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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치 Jul 02. 2021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은 설계

무심코 지나가다 남편 모니터를 봤는데 낯선 집이 펼쳐져 있었다. 저 건물은 뭐지, 새로운 일을 하는 건가 싶어서 물어봤다.


나: 이건 누구 집이야?

남편: (당연한 듯) 우리 집.

나: 아... 그렇구나.


남편 책상에서 물러나 내 자리에 앉았다. 며칠 전 마지막으로 봤을 때와는 또 무언가 바뀌어 있다. 우리 집은 중정을 품은 디귿자가 되었다가, 박공지붕의 이층집이 되었다가, 별채가 딸린 니은자 집이 되기도 한다. 때로는 격하게, 때로는 소심하게 변화를 거듭하는 중인데 그 배후에는 남편이 있다.  


집을 지을 때 내가 바란 건 두 가지였다. 첫째는 화장실이 두 개일 것(정확히는 '변기'가 '두 개'이다. '식구'로서 끼니를 같이하다 보니 화장실을 가는 시간이 겹친다. 니 시간, 내 시간 모두 소중하니 그 안에 있는 사람을 미워하지 말자는 취지다), 둘째는 독립된 내 작업실이었다. 두 번째 조건에는 다소 괴상한 조건이 덧붙었는데 방의 폭은 내 양팔을 벌리면 닿을 정도로 좁고, 창문이 하나도 없었으면 좋겠다고 했다(좁은 건 가능하나 창문은 환기와 햇빛을 위해 있어야 한다고 남편에게 반려당했다).  


이 두 가지 외에는 남편에게 일임했기에 설계가 바뀔 때마다 그저 변기가 두 개인지, 내 작업실이 어디인지만 확인했다. 작은 땅 위에서 내 작업실은 사방팔방 옮겨 다녔다. 2층 외딴방이 되었다가 마당 한쪽 구석에 바퀴 달린 이동식 창고가 되었다가 어느 날은 침실 옆에 얌전히 자리하고 있었다. 이제는 그저 어디든 붙어 있기만 해 다오, 하는 심정이다. 상황은 남편 작업실도 다르지 않다. 2층의 가장 경치 좋은 자리를 차지했다가, 면적이 안 나와서 아예 없애버렸다가, 지금은 1층에 둥지를 틀었다.


남편은 설계가 끝날 때마다 모형을 만들었다. 스케치업 화면과 크게 다를까 싶었는데 실물 크기를 그대로 줄여 만든 모형은 집을 객관적으로 보게 해주었다. 분명 컴퓨터 화면에서는 좋아 보였는데 막상 모형을 만들어 앉혀 보니 생각했던 것과 다른 경우도 있었다. 우리 집만 떼어 놓고 보면 괜찮지만 이웃집과 어우러지지 못하거나 땅과 묘한 긴장감을 형성하기도 했다. 폼보드로 거칠게 만든 모형인데도 이렇게 보니 다르다며 감탄했더니 남편이 말했다.


"이래서 모형을 꼭 만들어야 하는 거야."


그렇게 만든 모형이 어느새 마을을 이루었다.


긴 작업의 결과 우리는 남편의 작업실은 1층에 별채처럼 만들고 모든 방은 본채 2층에, 그리고 본채 1층에는 부엌과 거실을 두기로 했다. 창문 위치나 크기 하나 정하는 것도 내 집이라 그런가 쉽지 않다는 남편에게 사실 어떤 집이든 네가 짓는 거면 좋을 거라고 말하지는 못했다. 네 살 아이의 키에 맞춰 앉았다 일어났다 하며 아이 눈높이에서 보일 마당 풍경까지 신경 쓰는 남편의 정성을 알기 때문이다. 


이제 진짜 끝났다, 하면서도 남편은 여전히 설계 도면을 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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