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하고부터 우리는 앞으로 지을 집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정확히 설명하자면 ‘했다’기 보다 ‘들었다’. 주로 말하는 쪽은 남편이었고, 나는 듣는 쪽이었으니까. 남편은 건축 관련 일을 하다 보니 자기 집이나 작업실을 짓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내 기억 속의 단독주택은 그리 살고 싶은 집은 아니었다. 서울로 대학을 오기 전까지 나는 지방 소도시에서 나고 자랐는데 우리 집은 동네에 숱한 단독주택 중 하나였다.
‘단독’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이웃집들과 앞뒤, 양옆으로 붙어 있었고, 마당은 잔디나 나무 대신 관리가 쉽고 주차가 용이한 시멘트를 깔아 놓았다. 창으로 보이는 풍경은 회색 담벼락이 전부였으며 방범이 허술해 간혹 도둑이 들기도 했다.
그뿐인가. 월세를 받기 위해 몇 개의 방을 세놓으면서 세입자와의 크고 작은 갈등도 있었다. 게임에 빠져 방 밖으로 나오지 않던 젊은 남자는 몇 개월 치의 방세를 내지 않은 채 야반도주했다.
다방에 다니던 끝방 언니의 집에 연인이라 주장하던 남자가 찾아와 유리창을 부수고 언니의 머리채를 잡고 마당으로 끌고 나온 일도 있었다. 공교롭게도 부모님이 외출한 저녁이어서 당시 중학생이던 나는 거실 창문으로 이 모든 광경을 지켜봐야 했다. 다행히 부모님이 곧 돌아오시고 경찰도 출동해서 상황은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현관문이나 창문을 꼭꼭 잠그고 있어도 누군가가 쉽게 들어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매 순간 공포였다. 그 사건 이후 우리는 온 가족이 외출할 때면 집에 사람이 있는 것처럼 보이려고 텔레비전과 라디오를 크게 틀고 불도 켜놓은 채 나가곤 했다.
물론 나쁜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름이면 언니들과 마당에 빨간 다라이를 놓고 신나게 물놀이를 하고, 겨울에는 마당에 쌓인 눈을 맨 처음 밟으며 즐거워하고 눈사람을 만들어 장독대에 올려놓았다. 엄마는 내가 만든 눈사람이 부서지지 않게 장독대 뚜껑을 곱게 들어 옆에 놓고 김치를 꺼냈다.
두발 자전거를 배운 곳도 우리 집 마당이었다. 아빠와 마당에서 배드민턴을 치기도 했는데 내가 셔틀콕을 자꾸 지붕 위로 날려버려서 아빠가 사다리를 놓고 몇 번이나 오르락내리락해야 했다. 그래도 재미있었다.
텔레비전을 너무 많이 보면 머리가 아팠는데 그럴 때면 잠시 밖으로 나와 하늘의 별을 보며 머리를 식혔다. 겨우 식힌 머리로 다시 텔레비전을 보러 들어가긴 했지만.
언니들과 마당에서 고기를 구워 먹다가 모자란 것이 있으면 엄마가 거실 창문을 열고 바로 건네주었다. 엄마가 밥을 챙겨주던 고양이가 고마운 마음에서인지 쥐를 물고 와 자꾸 문 앞에 놓고 가던 것도 기억이 난다.
돌이켜보면 무섭고 싫은 기억보다 즐거운 추억이 더 많다. 특히 마당에서 보낸 사계절은 계절마다 다른 즐거움이 있었다. 비록 시멘트로 덮인 마당일지라도 아이에게는 신나는 놀이터였다. 그래서인지 아이를 낳고 난 뒤 집을 짓자는 남편의 이야기를 좀 더 귀담아듣게 된 것 같다. 내 아이도 어릴 적의 나처럼 마당에서 여러 추억을 쌓길 바라는 마음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