틔워내려 하고 있었죠.


마음이 무너지니 몸도 무너졌어요.

위염과 위경련은 일상이 되었고 미주신경성실신이라는 지금껏 듣도 보도 못한 현상을 경험했습니다.

월요병이라고 하는 게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정말 병이 있나 싶을 정도로 일요일 밤마다 체하고 열이 오르는 패턴이 계속되었지요.


몸과 마음은 늘 연쇄작용으로 하나가 무너지면 하나가 덩달아 무너지고, 그 하나가 무너짐에 따라 다른 하나가 더 바닥을 치곤 하지요.

무너진 몸은 그녀의 마음에 '이 삶을 놓고 싶다'는 극단적인 생각을 무럭무럭 키워내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녀가 지금껏 <모 아니면 도>의 마인드로 살아온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어요.

그 당시의 여느 날처럼 불도 켜지 않고 바닥에 널브러져 울고 있던 그녀에게 그는 다가갔습니다.

그녀를 쓰다듬으며 이렇게 이야기했지요.


"있잖아, 나 당신을 평생의 동반자로 삼고 함께 살고 있는 거야.

그런데 당신을 동반자로서 바라봤을 때 참 불안한 점이 있어.

당신은 삶이 당신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면 다 놓아버릴 것만 같아.

내 옆에서 사라질 것만 같아서 너무 두려워.


그러니까 자기야.. 이거 하나만 기억해 줄래?

모든 걸 다 놓고 싶을 때는 그냥 존재하기만 해.

그럼 내가 어떻게든 당신의 일상 속에 행복을 다시 찾아다줄게.

당신이 내 곁에 있기만 하면 난 일을 그만두고 평생 돌아다니면서 살 수도 있어."



이 말을 듣고 그녀는 정말 말 그대로 오열했어요.

마음속에 뜨끈한 무언가로 가득 채워지는 듯 뜨거운 가슴을 안고 소리 내어 울었지요.


그가 건넨 그 말들은 그녀를 살리는 말이었습니다.

그 순간의 그녀뿐만 아니라 과거의, 미래의 그녀까지도요.

그녀의 가슴속 아주 커다란 구멍이 채워지는 순간이었어요.

늘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온 그녀의 결핍이 채워지는 순간..

존재만으로 충분하다는 말이 진심으로 이해되는 건 정말 이때가 처음이었습니다.


누군가는 '아니 무슨 말 몇 마디로 결핍이 채워져?' 하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다른 사람이 아닌 그가 건넨 말들이었기에 그녀를 온전히 채워줄 수 있었어요.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는 '할게', 애매한 것에는 '노력할게', 할 수 없는 것에는 '안될 것 같아'라고 명확히 이야기하는 사람.

그가 존재하기만 하면 다시 행복을 찾아다 준다는 말을 했다는 건 정말 그렇게 하겠다는 거예요.

말 뿐인 말이 아니라는 것을 그녀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안정을, 기반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

그런 그가 '평생 떠도는 삶을 살 수도 있다'라고 이야기한다는 건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보다 곁에 그녀가 있는 삶이 더 소중하다는 의미라는 것도 그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지요.



그녀는 그에게 약속했습니다.

모든 걸 다 놓아버리고 싶을 때도 삶의 끈만은 놓지 않겠다 약속했습니다.

그에게 삶의 동반자가 어느 날 갑자기 세상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주지 않기로 결심했지요.


그 결심을 하고 나니 퇴사는 더 이상 그리 큰 어려움이 아니었어요.

그녀는 이제 알게 되었으니까요.

'어떤 쓸모도 없는 상태의 나로도 충분한 사람이 나의 동반자'라는 것을,

그리고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을요.

존재하기 위해 기꺼이 퇴사를 선택하기로 했지요.


원하지 않는 대로 삶이 흘러간다 해도,

스스로를 원망하고 죄책감에 시달린다 해도

그녀는 그저 살아가기로 했습니다.

존재하기로 했습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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