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같이 잘 사는 세상은 될 수 없는가?

양극화 현상으로 고통받고 있는 세상

by Jeremy
모두가 다 같이 잘 사는 세상이 될 수 없는가? 왜 가난과 기아는 종식되지 않는가? 어려운 이웃들을 어떻게 도와야 하는가?

이런 질문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이 세상은 왜 이리 불공평하고 빈부의 격차가 심한 것인가? 누군가는 하루의 수십만원의 식사를 하고, 어떤 사람들은 하루에 1달러도 없이 살아가고 있다. 다 같이 잘 사는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토머스 모어가 살던 1500년대의 영국은 현재의 모습과 많이 맞닿아 있습니다. 경제와 무역이 발전하면서 사회적인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런 문제에 대해 해결책으로 '유토피아'를 제시하였습니다. 유토피아는 그리스어의 'ou(없다)'와 'topos(장소)'를 조합한 말로, 이 세상에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의미합니다. 토머스 모어는 유토피아를 통해 그가 꿈꿔왔던 이상적인 세상을 제시하였습니다.


그렇다면, 토마스 모어 시대 이후부터 지금까지 변환 것이 있나요? 그가 제시했던 유토피아가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되었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현실은 아직도 경제적인 불평등으로 사회적 문제는 계속 발생하고 있고, 가난과 기아는 종식되지 않았습니다. 어찌 보면, 유토피아는 정말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럼, 우리는 유토피아를 영영 포기해야 하나요? 그럴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 유토피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는 우리가 바라는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의 최선을 다해 다 같이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바꿔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포기하는 그 순간, 더 큰 불평등이 찾아올 것이고 사회는 더 큰 수령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누군가는 유토피아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다 같이 잘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 가족이 도전하기로 하였습니다. 도전을 하는 이유는 우리 가족이 능력이 많고 돈이 많아서가 아닙니다. 어려운 이웃과 슬픔을 나누고 기쁨을 함께 하기 위한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우리 가족의 작은 마음이 있다면, 유토피아는 아니어도 다 같이 잘 사는 우리 동네는 만들 수 있겠다고 결론에 도달한 것입니다.


우리 가족은 '모두가 다 같이 잘 수 있는 우리 동네 만들기'라는 도전을 시작하였습니다. 우리 가족의 도전이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예상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다만, 우리 가족은 이 도전을 통해 정말 얻고자 하는 것은 우리의 작은 나눔과 도움이 더 큰 나눔과 도움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선한 영향력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끼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