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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리인 Jan 06. 2021

축구보고 끼니 챙기고 출근하는 아침

토트넘 vs 브렌트포드 04:45 경기 전후의 사람이야기

 저녁 8시 칼같이 침대에 누웠다. 알람은 다음 날 아침 4시 반으로 맞춰놓고. 준결승 경기는 흔하지 않을뿐더러 무리뉴의 잉글랜드 컵 준결승의 7번 중 6번은 결승에 올린 기록까지 날 설레게 만들었다. 이번에 성공한다면 8번 중 7번을 결승에 보내는 결과를 내게 된다.

반드시 일어나리라는 집념의 알람

 새벽녘에 당연히 깰 것 같았다. 평소에 잠들지 않았던 시간이었고, 그저 수면시간만 맞추려고 하기에 몸에선 거부반응은 당연히 따라올 거라 판단했다. 그렇지만 다음 날의 승리를 맛보려고 난 반드시 일어날 집념으로 잠들었다. 


 결국 예상대로 중간에 깼다. 물 한 모금 들이키고 다시 누웠더니 이젠 더웠다. 평소 이불을 두 겹이나 덮고 무거움에 짓눌리는 느낌이 완전히 날 포근하게 만들었기에 겨울의 두 겹은 항상 함께였다. 손목을 들고 시간을 보니 22:06이란 숫자들이 탄식을 자아내게 했다.


 억지로 시간을 안 보려니 답답한 마음에 손목을 들어 올린 탓일까. 후회가 들기도 했다. 그래도 즐겁게 승리하는 토트넘을 보기 위해서 감내해야 하는 부분이라 생각하고 다시 잠자리에 들려고 생각을 다잡았다. 30분이 지나도 눈만 감고 있지 꿈나라 근처도 가지도 못해서 결국엔 잔잔한 음악을 틀고 가사를 곱씹었다. (자이언티 - 5월의 밤 요즘 진짜 진짜루 1픽)


 결국 잠에 들고 다시 눈을 떠봤을 땐 다행히 경기 시간과 가까운 3시 언저리였다. 그나마 안도의 한숨을 내쉰뒤, 라인업을 찾아봤더니 1.4군에 가까운 스쿼드였고 반드시 이기려는 조금의 움직임을 느꼈다. 유튜브를 키고 저녁 시간에 못 봤던 영상들을 보고 나니 어느덧 시간은 킥오프 직전이었다.


 컴퓨터 본체를 켜고 스포티비 나우를 들어가고 난 갑자기 귤이 먹고 싶었다. 베란다에 있는 박스 안의 귤은 칼슘제가 묻어있어 바로 먹기는 뭔가 찜찜해 ‘빨리빨리’, ‘곧 시작한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물에 씻어내고 자리에 앉았다. 전반 20분 만에 10개 가까이 되는 귤을 금세 해치웠다. 

©️토트넘 공식 홈페이지 / 시소코와 동료들의 셀레브레이션

 귤 까먹던 중간에 시소코의 골이 나왔다. 웬일로 저런 침투를 보여주나 싶었다. 그날따라 시소코는 몸놀림이 가벼워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평소에 꾸준히 보여주면 소원이 없겠다…) 그날 시소코와 오리에의 댄스 셀레브레이션은 귤을 입에 넣던 찰나에 뱉어버릴 만큼의 웃음을 줬다. 후반에 손흥민의 추가 골과 더불어 승부의 추는 매우 기울어졌고 경기는 결국 다수의 예상처럼 토트넘의 결승진출로 이어졌다.

©️Fotmob 캡쳐

 경기가 끝나고 난 이 틈에 조금이라도 더 자고자 10분 타이머와 전기장판 3단계를 맞춰놓고 잠시 잠들었다. 어찌나 달던지 너무 행복했다. 아침의 커피를 맛보기 위해 노력은 했지만, 시간에 쫓겼고 지난 아침들은 그냥 시리얼만 씹고 말았다. 오늘은 다르게 시작하자고 마음을 다잡고 결국 찬장을 열었다.


 일주일 만에 쓰는 모카포트를 들고 밸브 아래까지 물을 붓고 라바짜 커피통을 열어 커피 가루를 담아냈다. 누르지 않고 선에만 맞춰 가루들을 쓸어내린 뒤 단단히 윗부분과 결합해줬다. 불을 올리는 순간에 바로 시리얼과 우유를 붓고 커피가 추출되기만을 기다렸다. 커피가 나올 때 즈음 이미 우유는 바닥과 거리는 짧아졌고, 입으로 들이켰다. 


 얼마 만에 느끼는 커피 냄새였던가. 카페인이 몸으로 들어가기 전부터 코를 쑤셔댔다. 잔을 꺼내고 설탕 한 스푼을 넣어두고 손에 바나나를 들던 찰나에 추출이 끝나있었다. (얼마나 바삐 움직였는데도 장면 하나하나가 손에 기억도 남고 눈에서 아른거린다)

©️사리인 / 찰나의 순간에 사진은 놓칠 수 없었다.

 한 컵 추출 모카포트여서 그런지 세 모금만 들이키면 잔에서 커피는 사라진다. 곧바로 느껴지는 오랜만의 행복감은 그리 먼 곳에 있지 않았다. 오랜만에 즐기는 긴박함 속에서 여유는 날 정말 즐겁게 만들어 줬다. 


 아침에 출근하고 일찍 글을 쓰는 지금도 긴박함 속에서 여유를 즐기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그리고 새벽에 일어나 본 축구의 승리는 행복의 달콤함을 배로 느끼게해주고, 일탈로 느끼는 새로운 행복보다 지금의 멋쩍은 입꼬리가 더 즐거움을 표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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