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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다결 Oct 13. 2024

불안을 이기는 글쓰기와 몰입

불안하니까 써야 합니다 2



   불안을 이겨내고 내면에 중심을 잡는 가장 큰 방법은 몰입이다. 어떤 일이든 완전히 몰입해서 빠져드는 경험을 하고 나면 불안이 훨씬 완화된다. 누구나 불안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원하던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봐, 남들에게 웃음거리가 될까 봐, 부모님께서 실망하실까 봐 등등 외부에서 들어올지 모를 압력을 미리 상상하며 불안해한다. 이때 뭔가에 몰입하는 경험을 하고 나면 불안이 힘을 더 이상 쓰지 못한다. 몰입이 불안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외부로부터 들어올 압력을 이겨내기 위해선 몰입이 필요하다.

   최근엔 취미 영역이 다양해져서 여건만 허락된다면 배울 수 있는 게 많아졌다. 악기를 배워서 좋아하는 곡 완주하기, 베이킹을 배워서 맛있는 케이크를 만들기, 수영을 배워서 레인의 처음부터 끝까지 헤엄쳐 가보기처럼 몰입을 통해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영역은 많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런 취미는 시간적, 공간적, 물질적 제약이 따른다. 직접 가서 배울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고, 학원과 수영장에 직접 가야만 하고, 수강료를 지불해야 배울 수 있다. 여건이 되지 않으면 꾸준하게 몰입하기 어려워진다. 따라서 이런 일상 속 이벤트 같은 몰입이 있다면 일상 그 자체를 지켜주는 몰입 또한 경험하는 것이 좋다. 글쓰기가 바로 그렇다. 글쓰기는 시간적, 공간적, 물질적 제약에서 가장 멀리 벗어나 있기에 일상 속 몰입을 가장 잘 이끌어 낸다.






   1. 글쓰기는 시간적 제약을 받지 않는다.

   글은 언제든 쓸 수 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써도 되고, 점심에 느긋하게 써도 되고, 잠들기 전에 써도 된다. 내가 원하는 시간이 곧 글쓰기 시간이 된다. 단, 내가 쓰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글쓰기는 시간적 제약은 받지 않지만, 마음의 제약은 받는다. 우리는 중요하지만 급하지 않은 일에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자주 댈 때가 많다. 책 읽어야 하는데 시간이 없어서, 운동해야 하는데 시간이 없어서와 같이 글 쓰는 일 또한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미루기 쉽다. 그러나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마음이 없어서라는 걸.

   이때 가장 좋은 방법은 불안이 느껴지거나 생각 정리가 필요한 순간에 바로 노트를 펴서 딱 한 줄만 적어보는 것이다. 손으로 직접 글씨를 쓰는 게 가장 효과가 좋지만, 요즘엔 스마트폰에 메모, 저널 어플도 많으니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도 좋다. 지금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한 생각이나 가장 크게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도 좋다. 무조건 딱 한 문장만 쓰고 덮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한 줄 쓰기가 쉬워지면 두 줄 쓰기가 되고, 세 줄 쓰기가 되고, 그러다 언젠가는 한 페이지를 다 채우는 순간도 온다.

   장담하건대 한 번 쓰기 시작하면 물꼬가 트여서 계속 쓸 확률이 높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므로 묵은 감정을 해소하거나 정리할 때까지 나를 물고 늘어진다. 그럴 땐 생각이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끝까지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과거로 돌아가서 진탕 후회도 해보고, 미래로 날아가서 불안도 느끼겠지만, 결국 글은 지금 이 순간으로 나를 다시 데리고 올 것이다. 글이 나를 이끄는 대로 흘러갔다가 현재로 돌아오는 경험이 쌓이면 결과적으로 나의 중심을 지키는 힘이 된다. 아무리 힘들어도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를 부정적으로 예단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 가려던 길로 나아 간다.




   2. 글쓰기는 공간적 제약을 받지 않는다.

   글은 어디서든 쓸 수 있다. 침대에 누워서 쓸 수도 있고, 출근하는 지하철 안에서 쓸 수도 있으며, 카페에서 커피를 즐기며 쓸 수도 있고, 심지어 걸어 다니면서도 쓸 수 있다. 처음 글을 쓸 때는 내가 어디에서 글쓰길 좋아하는지 모른다. 다짜고짜 집에서 글 쓰는 게 막막하다면 밖에 나가는 것도 도움이 된다. 지나다니는 사람들 구경도 하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해가는 하늘빛 감상도 해주고, 좋아하는 커피나 차를 마시다 보면 생각이 전환되면서 쓰고 싶은 말이 생기기도 한다. 그때 글을 쓰면 된다. 글 쓸 주제는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다.

