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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치 Aug 04. 2022

아이들의 대결

잘 놀던 두 아이가 갑자기 대치 상황이 된다. 볼이 씰룩이더니 둘 중 한 명이 냅다 소리를 지른다.

    

“우리 집은 벽돌집이야!”

“우리 집도 벽돌이야!”     


벽에 금칠을 한 것도 아니고 흔한 재료인 벽돌로 싸움이 붙었다. 자기들도 뭐가 좋은지 모르면서 ‘질 수 없다’는 기세와 다섯 살의 허세로 일단 외치고 본다. 저 멀리서 안 듣는 척하면서 혹시 싸움이 커질까 봐 아이들을 주시하고 있는 자기 엄마를 흘긋거리며.      


“우리는 빨간 벽돌이야!”

“우리 집은 하얀 벽돌이야!”     


빨간 벽돌은 윗집 아이고, 하얀 벽돌은 우리 집 아이다. 남편이 들으면 우리 집 벽돌은 ‘하얀색’이 아니라 ‘밝은 미색’이라고 정정해줄 테지만 나는 참는다. 하얀색이나 미색이나 내 눈에는 비슷하다. 두 아이는 여전히 자기들의 취향은 반영 안 된, 부모가 고른 벽돌 색깔로 싸우고 있다. 벽돌로는 답을 낼 수 없는지 입을 앙다물었다가 다른 주제가 나온다.     


“우리 집은 2층이야!”

“우리 집도 2층이야!”     


전원주택은 보통 2층을 기본으로 짓는다. 다양한 전망을 확보하고, 한 층당 지을 수 있는 면적에 제한이 있기 때문이다. 110평가량 되는 우리 땅은 건폐율이 20퍼센트인 보전관리지역과 40퍼센트인 계획관리지역이 섞여 있다. 땅이 100평일 경우 한 층당 지을 수 있는 면적이 보전관리지역은 20평, 계획관리지역은 40평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를 토대로 계산하면 우리 땅은 한 층당 27평까지 지을 수 있다.


1층만 짓기엔 집이 좁으니 처음 설계할 때부터 2층은 당연히 올린다고 생각했다. 윗집 아이의 땅도 우리와 비슷한 크기다. 반면 땅이 300평 정도 되면 보전관리지역이라고 해도 한 층당 300평의 20퍼센트인 60평을 지을 수 있다. 2층 욕심이 없다면 이럴 때는 단층으로 넓게 짓는 편을 선호하기도 한다.


서로의 집에 수시로 다니는 두 아이는 잠시 생각에 잠긴다. 아마 2층에 있는 자기들의 방을 오갔던 기억을 하는 것 같다. ‘그래, 쟤네 집도 2층이었지.’ 이번에도 싸움은 무승부다. 윗집은 다락방이 있어 3층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는데 윗집 아이가 그건 깜빡한 것 같다. 공정한 싸움을 위해 윗집 아이에게 이 사실을 알려줄까 하다가 어미된 마음으로 참는다. 하지만 방심한 사이 새로운 공격이 들어온다.      


“우리 집 정화조는 여기 있어!”     


'정화조'라는 전문용어까지 등장했다. 지지 않고 대거리하던 하얀, 아니 미색 벽돌집 아이가 정화조에서 막혔다.      


“그게 뭔데?”

“아, 정화조! 똥 묻는 거”     


윗집 아이는 집 짓는 동안 아빠와 매일 현장을 방문하고 자기 집이 올라가는 모습을 지켜봤다고 한다. 그래서 집이 지어진 과정도 소상히 알고 자기 집에 대한 자부심도 남다르다. 그 자부심이 정화조까지 이어질 줄은 몰랐지만.


똥, 방귀, 오줌은 아이들이 가장 흥미로워하고 재미있어하는 주제인데 그런 정화조를 모르다니. 아이의 상심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낙담하는 아이를 보고 윗집 아이가 우리 아이의 손을 잡고 가서 정화조 위치도 알려주고 정화조에 산소를 공급해주는 장치도 친절히 설명해준다. 우리 아이는 그저 신기해서 고개를 끄덕이며 친구의 이야기를 경청한다.      


“엄마, 왜 우리 집에는 이거 없어?”

    

아이가 눈물을 글썽이며 나에게 묻는다.     

 

“우리 집에도 똑같은 거 있어. 가서 볼까?”    

 

집에 가자고 하면 더 놀 거라고 도망 다니는 아이가 오늘은 어인 일로 순순히 내 손을 잡고 따라나선다. 윗집 아이가 대문까지 나와서 배웅해주며 당부한다.     


“집에 가서 정화조 잘 있나 봐!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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