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2막이 시작되었다. 1막은 질풍노도의 시간이었다. 장사라는 전쟁터에서 생존할 수 있는 힘을 배웠다. 그리고 생존을 넘어 진짜 내 것을 찾았다.
나는 1막의 시간에서 광고비를 쓰지 않고 인건비를 줄이지 않았다. 광고를 해서 많은 손님이 들어온다고
해도 실력이 없으면 광고는 무용지물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맛을 성장시키는 시간에 집중했다. 맛있는
음식으로 오롯이 승부하고 싶었다.
이런 시간 덕분에 단골손님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루 두 번씩 오시는 손님도 생기고, 일주일에 한 번은
내 요리를 먹어야 한다는 손님도 생겼다. 그분들은 내 음식을 먹으면 자석처럼 끌린다고 칭찬해 주었다.
내가 팥으로 메주 만들었어도 먹어 줄 수 있는 신뢰가 생긴 단골손님이 되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가족이 되어 가고 있었다. 나의 2막의 에너지가 이런 곳에서 나온 것 같았다.
매장을 혼자 운영할 수 있게 매뉴얼을 바꾸어도 힘들었다. 주문받고, 요리하고, 서빙하고, 설거지하고, 다음 날 영업 준비하고 모든 것을 혼자 해야 했다. 예상했던 일이지만 몸도 지치고 우울했다. 쓴 한약을 하루 종일 머금고 있는 것 같았다. 인생의 쓴맛을 제대로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런 시간을 보내기 위해 내게 사탕 같은 보상이 필요했다. 매장을 11개월만 영업하기로 했다. 일 년에 한 달은 여행을 하는 것이었다.
나의 한 달 살아보기 여행은 새로운 미각을 찾는 시간이었다. 이 시간이 나를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었다.
나는 매년 프랑스 요리 중 낯선 메뉴를 정하고 맛집을 찾아 파리행 비행기를 탔다.
낯선 식 재료가 익숙해지게 전문 식당에서 먹어보고, 요리도 해보고 낯선 프랑스 요리를 친숙하게 만든
시간을 보냈다.
요리 책을 보기 위해 공부한 프랑스어는 재래시장에서 장을 보고, 식당에서 주문하고,
물건을 살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 유창한 프랑스어 실력은 아니었지만 혼자서도 지낼 만했다.
미슐랭 별점 받은 식당에서 코스요리도 먹어보고, 수 만개의 식 재료가 있는 박람회도 다니고, 주말에 여는 새벽 시장에서 할머니가 만든 청국장 같은 치즈도 먹어보고, 모네, 마네, 헤밍웨이처럼 벨 에포크 시대의 문호들이 다녀간 식당과 카페도 가고, 프랑스의 요리가 일상이 되는 여행을 했다. 그리고, 파리는 살고 싶은 나라가 되어 갔다.
여행을 다녀오면 현지에서 구해 온 식 재료와 새로 알게 된 레시피로 푸드 콘서트를 열었다. 푸드 콘서트는 주제에 맞는 요리를 설명을 들으면서 식사하는 것이다. 그림을 잘 감상할 수 있게 큐레이터가 있듯이 설명을 듣는 식탁은 시각과 미각이 열어 준다.
생후 한 달 된 송아지로 만든 요리, 민물고기로 만든 추어탕 같은 부야베스, 고기에 내장을 다져서 오븐에서
중탕으로 만들어 내는 편육을 닮은 테닌, 메밀전병 같이 얇은 크레페, 육회처럼 만든 비프 타르타르, 갈비찜을 닮은 부르기뇽을 먹으러 다녔다. 낯선 요리들을 먹으면서 푸드 콘서트를 할 생각에 꼼꼼하게 요리에 대해 물어보고 기록했다. 파리에서 돌아오는 가방은 언제나 새로운 식재료와 도구와 요리책으로 채워졌다. 푸아그라, 납작 복숭아 콩 포트, 구리 스튜 냄비, 수비드 머신, 트러플 소금, 향신료가 담겼다. 파리에서 먹은 요리를 재현할 욕심으로 수화물 요금은 초과 비용을 내야 했다.
매장에서 파리에서 맛본 요리를 재현하기 위해 연습하고 메뉴로 만들었다. 그리고 반응이 좋은 메뉴들은 푸드 콘서트의 주제가 되었다. 여행에서 먹었던 요리의 에피소드와 설명을 한식과 비교해서 친숙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단골손님 중에 음악을 하는 분들이 있어 동참해 주었다. 색소폰, 바이올린, 판소리까지 매년 매회마다 다채로운 연주자가 함께 해 주었다.
주제에 맞게 짠 코스 요리를 먹으며 진행자인 내가 요리를 설명하고 손님과 소통했다.
푸드 콘서트를 참석할 정도면 가족 같은 단골손님이었다. 그래서 가족들의 잔칫상을 차리는 기분이 들어 준비가 힘들어도 기뻤다. 푸드 콘서트는 내게 성장을 멈추지 않게 하는 샘이 되어 갔다. 나비효과처럼 푸드 콘서트를 참석하지 않은 손님에게도 새로운 메뉴는 인기 메뉴가 되고 , 비어 가는 접시가 늘어 갔다.
절망과 좌절의 시간 속에서 계산기를 내려놓고, 육체에 아픔에서 고정관념을 내려놓고, 전쟁터 같은 현실에서 꿈이 생겨나고 그 꿈을 찾아 떠난 여행에서 혜안을 찾았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도어스 앤 테이블을 이어가고 있다. 내가 있는 곳은 10년 전만 해도 섬에 있는 오두막처럼 혼자였다. 내 매장 주변으로 상권이 만들어지고 있다. 한산했던 주말은 오가는 사람들과 차로 몸살을 앓고 있다. 코로나 19로 멈춘 시간 속에서 나의 매장 중심으로 열 개 넘는 카페와 식당이 문을 열었다. 길이 없던 곳에 길이 생겼다. 올해는 푸드 콘서트를 못했다. 코로나로 매장은 멈추었다. 하지만, 나는 브런치에 글을 쓰고 배달 앱에 입점했다. 길이 만들어진 이곳에서 나는 성장을 위해 변화라는 옷을 입으려 한다. 나의 변화는 새로운 꿈을 꾸게 한다.
친한 지인의 어머니가 제주도에서 해녀를 하신다. 몇 개월에 한 번씩 지인에게 성게알을 따서 보내신다.
그 성게알이 나한테까지 온다. 바로 먹을 수 있게 포장해서 보낸 성게알에서 바다 향기가 난다.
자식을 먹이겠다고 바닷속에서 숨을 참고 딴 엄마의 사랑이 담긴 성게알을 보면 가슴이 먹먹하다.
새로움을 향해 가는 이들에게 엄마의 사랑과 격려만큼 좋은 보약이 있을까? 엄마의 사랑을 담는 레시피이다.
성게 알은 단백질이 풍부하고 , 아연과 같은 좋은 무기질이 많아 면역 강화에 좋은 재료이다. 성게 알은
비린 맛이 없고 단맛이 난다. 날 것으로 먹어도 좋지만 크림소스와 고소한 맛과도 잘 어울린다.
크림 파스 타을 만들 때 마지막에 넣으면 성게 알 향이 크림소스에 베어 들어가면 풍미가 좋아진다.
성게 알에 윤기 살아지면 접시에 담고 블랙 올리브를 토핑 해서 낸다.
tip> 요리 마지막 약한 불에 넣는 것이 중요하다. 강한 불에서 익히면 성게알 식감이 거칠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