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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봉기 Nov 13. 2020

이과수 폭포

악마의 목구멍

새벽 4시에 호텔에서 출발해 부에노스 아이레스 공항으로 이동한다. 오늘은 남미 여행의 필수 코스인 이과수 폭포를 보는 날이다. 공항에 도착하여 첫 비행기를 타자 쏟아지는 잠으로 인해 바로 잠들었는데 이과수 폭포가 보인다는 기장의 안내에 따라 깨어났다. 창 밖을 보니 이과수 폭포가 그 거대한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엄청나게 거대한 물이란 뜻의 이과수 폭포는 아프리카의 빅토리아 폭포와 미국의 나이아가라 폭포와 더불어 세계 3대 폭포 중 하나이지만 규모 면에서 세계 최고를 자랑한다. 이곳은 원래 파라과이 땅이었으나 삼국동맹전쟁에서 파라과이가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에게 대패하여 이과수를 두 나라에 넘겨줘야 했다. 그래서 이과수 폭포는 최대 낙차 80m 이상인 악마의 목구멍을 중심으로 아르헨티나 국립공원과 브라질 국립공원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1984년과 1986년에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에 각각 등록되었다.


비행기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숙소로 이동 후 바로 이과수 폭포로 향했다. 아르헨티나 이과수 국립공원의 입구를 지나 숲 속을 조금 걷자 악마의 목구멍으로 가는 기차가 대기하고 있다.




여행자를 실은 오픈식 기차는 밀림을 헤치고 한발 한발 천천히 상부 폭포를 향해 달려간다. 주위는 푸르고 하늘은 더할 나위 없이 맑다.


오래전 아프리카 여행을 할 때 빅토리아 폭포를 만났다. 요하네스버그에서 블라와요를 거쳐 빅토리아 폭포에 도착하기 수 킬로미터 전부터 하늘로 치솟는 물기둥의 모습과 다음 날 옷을 흠뻑 젖은 채 폭포 앞에 섰을 때 그 웅장함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때 처음으로 신이 살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몇 년 후 미국을 여행하다가 찾아간 나이아가라 폭포는 기대 이하였다. 빅토리아 폭포에 비하면 규모면이나 감동의 수위에 있어서 상대가 되지 않았다.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 부부가 이과수를 방문했을 때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불쌍하다. 나의 나이아가라야



그 후로 늘 궁금했다. 세계 3대 폭포 중 마지막 남은 이과수 폭포는 어떤 모습일까. 그렇게 꿈처럼 남아있던 이과수 폭포가 지금 내 눈 앞에 있다. 어느덧 기차는 악마의 목구멍으로 가는 종착역에 도착했다.



기차역에서 악마의 목구멍까지는 20분 정도 걸어야 한다. 우거진 밀림 사이로 무수한 새들이 지저귀고 마치 나비 박물관에 온 듯 수많은 나비가 하늘을 뒤덮고 있다. 숲 속에서 빠져나오자 물 살 빠른 강이 나타나고 강 위로 드리워진 다리가 보인다. 다리를 건너자 악마의 모습을 한 폭포가 하늘에 닿을 듯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그 장엄한 자태를 드러낸다.   



게걸음 치듯 천천히 폭포로 다가가자 수많은 물거품이 여행자의 앞길을 막는다. 난간을 잡고 한발 한발 나아갈수록 온몸이 악마의 목구멍 속으로 빨려 들 것 같다. 온몸이 다 젖은 채로 전망대 끝에 다다르자 초당 2천 톤이 쏟아지는 악마의 목구멍이 비로소 내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푸르다 못해 시린 하늘 아래 거대한 물줄기가 미친 듯이 아래로 뛰어들고 있으며 그 여파로 엄청난 물보라 폭풍이 하늘로 올랐다가 어느덧 사라진다. 그리고 다시 거대한 물줄기가 아래로 급격히 달려들고 웅장한 물보라 폭풍이 쉬임 없이 이어지는데 이 모든 것이 순식간이다. 마치 급격한 지각변동으로 거대한 지구 내각판이 일어나 한꺼번에 지구의 모든 물을 쏟아붓는 듯하다.


누구든 이 곳에 서면 모든 걱정과 아픔을 악마의 목구멍에  내려 보낼 수밖에 없다. 지옥과 천당은 같은 곳에 있는 것인지 모든 것을 쏟아붓는 악마의 목구멍 옆에 항상 무지개가 떠 있다.



이과수 폭포는 두 번 보아야 한다. 아르헨티나에서 이동식 오픈 기차를 타고 오르면서 한 번 보고 브라질로 넘어가 버스를 타고 정상까지 간 후 천천히 유람하면서 한 번 더 보아야 한다. 취향에 따라 거친 폭포가 생동감 있게 다가오는 아르헨티나 코스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멀리서 웅장한 폭포의 전체적인 조망을 사진에 담을 수 있는 브라질 코스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과수 폭포를 제대로 체험하려면 폭포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기차를 타고 악마의 목구멍에서 출발해 기착 역에 내리면 폭포를 감상하는 산책로가 나온다. 산책로 중간에 보이는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보트 선착장이 있다.



안전장비를 하고 보트에 오르면 보트는 거친 엔진 소리와 함께 폭포로 다가간다. 폭포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른 보트는 전속력으로 폭포로 돌진했다가 포기한 듯 중간에서 엔진을 멈추자 보트는 저절로 폭포에서 밀려난다. 그렇게 몇 번인가를 반복하다가 마침내 있는 힘을 다해 보트는 질풍처럼 폭포 속으로 돌진한다.



자신의 영혼을 포기하고 진리를 알기 위해 악마와 타협한 파우스트처럼 살아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우리는 악마의 입으로 거침없이 들어간다.



거친 물보라와 하늘을 뒤흔드는 폭포 소리에 눈과 귀가 마비된 우리에게 폭포는 혼돈과 절망 그리고 환희와 기쁨을 순식간에 쏟아낸다. 가쁜 숨을 진정시킬 사이도 없이 거침없이 떨어지는 폭포를 헤치고 한가운데에 들어서니 문뜩 내가 지금 여기 살아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워진다.


잠시 후 보트가 폭포에서 밀려 나오자 환한 빛으로 가득한 물줄기가 나를 평화롭게 바라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탑승자들의 함성소리를 뒤로하고 보트는 다시 한번 폭포 속으로 돌진한다. 그러기를 여러 번 하자 이제 나는 물도 뜨거운 태양도 밀림도 두렵지 않다. 내가 그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인생이 리셋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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