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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봉기 Nov 12. 2020

부에노스 아이레스 여행

탱고

스페인어로 좋은 공기라는 뜻을 가진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남미 대부분의 도시처럼 스페인의 식민도시로 건설되었으며 아르헨티나의 정치와 경제 그리고 문화의 중심지이다. 남미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이자 남미의 파리로 불리며 유럽풍의 활기찬 분위기를 뿜어내는 부에노스 아이레스 여행의 시작은 5월 광장부터이다.


1810년 5월 25일 스페인의 식민지배를 종식하고 독립을 이룬 5월 혁명을 기리기 위해 이름 지어진 5월 광장은 붉은 벽돌로 지어진 대통령궁과 식민지 지배 당시 총독부로 사용했던 카빌도 그리고 메트로폴리타나 대성당으로 둘러싸여 있다. 또한 광장 중앙에는 5월 혁명 1주년을 기념하는 5월의 탑과 아르헨티나 국기의 창안자인 마누엘 벨이라 노장군의 기마상이 있다.



5월 광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통령 궁은 요새로서 만들어졌으나 스페인으로부터 독립 후 대통령 집무실로 사용되어 왔다. 이 곳 2층 발코니에서 뮤지컬과 영화로 유명한 <에비타>의 주인공인 에바 페론이 수많은 대중들 앞에서 연설을 한 곳으로 유명하다.



대통령 궁과 마주 보는 고색 찬연한 카빌도는 스페인 식민지 기간 동안 총독부로 사용되었던 건물로 독립 후에는 시의회로 사용되었다. 1810년 5월 25일 많은 시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곳 2층에서 독립선언이 이루어졌다. 2층은 현재 5월 혁명 박물관으로 식민지 당시 사용했던 각종 가구와 장신구 그리고 문서 등을 전시하고 있다.



5월 광장의 한편에 자리 잡고 있는 메트로 폴리타나 대성은 18세기 중엽부터 건축되기 시작하여 1827년 완성된 네오 클래식 양식의 대성당으로 성당 앞에 12 사도를 상징하는 12개의 기둥이 장엄하게 서 있다. 남미 출신으로 최초로 교황이 된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대주교로 계셨던 이곳 성당의 한 켠에는 남미 해방의 아버지라 불리는 호세 데 산 마르틴 장군의 관이 안치되어 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가장 번화한 보행자 거리 플로리다 거리를 지나면 산마르틴 광장이 나오고 그곳을 지나면 레콜레타 공동묘지가 나온다.  



레콜레타 지역은 1870년대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전염병이 퍼졌을 때 당시 부유층들이 지대가 높은 이 곳으로 몰려들면서 생긴 지역으로 현재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최고의 부촌 중 하나이다. 이곳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동묘지 레콜레타는 조각 박물관을 떠오르게 할 도로 수많은 조각상과 납골당이 자리하고 있다.


많은 여행자들이 이 곳을 찾는 이유는 에바 페론의 묘지를 보기 위해서이다. 1919년 5월 7일, 부에노스 아이레스 주의 작은 마을에서 사생아로 태어난 에바 페론은 가난하게 살아가면서도 배우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꿈을 이루기 위해 모델과 연극배우 그리고 라디오 성우 등 다양한 활동을 하였으며 그 결과 유명한 영화배우가 되었다.


1944년, 산 후안 지진이 발생하자 당시 노동부 장관이었던 후안 페론이 이재민 구호를 위한 기금 마련 행사장에서에바를 보고 사랑에 빠져 결혼하게 된다. 1946년 후안 페론이 대통령에 취임하자 영부인이 된 에바는 자신이 과거에 겪었던 가난한 이들의 삶과 고통에 가장 먼저 눈을 돌리고 본능적으로 노동자 및 하층민들에게 위한 정책을 펼친다. 또한 그녀는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에게 식량 배급 약속을 받거나 스페인에서의 아동 구호 활동으로 국민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이로 인해 남편인 후안 페론의 인기도 치솟아 올랐다.



1951년 그녀는 부통령 후보로까지 지명되지만 군부의 압력으로 후보 자리에서 물러났다가 그해 11월에 후안 페론이 재선에 성공하자 그는 자신의 아내를 영적 지도자의 자리에까지 올려놓았다. 하지만 1952년 7월 26일 건강악화로 에바 페론은 숨을 거두었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33세였다. 많은 아르헨티나의 국민들은 그녀의 죽음을 슬퍼하며 그녀를 영원한 퍼스트레이디로 기억했다.


