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좋은 도시

경주

by 앙니토끼

“수학여행 코스로 여행코스를 짠 거야?”

남편이 말했다.


우리가 가는 거의 모든 곳에 현장체험학습을 온 학생들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대릉원, 석굴암, 국립경주박물관, 동궁과 월지. 첨성대.

이런 곳들을 다 거쳤기 때문이다.


“어? 쟤네들 아까도 만났던 애들아냐?”


초등학생이나 중학생들이 많았는데 자기들끼리 장난치거나 지루하다는 표정으로 걷고 있었다.

우리 무리에도 그런 녀석이 하나 있었다.


“엄마, 힘들어.”

“엄마, 더워.”

“엄마, 언제까지 걸어?”

하며 보채는 둘째 녀석이.


이해할 수는 있다.

나도 어릴 때는 유적지 같은 거, 남의 무덤 같은 걸 재미도 없는데 뭐 하러 보나 생각했었으니까.



경주에 와서 하루 만 보 이상, 많은 날은 이만 보도 걸었다.


문화재가 많아서 주변에 고층 건물이 없었다.

굳이 고개를 젖히지 않아도 어디서나 하늘이 보였고 멀리 보였다.

그게 너무 좋았다.


4시간을 넘게 걸려 경주에 왔기 때문에 갈 수 있는 곳은 다 가 보고 싶었다.

그래서 조금 무리되는 코스를 짰다.


첫날은 비가 와서 국립경주박물관으로.

둘째 날은 문무대왕릉과 송대말 등대. 그리고 동궁과 월지.

셋째 날은 대릉원과 황리단길.

넷째 날은 첨성대와 루지.


의외로 아이들은 박물관을 좋아했다.

벽을 꽉 채운 토기 앞에선 버튼만 눌러도 작품이었다.


색감이 예쁜 토기들


특히 좋아했던 건 빔프로젝트로 쏴 주는 영상이었는데 너무 잘 만들어서 홀린 듯 두 번이나 감상했다.

빛이 가득한 영상


문무대왕릉은 송대말등대에 가다가 가는 길에 있어서 잠깐 들른 거였는데 별 거 없는 이곳도 아이들은 좋아했다.

파도가 엄청나게 높고 크게 쳤는데 웅장했다.


키보다 높은 파도

파도가 다가오면 도망가고, 다가오면 도망가고.

파도와 한참을 놀았다.

둘째 녀석 바지를 갈아입혀야 했지만.


근처에서 그냥 들어간 중국집도 의외의 맛집이었다.

여행은 묘미는 의외의 즐거움이다.

그냥 별생각 없이 간 곳이 좋을 때, 그냥 들어간 식당이 맛있을 때.


파도야 놀자


셋째 날이 되자 둘째 녀석이 한계가 왔다.

대릉원을 가는데 출발부터 징징대기 시작했다.

10월 초였는데도 걷기엔 조금 더운 날씨였다.


“또 걸어?”

“언제 도착해?”


사실 도착이랄 게 없었다.

대릉원 안을 구경하러 들어온 거니까.

봉긋봉긋 솟아있는 다 똑같아 보이는 무덤들 사이를 계속 돌아다니는 엄마가 이해되지 않는 둘째 녀석을 달래 가며 포토존에서 기어이 사진을 찍었다.


줄서서 기다려야 찍을 수 있는 포토존


다행히도 여행의 마지막날 루지를 타고 십원빵을 먹으며 둘째 녀석의 징징댐이 해소되었다.

아직은 활동적인 게 재미있을 나이였다.

비가 살짝 내려서 혹시 못 탈까 봐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부슬비라서 다행히 탈 수 있었다.


신난 둘째녀석


첫째는 감성적이라 그런지 걷는 것도, 보는 것도, 여행의 모든 것을 다 좋아했다.

펜션에서 귀여운 아기고양이들도 만나 여행의 즐거움이 극대화되었다.


멋진 동궁과 월지


경주는 선선한 날, 걷기 좋은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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