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아름다운 빙하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의 마지막 일정이 빙하를 보는 일정이었지만 빙하가 호수 너머 너무 멀리 있어서 빙하를 감상하는데 늘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서 빙하를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 엘 칼라파테로 이동한다. 푸에르토 나탈레스에서 국경을 넘어 5시간 버스를 타면 아르헨티나의 작은 마을 엘 칼라파테가 나타난다.
아르헨티나의 최남단 도시인 엘 칼라파테는 살아 있는 페리토 모레노 빙하를 만나기 위한 베이스캠프로 아기자기한 분위기의 낮은 집들이 북유럽의 한적한 시골 마을을 떠올리게 한다. 1937년 페리토 모레노 국립공원이 생기면서 많은 관광객이 몰리는 관광도시로 발전한 이 곳은 옥빛 호수들이 에워싸고 있으며 그 호수들 위로 거대한 빙하들이 자리하고 있다.
엘 칼라파테는 파타고니아 지역에서 자라는 검푸른 야생 베리의 이름으로 이 열매를 먹은 사람은 파타고니아 땅으로 다시 돌아온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빙하투어를 위해 새벽 일찍 일어나 도시락을 준비하고 투어버스를 기다리는데 비가 보슬보슬 내린다. 버스는 중간중간 중간 호텔에 들러 사람을 모두 태운 후 모레노 빙하로 출발한다. 1시간 정도 지나자 버스는 빙하 투어가 시작되는 선착장에 도착한다. 비는 그쳤지만 구름이 잔뜩 낀 가운데 버스에서 내리자 빙하가 쩍 갈라져 물속으로 가라앉는 무시무시한 소리가 심상치 않다.
배를 타고 오늘의 첫 번째 코스인 빙하 트레킹을 시작한다.
배가 호수에 드리우자 어느새 햇빛이 비치고 거대한 빙하가 바로 내 눈앞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 비현실적인 풍경에 배안의 모든 여행자는 밖으로 나와 탄성을 지르며 사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다.
모레노 빙하 바로 앞에 있는 선착장에 도착한 우리는 거대한 빙하 앞에 서서 한 동안 그 맑음에 취해 할말을 잃는다.
선착장에서 자유시간을 가진 뒤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숲을 헤치고 조금 걷자 빙하 입구에 있는 산장이 나온다. 이곳에서 단단히 매어주는 아이젠을 착용하고 빙하투어시 주의할 점에 대한 교육을 받은 후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본격적인 빙하 트래킹을 시작된다.
빙하로 한 발 한 발 내딛자 눈에 빠지는 발자국 소리와 함께 싱그러움이 온몸을 감싼다. 빙하를 보는 것만 해도 더할 나위 없는데 그 속을 걷는다는 생각만으로 짜릿함과 흥분이 온몸에 요동친다. 빙하는 생각보다 푹신하고 결이 무척 부드러웠다.
수만 년에 걸쳐 세워진 페리토 모레노 빙하는 거대한 안데스 산맥의 봉우리로 둘러싸인 인간이 접근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빙하이며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빙하이다.
빙하 트레킹의 하이라이트는 블루 아이스 지역이다. 이 곳은 수 없이 쌓인 눈이 얼음으로 변하는 동안 그 속에 갇혀 았던 많은 공기방울이 압착되거나 빠져나가면서 그 사이로 빛이 들어가 생기는 곳으로 밝고 청명한 파란빛은 여행자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는다.
빙하 트래킹의 마지막은 빙하 위에서 수정같이 맑은 빙하를 깨뜨려 브랜딩 한 위스키 한잔이다. 가이드가 현장에서 만들어주는 위스키의 시원하고 감미로운 맛은 다른 곳에서 절대 흉내낼 수 없는 맛이다.
다시 배를 타고 육지로 건너와 전망대로 이동한다. 전망대에 도착하자 점심시간을 포함하여 2시간의 자유시간이 주어진다. 간단히 커피와 점심을 먹은 후 전망대로 간다.
숲 사이로 문뜩문뜩 보이다가 계단을 내려서자 눈부신 빙하가 내 눈 앞에 나타났다. 바로 지금 여기서 보고 있는데 내 눈 앞의 광경이 믿기지 않는다. 마치 여행잡지의 조작된 사진을 앞에 두고 있는 듯 빙하는 비현실적으로 장대한 풍광을 펼쳐 보인다. 옆에서 일본인 여행자들이 연신 <스고이>를 외쳐된다.
이것은 소리 없는 외침이다. 수천만 대군들이 앞 다투어 달려오다 그대로 멈춰 서서 인내하는데 그 속으로 견딜 수 없는 푸른 병사들이 시퍼런 멍처럼 섬뜩하게 곳곳에 살아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 그 위로 회색의 빙하는 앞의 물결을 넘고 넘어서 층층이 장대한 행렬을 이룬다.
아르헨티나의 탐험가 프란시스코 모레노가 1877년 발견한 페리토 모레노 빙하는 다른 빙하가 형성되는 2,500m의 고도보다 낮은 1,500m의 저지대에 형성되어 있다. 그 이유는 이 곳이 남극과 가깝기 때문이라고 한다. 1981년 유네스코 자연유산으로 지정된 이곳 역시 지금처럼 지구 온난화가 계속된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사라질지도 모른다. 빙하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는 듯 하다.
당장 멈추어라.
삶의 아름다움은 지금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