   나는 기차 안에서 글 쓰는 걸 좋아했다. 한때 왕복 4시간 거리를 통근한 적이 있었는데, 매일같이 기차 안에서 보내는 시간만 무려 2시간이었다. 기차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아까워서 책을 읽거나 글을 썼다. 책을 읽다가 떠오른 생각을 쓰기도 하고, 어떤 고민이나 잡념이 있다면 그것을 주제로 긴 글을 쓰기도 했다. 생각이 날 이끄는 대로 무아지경 글을 쓰다가 보면 내려야 할 역에 도착했다는 방송 알림을 듣곤 했다. 한 가지 일에 몰입하다가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는 경험을 일상 속에서 꽤 자주 한 셈이다. 남들이 보기엔 피곤하고, 지치고, 미련하기까지 한 경험일 수 있겠지만 나는 그 시절을 보낸 것에 후회가 없다. 기차 안에서 생각하고 글을 쓴 시간 덕에 나만의 가치관이 형성될 수 있었고, 남들이 무슨 말을 해도 저항할 힘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처럼 공간적 제약으로부터 벗어나 글 쓰는 게 자유로워지면 어디든 나를 지킬 수 있는 방공호가 된다. 그러니, 외부에서 들어오는 압력과 불안에서 대피할 수 있는 영역을 집 하나로 한정 짓지 말고 조금 더 다양하게 만들어 놓는 게 좋다. 정신적으로 대피할 공간이 많아질수록 불안으로부터 조금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




   3. 글쓰기는 물질적 제약을 받지 않는다.

   글 쓸 때는 노트와 펜만 있으면 된다. 굳이 값비싼 노트와 펜으로 글쓰길 시작할 필요는 없다. 가장 중요한 건 글쓰길 시작하는 것이고 마음에 드는 노트나 펜은 글쓰기가 습관으로 굳어지고 난 뒤에 사도 늦지 않다. 집에 있는 노트와 펜을 사용해서 나를 위한 첫 번째 글을 써보길 바란다. 큰 자본금이 들지 않으니 부담을 느낄 필요도 없다.

   나는 햇수로 5년째 다이어리(저널 포함)를 쓰고 있다. 값비싼 다이어리도 아니다. 대부분 만 원대 다이어리들이다. 벌써 8권이나 되는 다이어리들이 나란히 책장에 꽂혀있는 것만으로도 내가 살아온 역사가 이렇게 기록되었단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게다가 나만의 취향, 필체까지 담겨 있으니 유일하기까지 해서 소장가치가 높아서 더 좋아한다. 나만의 책을 써서 유일한 물성으로 남겨보는 것도 멋진 추억이 된다는 걸 깨달아서 앞으로도 쭉 다이어리를 쓰고 소장할 예정이다.

   만약 노트와 펜을 사용하는 게 조금 부담스럽다면 스마트폰 어플을 사용하길 추천한다. 최근엔 여러 가지 메모, 저널 어플이 많이 생겨서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디지털 기기를 활용한 글쓰기는 수정이 쉬우며, 찾기가 편하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노트와 펜으로 글 쓰는 것에 비해서 물리적 제약을 훨씬 덜 받는다. 간단하게 기록하는 걸 선호하거나 떠오른 생각을 바로 기록하고 싶다면 스마트폰 어플을 활용하길 추천한다.

   나는 이 두 가지를 함께 사용하고 있다. 다이어리를 일상과 감정, 생각을 정리하는 용도로 쓰고 있다면 메모 어플로는 갑자기 떠오른 아이디어, 단상 등을 쓸 때 사용한다. 두 가지를 필요한 영역에 잘 나눠서 사용하면 아날로그 기록과 디지털 기록의 장점만 뽑아서 최대치로 활용할 수 있다.




   4. 따라서 글쓰기는 일상 속 몰입이다.

   누구나 일상이 버거워지는 순간이 있다. 내가 맞는 길로 잘 가고 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을 때, 원하던 결과가 쉽사리 나오지 않을 때, 자존감이 완전히 바닥 쳤을 때 등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이 일상을 숨 막히게 만들 때가 있다. 심지어 걱정은 혼자서 오지 않는다. 꼭 불안을 데리고 와서 나를 더 고통스럽게 한다. 이때 불안을 이겨내려고 억지로 긍정적인 감정을 쥐어짜서는 안 된다. 긍정적인 감정으로 불안을 억지로 덮으면 내면에서 반발심과 저항심만 커진다. 현실은 나아진 게 하나도 없는데, 괜찮아. 난 최고야. 해봤자 더 비참해지고 분노가 치솟는 역효과만 일으킨다는 뜻이다. 이럴 땐 불안을 인정하고 흘려보내야 한다.

