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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니토끼 Nov 26. 2024

산책의 즐거움

일단 나오면 된다.

나는 집순이다, 아니 집순이였다.


외향형이고 활동적인 남자와 결혼을 해서 반강제적으로 집순이가 아니게 됐다.


아이들은 어쩜 이렇게 한쪽씩 닮았는지, 첫째는 밖에 나가는 걸 좋아하고 둘째는 집에 있는 걸 좋아한다.

막상 나가면 좋은데 나가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너무나 귀찮다.

이걸 둘째가 어찌나 빼다 박았는지 이 녀석을 끌고 나가려면 이런저런 설득과 회유, 협박까지 해야 할 때가 많다.

그리고 막상 나오면 “나오니까 좋네? 다음 주에 또 와야겠다. “ 란다. (물론 다음주가 되면 또 같은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는 것도 안다.)


요즘 산책하기에 최적의 날씨라 몇 번 공원 산책을 다녀왔다.

약간 쌀쌀한 온도에 따뜻한 햇볕, 호수의 반짝거림이 눈이 부시다.

오리는 거의 매번 보는데도 귀엽다.

나무 막대 위에 주르륵 잠들어 있는 오리들, 회의라도 하는 듯한 모습의 오리 다섯 마리.


지난주엔 보기 힘든 원앙도 보았다.

희한한 소리가 나서 가까이 가 보니 원앙이었는데, 원앙소리가 개 짖는 소리처럼 들린다는 걸 처음 알았다.


오후 3시 호수와 나뭇가지 사이로 햇빛이 반짝이는 게 너무 예뻐서 사진을 찍었는데 전혀 담기지 않았다.

“아… 하나도 안 담기네.”

“엄마, 눈으로 실컷 보고 기억해 두자.”라고 그렇게 나가기 싫어하는 둘째가 감상에 젖어 말한다.


“거 봐. 나오니까 좋잖아.”라는, 남편이 나에게 하는 소리를 내가 둘째에게 하고 있다.

과연 이 녀석, 다음 주엔 설득 없이 데리고 나올 수 있을까?


일단 나오면, 산책의 즐거움을 알게 된다.

매번 보는데도 달리 보이는 것들, 새롭게 발견하는 것들이 있다.


사람은 어쩜 이렇게 안 변하는지 아마 앞으로도 반은 남편에게 등 떠밀려 나오겠지만…

그래도 떠밀어주는 사람이 있어 다행이다.


반짝이는 햇빛과 잠자는 오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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