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넘게 산 은평구를 떠나 경기도로 이사 온 것은 남편이 사무실을 강동구로 옮긴 영향이 크다. 그 전 사무실인 한남동까지는 은평구에서 다닐만했지만 강동은 아주 멀었다. 서울의 서쪽 끝 은평에서 동쪽 끝 강동으로 출퇴근하는 것은 사람을 하루가 다르게 축나게 했다. 길어진 운전 시간 만큼 내 걱정도 늘어났고, 남편의 피로도도 올라갔다.
남편과 나는 결혼 후 서울에서 경기도로 장거리 출퇴근을 했었다. 나는 서울에서 파주로, 남편은 경기도 구리로. 당시 직장이 파주출판단지에 있었기에 내 출퇴근 루트는 '마을버스(놓치면 도보 13분)-지하철-광역버스' 조합이었다. 운이 좋아 시간이 딱딱 맞으면 1시간 10분, 운이 보통인 날은 1시간 20분, 조금씩 핀트가 어긋나고 마지막 광역버스가 핵폭탄을 안겨주면 편도 2시간이 훌쩍 넘는 길이었다.
3년을 꼬박 이렇게 다니다 보니 장거리 출퇴근이 삶의 질을 얼마큼 떨어뜨리는지 몸소 체험했다. 출근하면서는 퇴근 걱정, 퇴근하면서는 다음 날 출근 걱정이었다. 출퇴근만으로 지친 우리는 대화할 기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때 경험으로 직주근접의 중요성을 깨닫고 은평을 떠나 남편의 사무실 근처로 이사하기로 했다. 네이버 부동산으로 매물을 검색하고, 직접 찾아가 동네를 둘러봤다. 둘이 살던 신혼 때와 달리 식구가 늘어 두 살 아기가 있기에 육아 환경도 고려해야 했다.
아이는 새벽부터 일어나 밖에 나가자고 문에 매달려 울었다. 오프로드 걸음마를 마스터하고, 세상 모든 게 신기하며, 전능감에 휩싸인 두 살이었다. 하루 두세 번씩 동네 산책을 가고 놀이터에 출근 도장을 찍었다. 갈 때는 걸어가거나 유모차에 얌전히 타고 있어도 올 때는 안아달라고 떼를 쓰기도 해서 허리춤에는 아기띠를 매고 나가야 했다. 인도와 차도가 혼용된, 울퉁불퉁한 길을 유모차를 끌고 다니다 보면 한 번의 외출로도 나는 녹초가 되었다.
이번에 이사 갈 집은 놀이터가 가까이 있고, 인도와 차도가 구분되어 있는 곳이면 좋겠다고 하니 답은 아파트였다. 우리 둘 다 아파트에 살아본 적이 없어서 이번 기회에 경험해보자는 생각도 있었다. 서울은 오래된 아파트도 임대료가 너무 비싸서 경기도로 눈을 돌렸다.
마침 남편 사무실에서 차로 15분 거리인 경기도 하남에 신도시를 만드는 중이었다. 그중 가장 먼저 지은 아파트가 입주를 시작했는데 신축 아파트라 물량도 많고 전세가도 서울보다 저렴했다. 주변이 온통 공사판이고 기반 시설이 전혀 없어서 공사장 속 섬 같았지만 대단지 신축 아파트라 시설은 좋았다. 우리는 은평구 집을 임대 주고, 이쪽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아파트에는 놀이터가 4개나 있어서 아이가 놀기에 최적이었다. 이 4개의 놀이터만 돌아도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아파트에 있는 어린이집에도 들어가게 되어서 내 개인 시간도 생겼다. 운이 좋은 건지 층간소음도 피해 갔다. 윗집은 사람이 안 사는 건가 싶을 만큼 조용하고, 다행히 아랫집으로부터는 아직 연락을 받은 적이 없다. 같은 어린이집에 다니는 학부모들과도 인사를 하게 되어 육아 동지도 생겼다. 어린이집에서 하원하면 자연스레 놀이터에서 만나게 되어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친해지게 되었다.
지하 주차장은 날씨에 상관 없이 차를 온전하게 맡아 주었고, 빨리 다니는 킥보드와 자전거만 주의하면 아이는 차 없는 지상에서 걱정 없이 뛰어다닐 수 있다. 아파트 내 조경이나 벤치도 잘 되어 있어서 굳이 공원까지 찾아가지 않아도 되었다.
완벽한 아파트 생활이지만, 단 한 가지 흠은 이 집이 우리 집이 아니라는 것이다. 더불어 앞으로도 매수는 꿈도 꾸지 못할 만큼 집값이 천정부지로 올랐다. 우리는 전세 기간이 끝날 때를 대비해 다음을 준비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