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및 해외에 소외된 우리의 이웃들
'국내에 어려운 사람이 많은데 왜 해외의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 하나요?'
'그래도 해외 저소득층보다는 우리나라 저소득층이 더 잘 살고 복지혜택도 많지 않나요?'
'나라마다 복지정책이 있으니 우리가 아닌 각국이 스스로 자국의 저소득층 지원해야 하지 않나요?'
'우리도 어려울 때 도움을 받았으니, 이제는 도움을 줄 차례 아닌가요?'
어려운 이웃을 도와야 한다고 할 때마다 듣는 질문입니다. 국내 어려운 이웃을 도울 것이냐 해외의 어려운 이웃을 도울 것이냐는 질문에는 정답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어디에든지 존재합니다. 우리 앞집에 사는 이웃일 수도 있고,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일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도와야 하는 논쟁보다는 어려운 이웃들의 실질적인 삶을 직접 들여다 보고 도움을 주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부터 도와야 한다고 주장하시는 분들에게는 국내 사업을 후원하시고, 해외 어려운 이웃을 도와야 한다고 주장하시는 분들은 해외 사업을 후원하시도록 권유하고 있습니다. 사실, 현대사회에서는 가난이라는 것은 종식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어려운 이웃들을 생각해 주시고, 자기의 가진 것을 나누어주시는 마음이 따뜻한 후원자님이 계시기 때문에, 가난으로 고통받고 있는 우리의 이웃들이 조금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도움을 주는 것을 꼭 돈으로 후원하는 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 다른 사람의 고민과 고충을 들어주고, 무거운 것을 함께 들어주며 고통을 함께 하는 것도 도움을 주는 행동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돈으로 무언가를 도와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선한 마음에서 우러나는 작은 도움들이 모여서 어려운 이웃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입니다.
예전에, 제 마음을 감동케 했던 사연을 하나 들었습니다. 아침 일찍, 어떤 분이 목욕탕을 가셨습니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피로를 풀었습니다. 또한 몸을 구석구석 깨끗하게 씻고 개운한 마음으로 목욕탕을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집으로 가는 길에 구석을 하고 계신 분을 보게 되었습니다. 목욕탕 비용만 들고 오셨던 이 분은 무언가 도움을 드리고 싶었는데, 주머니에는 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구걸하시는 분에게 다가가셔서 힘내시라고 하면서 손을 꼭 잡아드렸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구걸하시던 분이 고맙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해다고 하십니다.
물론, 구걸하시는 분에게 돈으로 드렸으면 좋았겠죠. 하지만 제가 감동을 받은 이유는 그분은 구걸하시는 분이 도움이 필요한 나보다 낮은 그 어떤 존재라고 인식하지 않고, 나와 동등한 선상에 있는 똑같은 인간으로 구걸하시는 분을 바라봤다는 점입니다. 사실, 아무것도 먹지도 못해, 남에게 구걸한다고 인간으로서 자존심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잘 곳이 없다고 해서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분들은 지금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나와 동등한 존재인 것입니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세요.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경제적인 도움이 필요하고, 어떤 분들은 정서적인 도움이 필요합니다. 뉴스를 보면, 부모들에게 학대받는 아이들, 자식에게 버림받은 부모님, 누구 하나 돌봐주는 사람이 없어 고독사하는 우리의 이웃들에 대한 소식이 들려옵니다. 누군가 그들을 한 번만 이라도 살피고 돌보았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나만 잘 살고 잘 먹겠다는 이기적인 생각을 버리고, 우리 마을을 다 같이 잘 사는 마을로 만들겠다는 프로젝트 동참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