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인상에 쉽게 좌우되는 성격은 아니다. 사람을 잘 본다고 생각했지만 처음 느낌과 달라지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대학교 오티 때 처음 봤던 친구는 불만이 가득하고 같이 어울리길 싫어하는 듯이 보였지만 지금은 가장 친하고 마음을 터놓는 친구가 되었다.
두 번째 회사로 이직한 뒤 내 사수가 될 사람을 소개받은 순간, 아 잘못 걸렸구나 싶었다. 깐깐하고 고리타분한 사람으로 보였다. 하지만 3년 넘게 지내면서 그 사수는 회사에서 여러모로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지금 내 인생에서 두 사람을 빼고는 이야기가 되지 않을 정도로.
전원주택을 짓기로 하고 땅을 알아보기 시작했지만 느낌이 오는 땅은 없었다. 남편은 집이 앉혀질 향, 건축 면적, 동네 분위기, 이웃집 들을 면밀히 살폈지만 내 대답은 항상 시큰둥했다. 땅을 보면서도 느낌 타령이냐며 남편에게 구박을 받았지만 나도 어쩔 수 없었다.
전 재산을 뛰어넘는 액수를 지불하고 지을 집을 느낌 하나만으로 선택할 순 없지만 그래도 내게는 땅이 주는 느낌이 중요했다. 물론 이건 남편이 다른 모든 세세한 조건을 충분히 살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서 가능했다. 일 년 넘게 땅을 보러 다녔지만 보면 볼수록 집을 짓는 건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느낌이 오는 땅이 없었다.
하지만 이 땅을 보는 순간 다른 땅은 볼 필요가 없겠구나를 직감했다. 그만큼 땅이 주는 느낌이 편안했다. 왜 그런가 생각해 보니, 그동안 내가 ‘느낌’이라는 모호한 개념으로 뭉그러뜨렸던 조건들이 비로소 이 땅을 통해서 구체화되어 나타났기 때문이다.
난 산 속에 있는 집보다 집에서 산이 멀리 보이는 곳이 좋았다. 그리고 마을과 동 떨어져 있는 집이 아닌 마을 속에 있는 집, 그것도 외지인 마을에 있는 집을 원했다. 원주민 텃세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내게 꽤 큰 걸림돌이었다. 나는 어르신들과 싸워서 이길 자신이 없다.
그리고 땅이 너무 크면 오히려 주눅이 들었다. 그렇게 큰 땅을 관리할 자신도 없거니와 마당이나 집에 누가 침입해도 모를 것 같았다. 이 땅은 계획관리지역이 섞여 있긴 하지만 면적의 대부분이 보전관리지역이라 건축 면적이 우리의 기대에 못 미친다. 그마저도 옹벽 때문에 꽤 많은 면적이 삭감되었지만 감수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내 마음을 뺏은 건 흐무러지게 핀 목련과 벚꽃 나무였다. 우리가 처음 이 땅을 본 것은 4월의 어느 날이었다. 옹벽 아래에 있는 앞집의 키 큰 나무들이 높이 솟아 한창 꽃을 피우는 때였다. 멀리 보이는 산에는 초록 나무가, 눈 바로 앞에는 하얗게 핀 목련과 분홍빛 벚꽃이 어우러져 있었다. 액자처럼 들어온 이 풍경에 우리 세 식구가 사는 모습이 자연스레 그려졌다.
그 뒤로도 몇 군데의 땅을 더 봤지만 이미 마음에 쏙 든 땅이 있어서인지 단점만 보였다. 이 땅을 처음 본 뒤 3개월을 고심하던 우리는 결국 이 땅을 계약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