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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봉기 Sep 15. 2020

부다페스트 국립미술관

억압 속에 피어난 자기 정체성

부다 왕궁은 현재 국립미술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헝가리 국립미술관에서 헝가리 화가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헝가리에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한 번 헝가리 사람이 되면
영원한 헝가리 사람이다.



그만큼 헝가리 사람들은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는 뜻이다.


19세기 초 헝가리는 150년이라는 세월 동안 이슬람의 오스만 제국 하의 지배에서 막 벗어났지만 곧 이웃나라 합스부르크 제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이에 헝가리인들은 합스부르크 제국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고자 1848년부터 2년에 걸쳐 독립 투쟁을 하였지만 수많은 국민들의 피를 뿌린 채 실패하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편입된다.


2차 세계대전 중 독일과 오스트리아에 가담한 헝가리는 패전국이 되어 영토의 절반을 잃으며 소련의 위성국가가 되었다. 이후 독립을 위한 투쟁을 계속하다가 1989년 소련이 무너지면서 독립한다.  


오랜 세월 동안 수 없이 많은 외세의 억압 속에 살아온 헝가리 민족은 어느 민족보다 자유와 독립에 대한 욕구가 간절했다. 19세기 말 헝가리인들의 내면적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한 화가가 미할리 문카치이다.  



헝가리의 대표적인 사실주의 화가인 그는 외부 세력의 오랜 식민지하에서 국민들이 겪은 슬픔과 고통 그리고 자유를 향한 욕망을 잘 보여주는 작품을 선보였다.


헝가리 국립미술관에 있는 그의 작품 <하품하는 소년>을 먼저 감상하자.



소년은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듯 침대에서 일어나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있다. 어디선가 들어오는 빛이 그의 얼굴과 침대보를 비추며 일상의 모습을 강조하고 있다.


흐드러진 옷과 맨발 그리고 아무렇게나 놓인 실내화가 그것을 더 잘 보여준다.



하품을 하는 소년의 얼굴에는 어떠한 고민도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아무런 일 없이 하루의 일상을 사는 모습은 평화롭고 정겹다. 소중한 일상을 너무나 오랫동안 가져 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 소년의 꾸밈없는 얼굴과 모습은 깊은 울림을 전달한다.


미하이 문카티는 일찍 부모를 여의고 어릴 때부터 목수의 조수로 일했으나 그림에 대한 재능을 인정받아 부다페스트와 빈 그리고 뮌헨에서 미술교육을 받았다. 그는 초기에는 농민과 가난한 사람들의 일상을 주로 그렸다.


1869년 미하이 문카치는 최후의 날을 앞두고 있는 사형수를 묘사한 <사형수의 마지막 날>을 그리면서 유명해졌다.  



어둡고 간결한 실내 분위기가 인상적인 이 작품은 그의 첫 번째 걸작으로 1870년 파리 살롱전에서 격찬을 받으며 그는 순식간에 인기 화가가 되었다.


이후 미하이 문카치는 프랑스 사실주의와 다른 준 사실적이고 준 아카데믹한 작풍으로 성서 이야기를 묘사한 거대한 종교화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으며 19세기 헝가리를 대표하는 사실주의 화가로 큰 족적을 남겼다.
 


위의 작품은 그의 전성기에 그린 예수 3부작이다.

예루살렘에서 예수가 고발당하여 당시 로마제국의 총독이었던 빌라도 앞에서 재판을 받은 후 골고다 언덕 위의 십자가에서 못 박혀 돌아가신 내용을 자신의 민족의 고난에 비유하여 그린 작품이다.


작품을 살펴보면 인물을 포함하여 배경과 장식적인 요소들이 매우 정교하게 묘사되어 있으며 색채 또한 다양하고 풍부하게 표현되어 있다.


이러한 걸작들을 남긴 그는 비평에 지나치게 민감하여 심한 우울증으로 고생했으며 결국 정신병원에 들어가 1900년에 독일의 본 근교 엔데니히에서 생을 마감했다


문카치와 더불어 낭만적 사실주의 화가로서 헝가리의 자연 풍경을 아련하고 낭만적인 시각으로 그린 화가가 팔 진예이 메르제이다. 그의  초기 대표작인 <양귀비 꽃이 핀 들판>은 같은 시기에 프랑스 퐁텐블로의 사실주의 화풍에 견줄 만큼 서정적인 농촌 풍경을 그리고 있다.



헝가리 국립미술관에 전시된 또 다른 그의 작품은 <열기구를 탄 사람>을 감상하자.



동화 같은 이 작품은 그 시대 살았던 헝가리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아주 오래전부터 인간은 하늘을 날고 싶어 했다. 하늘을 날고 싶은 욕망은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 자유롭게 살고 싶은 마음에서 나온다.