장례 후 그녀의 죽음을 슬퍼한 남편은 그녀를 방부 처리하여 미라로 만들었는데 뒤이어 정권을 잡은 군부 정권이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탈리아로 그녀의 시신을 빼돌렸다. 그라고 군부정권이 물러나자 그녀의 시신을 되찾아와 이곳에 안치시켰다.


레콜레타 묘지를 나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 중 하나인  엘 아테네오를 방문한다.  



1919년에 건립되어 백 년의 역사를 가진 그랜드 스플렌디 오페라하우스 안에 자리 잡은 엘 아테니오 서점은 1929년에 영화관으로 개조되었다가 2000년에 현재의 서점이 되었다. 두꺼운 벨벳 커튼이나 발코니 등은 예전 오페라 하우스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지만 현재 간행되는 수 만 권의 책들이 전시되어 있어 서점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다.


서점을 나와 7월 9일 대로로 걸어오면 세계 3대 오페라 극장인 콜론 극장이 나타난다.



밀라노의 라 스칼라와 뉴욕의 메트로폴리탄과 함께 세계 3대 극장 중 하나인 콜론 극장은 1857년에 개관하였으며 현재 오페라와 발레 그리고 콘서트 등 다양한 공연이 이곳에서 열린다. 고풍스러운 외관과 큰 규모를 자랑하는 극장은 무대가 지하 20미터의 깊이에 설치되어 있어 음향이 매우 뛰어나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제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마지막 방문지인 라보카 지구로  이동하자.



강 하구라는 뜻을 가진 라보카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대표적인 명소로 19세기 후반 아르헨티나로 이민 온 유럽의 하층민들이 살던 가난한 항구 마을이었다. 당시 항구 주변에 살았던 가난한 이민자들은 항구에 쓰고 남은 페인트를 집으로 가져와서 칙칙한 집들을 원색으로 칠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를 지켜본 이 지역 화가 베니토가 오랜 기간에 걸쳐 집들을 채색하여 현재의 개성 넘치는 건물들이 늘어선 거리가 되었다.


이곳에서 라틴어로 <만지다 가까이 다가서다>라는 뜻의 탱고가 탄생하였다.



19세기 라보카 지구의 선술집에서 유럽의 이민자들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외로움 그리고 찌든 삶에 대한 애환을 달래려 밤이 되면 거리로 나와 탱고를 추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탱고는 그들의 삶에 유일한 위로이자 희망이 되었으며 탱고의 격정적인 감성과 강렬한 리듬은 이민자의 나라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음악과 춤이 되었다.  


라보카에서 탱고의 기원을 조금 알자 호기심이 더해져 탱고 공연장으로 갔다.



7시부터 시작된 간단한 탱고 강습과 와인 시음회는 여행자의 마음을 점점 들뜨게 한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자랑인 두터운 스테이크로 저녁식사를 마치자 정확히 10시부터 공연이 시작되었다.


공연 시작과 함께 피아노와 첼로 그리고 2대의 바이올린이 탱고 특유의 무거우면서 슬픈 소리를 내는 악기 반고 네온의 소리에 맞춰 애절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잠시 후 남녀 무희들이 입장하여 뜨거운 조명 아래 우울하면서도 관능적인 춤을 추기 시작한다. 여자 무희는 무표정한 표정으로 다리를 굽히지 않은 채 격조 있는 동작으로 보는 이들을 마음을 사로잡는가 하면 남자 무희는 격렬하지만 절도 있는 동작으로 무대를 사로잡는다. 그리고 남녀 무희의 현란한 춤이 절정에 이르면 여자 무희는 남자 무희에게 자연스럽게 몸을 맡긴 채 혼연 일체가 된다.



공연의 중간중간 젊고 어린 무희들 사이로 탱고 강습을 해 준 중년의 강사 모습이 보인다. 원숙하고 자연스러우며 또한 절도와 우아함이 그녀의 몸에 배여 있다. 무슨 일이든 한 길을 걸어가는 사람의 아름다운 뒷모습이 그녀에게 보인다.



공연이 막바지에 이르자 남녀 가수가 나와 모든 무희들과 함께 에바 페론을 기리는  <Don't Cry for me Argentina> 를 부르면서 화려하게 공연을 마무리 한다. 2시간 가까이 되는 외롭고 슬프지만 매혹적인 탱고 공연은 한 달 가까이 혼자 여행한 여행자의 마음을 위로하며 인생의 슬픔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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