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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치 Feb 17. 2022

오늘도 택배 기사님과 합을 맞춘다

전원주택으로 이사 오면서 택배 받는 게 걱정이었다. 주소를 잘 못 찾으시면 어쩌지, 대문 앞에 뒀다가 누가 가져가기라도 하면? 남편이 만들어 놓은 우편함과 택배함을 알아보실까?(나도 남편이 이게 우편함이고, 이건 택배함이라고 설명을 해줘서 알았다. 그만큼 우편함의 모양이 일반적이지 않다)


오밀조밀 모여 있던 은평의 빌라에 살 때에도 비슷한 애로 사항이 있었다. 건물 출입구가 두 군데라 이 지역에 처음 오신 택배 기사님은 자주 헷갈려했다. 비슷한 주소의 옆 건물 택배가 우리 집 앞에 덩그러니 놓여 있기도 했다. 더구나 빌라 1층인 탓에 집 현관문을 열고 나가면 바로 차가 다니는 도로였다. 택배를 어디에 놓을지 묻는 전화에 현관문 앞에 놔주시면 된다고 하자 처음 온 택배 기사님은 당황하며 물었다.


"여기 길바닥에요?"


나는 웃으며 답했다.


"네, 거기 길바닥이요."


당황스러운 첫 소통을 마친 뒤로는 비교적 수월하게 택배가 왔다. 당시 아이 이유식을 시킨 적이 있는데 냉장 제품이고, 박스 바깥에는 '우리 아이가 먹는 소중한 이유식입니다'라고 큼지막하게 쓰여 있었다. 평상시 '택배 문 앞에 보관합니다'라는 건조한 메시지를 일괄로 보내던 택배 기사님은 그날 이유식을 보고는 마음이 급하셨나 보다. '택배 문 앞에 보관합니다. 햇빛 비춥니다. 빨리 들이세요' 하고 다급한 문자를 남기셨다. 아이와 산책 중이던 나는 그 문자에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그 뒤 아파트로 이사하고는 동과 호수만 정확히 적으면 택배 기사님의 전화를 받을 일은 없었다. '오늘 배달이 출발합니다' 또는 '물건을 배송했습니다'라는 알림만 울렸다.  


하지만 전원주택은 또 다르지 않은가. 갓 발급받은 따끈따끈한 도로명 주소는 아직 포털 지도에 등록도 되지 않은 때였다. 택배가 제대로 오려나 기다리던 차에 택배 기사님의 전화가 왔다. 주소가 검색이 안 된다는 말에 도로명 주소가 아닌 기존의 '산'으로 시작하는 번지를 말씀드렸다. 그러자 '아, 거기 이사 왔어요? 새로 지은 집이죠?' 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작은 동네다 보니 오며 가며 공사하는 걸 보신 모양이다. 내 택배가 제대로 오겠구나 직감한 나는 반가움에 '네!!' 하고 외쳤다. 그 뒤 내가 시킨 택배들은 하나둘 무사히 도착했다.


보통 네 군데의 택배사가 우리 동네에 오는데 물건을 전달하는 방식이 조금씩 다르다. A사는 번거로울 텐데도 꼬박꼬박 주차장 쪽문 앞에 곱게 쌓아 주신다. 아마 대문 앞보다 쪽문이 눈에 덜 띄니 분실 위험을 줄이려고 그러시는 것 같다. B사는 길에서 물건이 안 보이게끔 대문 코너를 공략하신다. C사는 무거운 건 대문 앞에, 가벼운 물건은 대문 안으로 던져주신다. 그러면 나는 얌전히 낙하물을 챙겨 들어온다. D사는 유일하게 우리 집의 우편함과 택배함을 알아봐 주시고 고지서를 그곳에 넣고 가신다.


오늘은 우연히 대문을 열었다가 마침 우리 집에 배달 중이던 A사의 기사님과 마주쳤다. 가까운 대문을 놔두고 몇 걸음 더 가야 하는 쪽문 앞에 가지런히 놓아주시는 분이 누구일까 궁금하던 차였다.


"안녕하세요, 늘 감사합니다."


반가워 건넨 인사에 기사님은 '네' 하시더니 대문에 서 있는 나를 보고도 역시나 쪽문 앞에 택배를 놓고 서둘러 가셨다. 언덕을 올라가는 택배차에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말하며 집에 왔다. 오늘도 이렇게 택배 기사님과 합을 맞추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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