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는 것
지난주, 친구들을 만났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만나기 쉽지 않았지만 서울에 살 때는 그래도 일 년에 몇 번은 만났는데 이제는 연례행사가 되었다.
이왕이면 12월이 오기 전, 돌아다니기 좋은 날씨일 때 만나고 싶어 부랴부랴 약속을 잡고 어디서 만날지를 고심했다.
센트럴시티로 가야 하는 나와, 남부터미널로 가야 하는 친구로 인해 우리의 약속장소는 대부분 그 근처였다.
센트럴시티나 코엑스, 예술의 전당.
이번엔 한 친구의 의외의 발언으로 덕수궁에 가게 되었다.
“어디서 만날까?”
“덕수궁 돌담길을 걷고 싶어. 너무 걷기 좋더라. “
으응?
이 친구, 언제부터 이렇게 센티해졌지?
우리는 시립미술관에서 전시를 보고 덕수궁 돌담길을 걸었다.
친구는 연신 “너무 예쁘다.~“
“서울, 너무 좋다.”
“서울살 때는 서울이 이렇게 걷기 좋은지 몰랐어. “ 라며 감탄사가 끊이지 않았다.
다음 날은 경복궁을 걸었는데 “저 길 너무 예쁘지 않니?”
”저기 서 봐. 사진 진짜 잘 나오겠다. “ 하며 카메라를 들이댔다.
커다란 나무의 결을 보며 감탄하고, 땅 위로 드러난 나무뿌리를 보며 감탄했다.
예전엔 목적지를 향해 그것만 바라보며 걸었는데 지금은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인다고 했다.
서울의 각양각색의 건물들.
여기저기 골목길들.
‘어? 이런 친구가 아니었는데? 굉장히 시니컬한 친구였는데?
누구니 넌? 신생아야? 뭐가 이렇게 다 신기해?‘
마치 새로 태어난 듯, 보이는 많은 것들을 신기해하고 감탄하는 친구의 모습이 굉장히 낯설었다.
덩달아 나도 길가에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와 건물들을 새롭게 바라보며 걸을 수 있었다.
서울을 떠난 친구는 서울 예찬론자가 되었지만 그래도 역시 나는, 서울은 놀러 오는 게 더 좋다고, 사는 건 지방이 더 좋다고 생각했다.
내년엔 서울의 어느 곳에서 만날까? 어떤 것들에 감탄할까?
다음 만남이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