작품 속 남자는 열기구를 타고 두둥실 하늘을 향해 올라가고 있다. 그는 지상에 두고 온 소중한 인연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고 있다. 맑고 푸른 하늘에 떠 있는 구름들과 자유롭게 날고 있는 새들은 희망을 상징한다.


다음 그의 작품은 <5월의 피크닉>이다.


국립미술관의 입장권에 인쇄되어 있는 이 작품은 5월 어느 날 사랑하는 연인과 친구들이 소풍을 가서 서로 이야기를 하거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풍경을 보여준다.


세밀하게 그리지 않아 사람들의 얼굴이나 옷의 아름다움은 보이지 않지만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언덕에 비치는 따스한 빛이 소풍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을 선사하고 있다.


이보다 더 평화롭고 행복하며 따뜻한 풍경은 없을 것이라고 작가가 웃으며 말을 건네는 것 같다.


진예이 메르제는 젊은 시절 화단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며 은둔생활을 보내다가 1890년대 후반에 그의 작품이 인정받게 되면서 헝가리를 대표하는 화가로 활동하였다. 이후 그는 부다페스트의 미술학교장을 지냈기도 했다.


전 유럽이 모더니즘이라는 새로운 창조적 기운으로 꿈틀대는 20세기 초에 헝가리의 화단에서도 파리에서 유행한 인상주의와 아르누보 양식에 영향을 받은 작품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화가가 <오르페우스>를 그린 카롤리 페렌치였다. 그는 자신이 살아왔던 고향의 자연  풍경과 자신의 내면적 환상 세계가 뒤섞인 오묘한 분위기의 사실주의 화풍을 구축하면서 서구의 급진적인 모더니즘과는 차별화된 작품을 선보였다. 그의 대표작인 <오르페우스>를 감상하자.


 


작품에서 오르페우스가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다.

오르페우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최고의 시인이자 음악가로 아폴론으로부터 하프를 배워 그 명수가 되었다.


그래서 그가 하프를 연주하면 야수들과 초목마저 매료되어 황홀해하였다고 한다.


사랑하는 아내 에우리디케가 독사에 물려 죽었을 때 오르페우스는 에우리디케를 되찾기 위하여 저승길까지 쫓아가서  저승의 왕 하데스 앞에서 리라를 연주하며 구슬픈 노래를 부른 결과 죽은 아내를 되살렸다고 한다.


그의 작품을 계속 보고 있노라면 아름다운 몸매와 섬세한 손 끝 그리고 간절한 눈빛으로 노래하고 있는 오르페우스의 음악이 화면 가득히 울려 퍼지며 헝가리 사람들의 메마른 영혼을 울리고 있는 것 같다.


다음은 그의 또 다른 작품인 <설교하는 예수이다>



산 위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하늘나라가 그들 것이다.
슬퍼하는 사람은 위로를 받을 것이며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신을 만날 것이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예수님의 산상설교를 보여주는 작품 중에 가장 아름다운 이 작품은 성경 속 시대가 아니라 헝가리의 자연을 배경으로 헝가리의 전통 복장을 한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설교를 하고 있다.


시대를 초월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 작가는 시적인 정서로 우리에게 위로와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있다.


이 작품의 작가인 페렌치 카롤리는 헝가리의 가포슈봐르 출생으로 그곳에서 사망하였다. 그는 뮌헨을 거쳐 파리로 가서 선배 문가치에게 배우고 그 후 나비파에 가입하여 장식적인 작품을 많이 그렸다.


마지막으로 리플 노나이의 <새장을 들고 있는 여인>을 감상하자.



새장을 들고 있는 영묘한 숙녀는 장식적인 선이 들어간 검은색 드레스를 입고 있다. 그녀 뒤로 곡선의 팔걸이가 있는 소파의 어렴풋한 윤곽과 그리고 나무 의자의 옅은 윤곽이 유일하게 실내를 표시하고  있다.


어두운 배경과 대조적으로 내부에서 생긴 빛이 평면적인 여인의 얼굴과 새장을 받치고 있는 손에 떨어지고 있다. 리플 노나아는 작품에서 극도로 색채 사용을 절제하며 어둡고 침체된 분위기에서 한 줄기 빛으로 강조된 신비로운 여인의 모습에서 그녀의 조용하고 소박한 기쁨을 보여주고 있다.


1890년대에 파리에 살았던 그는 당시 파리에 살고 있었던 위대한 미국의 화가 휘슬러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그의 작품에 휘슬러의 작품 속에 보이는 단일한 색조 속의 여성 들의 모습이 운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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