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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다결 Oct 13. 2024

달리기를 응원하는 마음

블루 다이어리



   함께 운동하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지만, 혼자서 운동하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혼자서 운동하는 것을 선호한다. 달리기를 선뜻 시작하게 된 이유 또한 혼자 할 수 있는 운동이었기 때문이다. 수영이나 헬스를 비롯한 각종 운동은 타인의 가르침을 받아야 한단 사실만으로 진입장벽이 높았다. 다른 사람과 운동하는 것이 싫다는 게 아니라 내가 잘 해내지 못했을 때 민폐가 될 것 같아서 시작부터 거부감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달리기는 혼자 힘으로 자료를 찾아보고 시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진입장벽이 낮아서 좋았다. 망해도 내 탓만 하면 되고, 잘하면 더 좋고, 아프면 쉬어가도 되니까 부담이랄 것도 없었다. 그래서 어쩌다 보니 혼자서 참 치열하게도 달렸다. 중간에 힘들어서 포기도 해보고, 다시 스스로 격려하고 달리길 수도 없이 반복했다. 그렇게 꽤 오랜 시간 혼자서 달리고 나를 격려하는 일에 익숙해졌다.






   하루는 꽤 저녁 늦게 달리러 나갔다. 하필이면 계절도 가을에 접어들어서 해가 금세 떨어졌다. 밤공기가 조금 쌀쌀했지만 달리다 보면 또 더워진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고 집 근처 산책로를 달렸다. 우리 집 근처에 있는 산책로는 일직선으로 약 500m에 불과하다. 왕복해야 겨우 1km가 채워지는 셈이다. 공원에서 달릴 땐 반환점까지 꽤 달려야 했지만 여기선 500m마다 반환점이 돌아오다 보니 코스가 눈에 익어서 쉽게 지겨워졌다. 풍경이라도 흥미로워야 구경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를 텐데, 시간 가는 줄 알고 달리고 있으니 다리가 천근만근으로 무거워졌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스스로 독려하는 것 외엔 없었다. 힘들어도 조금만 더 버티자고, 목표치가 코앞이라며 나를 북돋아 주었다. 500m 반환점을 몇 번이고 돌다가 거의 마지막으로 반환점을 돌았을 무렵이었다.


   “이야~”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남자의 탄성이 들렸다. 지쳐서 바닥만 보고 달리다가 고개를 들었다. 소리의 근원지는 산책로 반환점에 설치된 벤치였다. 그곳에 웬 노부부께서 앉아서 나를 쳐다보고 계셨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어리둥절한데 노부부 중 할아버지께서 먼저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셨다. 힘내라고 격려해주시는 듯 활짝 웃고 계셨다. 옆에 계시던 할머니께서도 덩달아 두 손을 번쩍 들어서 흔드시더니 박수까지 치셨다. 순간 내가 착각하고 있는 건가 싶었지만 반환점엔 우리 세 사람 말곤 아무도 없었다. 그분들은 정확히 나를 응원하고 계셨다. 어안이 벙벙했지만, 예의 없게 그냥 휙 가버릴 수가 없어서 달리다 말고 벤치쪽으로 몸을 살짝 틀었다. 두 분께 고개를 꾸벅꾸벅 숙이며 게걸음으로 달렸다. 페이스도 느리고, 잘 달리지도 못하는 나에게 응원을 건네주신 그 마음이 감사했다.

   노부부를 지나치고 다시 혼자서 달려나갈 때 신기한 경험을 했다. 닻을 매단 것처럼 무거웠던 두 다리가 갑자기 가벼워진 것이다. 좀 전에 반환점을 막 돌던 때까지만 했어도 달리기 장소를 잘못 골랐다고, 보이는 풍경이 하나도 재미없고 지루하단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 생각이 싹 사라졌다. 심지어 이 기세라면 조금 더 달릴 수 있을 것 같단 의욕마저 생겼다. 두 분의 따뜻한 시선과 응원 덕에 지친 상태로 달리다가 마지막엔 웃으면서 달리기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여태껏 달리면서 외롭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꽤 오랜 시간을 혼자서 스스로 독려하며 달렸던 터라 다른 사람의 개입을 상상해본 적도 없다. 하지만 이날 경험을 통해서 혼자 달리고 스스로 독려하는 것도 자유롭고 멋진 일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도 꽤 멋진 일이란 걸 알았다. 달릴 때 꼭 혼자가 아니어도 괜찮구나. 가끔은 다른 사람과 섞이는 것도 기분을 전환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겠구나. 그 사실을 깨달은 것만으로도 삶을 살아가는 시야가 더 넓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요즘도 나는 혼자서 달린다. 가끔 친구들이 나를 따라서 달리기에 도전해보고 싶은데,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는 말을 할 때면 이런 얘길 한다.


   “걱정하지 마. 내가 옆에서 응원해줄게.”


   내가 바닥만 보고 달릴 때 힘내라고 먼저 웃어 보이셨던 그 노부부처럼 나도 다른 사람에게 따뜻한 응원을 해주고 싶었다. 그럼, 그날의 나처럼 친구도 조금은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달릴 수 있지 않을까?

지금 이 시간도 어딘가에서 달리고 있을 수많을 사람들이 있다. 부디 목표한 대로 꾸준히 달려가길.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길. 나를 괴롭히던 것들로부터 멀어져서 끝내 자유로워지길 응원한다. 그리고 그날 제게 응원해주신 어르신, 어디에 계시든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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