   불안을 인정하는 방법은 현재 생각과 감정을 한 문장 적어보는 것이다. 노트와 펜을 활용해서 쓰든, 카페 안에서 쓰든, 새벽에 쓰든 상관없다. 글쓰기는 이미 여러 제약으로부터 자유롭기에 이제 나만 자유로우면 된다. 한 문장을 쓰고 난 뒤에도 생각이 멈추지 않는다면 손이 가닿는 대로 계속 쓴다. 생각이나 문장을 검열할 필요는 없다. 여기서 자기검열에 들어가면 글을 써도 답답함이 가시지 않아서 쓰지 않느니만 못하다. 떠오르는 대로 쓰는 게 중요하고 감정이 잘 정리되지 않으면 말 그대로 거칠게 휘갈겨도 상관없다. 솔직하게 쓸수록 더 글쓰기에 몰입하게 되고, 몰입하게 되는 만큼 더 깊은 심연으로 들어갈 수 있다. 남들이 볼 수 없는 나를 만날 수 있다.


   사람은 사회생활을 하는 동물이기에 만인에게 온전한 나를 보여주며 살 순 없다. 꼭 대중 앞에 서는 공인이 아니더라도 가족에게 보여주는 나, 친구에게 보여주는 나, 직장에서 보여주는 내가 다르다. 다들 어느 정도는 사회적 가면을 쓴 채 살아야 한다. 내가 아무 가면도 쓰지 않아도 괜찮은 유일한 상대는 이 세상에 나 자신뿐이다. 아무리 피가 섞인 가족이어도, 수많은 추억을 나눈 친구여도, 사랑하는 연인이어도 나의 전부를 알 순 없다. 그들은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를 가장 가까이에서 도와줄 사람은 나밖에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사회적 가면을 잘 벗지 못한다. 그 가면을 쓰고 있어야만 사람들이 나를 계속 사랑해줄 것 같고, 필요하다고 말해줄 것 같으며, 이 가면을 벗으면 사실 내가 아주 형편없는 모습을 하고 있을까 봐 두려워한다. 두려움이 커서 심지어 혼자 남겨진 시간마저도 가면을 쓰고 있을 때가 많다.

   현상 유지를 하고 싶겠지만 가면을 벗는 시간은 꼭 필요하다. 누구에게 나를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편안히 숨을 쉬고 살기 위해서 가면을 벗어야 한다. 심연 속 나는 아마도 타인의 훈수, 평가, 감정에 따라 잘 조각된 가면을 쓰고 있을 것이다. 그 가면을 벗겨내야만 외부 압력으로부터 조금씩 자유로워질 수 있다. 평생 가면을 쓰고 버티겠다는 건 내 인생을 타인에게 주도권을 넘겨주고 살겠다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내 인생은 내 것이고, 나의 중심은 스스로 지키겠다고 선포하는 것. 그 작업이 바로 글쓰기다. 글쓰기를 통해 가면을 벗는 건 나의 밑바닥까지 보는 일이다. 처음엔 온전한 나를 마주하는 것이 불편하겠지만 언젠가는 그 불편함이 가장 자유로운 나를 인정하는 단계로 넘어가는 때가 온다. 그래서 누구나 글을 써야만 하고,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몰입 과정이 필요하다.






   글쓰기는 시간적, 공간적, 물질적 제약으로부터 꽤 자유로운 몰입 경험을 주기 때문에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면 일상을 보전하는 데 도움이 된다. 불안감에 숨이 막힐 때, 타인의 훈수에 휩쓸리는 것 같을 때, 가고자 하는 길에 확신이 없을 때 등 나로서 살지 못하는 수많은 순간마다 방공호가 되어 나를 보호해준다. 물론, 글 하나 쓴다고 갑자기 긍정적으로 세상이 달라 보인다거나 시궁창 같던 현실이 천지개벽 수준으로 화려하게 뒤바뀌진 않을 것이다. 글쓰기는 요행이 아니라 수행이라서 그렇다. 한 번만 시도하고 끝낼 일이 아니라 꾸준히 해야 한다. 글쓰기 수행을 꾸준히 한 만큼 나는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지원군을 얻을 것이다. 나 자신이라는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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