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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빛 Aug 17. 2021

시간은 부모님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며칠 전 아침, 설거지를 하는 중이었다. 엄마에게 전화가 왔길래 반갑게 받았다.


“잘 잤니? 밥은 먹었니?”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건넸지만, 목소리가 떨리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무슨 일이 생겼음을 직감했다.


“엄마, 무슨 일이야?”


엄마는 잠시 말끝을 흐리더니, 곧 본론을 꺼냈다.


“아빠가 오늘 새벽에 입원하셨어”


아빠는 집에 손님이 오지 않는 이상, 술을 잘 마시지 않는다. 담배는 피우긴 하지만 그렇다고 건강이 나쁘거나 지병도 없다. 엄마는 몸이 약한 편이라서 가끔 입원을 하긴 했는데, 아빠는 한 번도 입원을 한 적이 없다. 아빠는 몇 년 전 내가 그 고약한 독감을 당신께 옮겼을 때도 타미플루 한번 안 먹고 자연치유를 한, 대단한 면역력(?)의 소유자다. 아빠는 아직도 시골에 몇백 평의 규모로 소소한 농사를 짓는다.

그런 아빠가 입원을 했다니.


아빠는 전 날 저녁 평소와 다름없이 식사도 잘했고 잠도 잘 잤다고 한다. 그런데 새벽에 화장실을 간다고 잠깐 일어났는데, 어찌 된 일인지 하늘이 빙글빙글 돌더란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어지러움에 아빠는 그냥 주저앉았고, 엄마는 너무 놀라서 119를 불러 바로 응급실로 갔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코로나였다. 부산도 요즘 병원 출입이 굉장히 까다롭다. 엄마는 응급실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바깥에서 입원 서류만 작성하고, 계속 어지러움을 호소하는 아빠를 문밖에서만 지켜보다 그냥 집에 돌아왔다고 한다.

아빠는 뇌 ct도, 피검사나 기타 검사들에서도 다 별 이상이 없어서 입원을 먼저 하고 아침에 이비인후과 진료를 보기로 했다.


“이런 일이 처음이라서 무서웠어.”


나는 떨리는 엄마의 목소리에 곧장 부산으로 향했다.





아빠는 MRI와 이비인후과 검사들을 잔뜩 받고도 이상이 없다고 나왔다. 그러나 담당의가 조금 더 지켜보자고 했으므로, 아빠는 며칠 더 입원을 하며 추이를 지켜보기로 했다.

새벽에 급하게 입원을 한 아빠는 속옷이나 칫솔 등 개인물품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엄마와 아빠의 옷과 물건을 챙겨서 병원으로 향했다. 물론 병원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아빠에게 전화로 내려오라고 한 후, 입구에 상주한 직원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면 물건을 건네줄 수 있다. 아빠를 볼 수 있는 시간은 딱 그 때, 약 10초 정도가 전부였다.


저 멀리 흰머리가 성성한, 낯설지만 낯익은 어떤 할아버지가 링거를 끌고 걸어왔다. 처음에는 아빠인지 못 알아봤다. 평소 아빠의 모습과 너무 달랐다. 하얀 환자복을 입고 걸어 나오는 아빠의 모습은 그저 이웃집 할아버지 그 자체였다. 아빠는 내가 보이자 뭐하러 부산까지 내려왔냐며 전화로 구시렁대었다. 별일 아닌데 왜 말을 했느냐며 엄마에게 따지면서.


우리 아빠, 참 많이 늙었다.


난 아빠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그렇게 흰머리가 많았던가. 주름이 저렇게 많았던가. 키가 약간 줄어든 것 같기도 하고. 얼굴은 왜 저렇게 그을린 건지. 그러게 밭에 갈 때 모자를 쓰라고 그렇게 잔소리를 해도 쓰지도 않더니……


늘 곁에 있는 아빠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잘 없었기에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멀리서 제 3자처럼 서로에게 비치는 모습은 어색하고 쓸쓸하기 그지없었다. 서로가 서로를 마치 타인처럼 바라볼 뿐이었다.


나는 짐을 아빠에게 건넨 후, 밥 잘 챙겨 먹으라는 손 시늉과 함께 활짝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아빠도 고개를 끄덕거리며 환하게 웃었다. 나는 아빠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렇게 아빠를 바라봤다.


아빠가 탄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나는 걸어 나오면서 소리 내어 엉엉 울었고 엄마는 당황했다.


“아니…… 엄마, 내가 몰랐네.”

“뭘?”

“우리 아빠가 많이 늙었다는 사실을.”


엄마는 피식 웃으며 그걸 이제 알았냐고 했다.


“네가 몇 살인데. 당연히 아빠도 늙지.”





아빠가 없는 집은 늦가을처럼 쌀쌀하고 허전했다.

나는 엄마와 저녁을 간단하게 먹은 , 피곤하다는 엄마 옆에 같이 누웠다.


“ 내가 네 할머니한테 뭐가 제일 후회되는지 아니?

자주 연락을 못 드린 거, 자주 찾아뵙지 못한 거, 그거였어. 젊을 땐 먹고살기 바빠서 나도 내 엄마를 잘 찾아뵙지 못했고, 게다가 그땐 ktx 같은 게 있었나? 부산에서 의정부를 한번 가려면 기차만 6-7시간을 타고 가야 했어. 그래서 1년에 한 번이나 갔었나……

좀 살기 편해졌다 싶어 지니 그땐 엄마가 옆에 안 계시더라. 지금 계시다면 맛있는 것도 많이 사드리고 싶고, 자주 가서 보고도 싶고 한데… 늘 엄마가 많이 보고 싶어.”


나의 외할머니. 엄마는 막내딸이었다. 그런 막내딸이 멀리멀리 시집을 갔으니 할머니는 늘 엄마를 그리워했다. 할머니는 내가 중학생 때 췌장암으로 돌아가셨는데, 엄마와 내가 마지막으로 본 할머니의 모습은 복통으로 엄청 힘들어하시는 모습이었다. 그날 엄마는 두 눈이 퉁퉁 붓도록 밤새 울었다. 후회의 눈물이었다.


“ 그러니까 너도, 엄마 아빠 살아있을 때 효도해.

효도가 별 거 아니야. 그저 전화 한번 더 하고, 너네 가족 행복하게 살고, 멀리 살아 힘들지만 그래도 한 번 더 찾아오는 거. 그게 효도야. 알았어?”


할머니가 계시던 그때로 시간을 돌리고 싶은 엄마의 마음을 절실하게 느낀 찰나였다.




아빠는 노화와 스트레스로 인한 일시적인 증상이라는 최종 소견을 듣고 퇴원을 했다. 집에 와서 편하다고 환하게 웃는 아빠를 보니 비로소 마음이 스르르 녹는 기분이다.


시간은 부모님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리고 그 당연한 사실을 우리는 늘 망각하고 산다. 바쁜 날들이지만 하루에 한 번은 꼭, 부모님께 전화를 하리라 마음먹었다. 나는 엄마처럼 후회하기 싫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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