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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리히

180803 Zürich

by 장영진

취리히 둘째 날 일정이 시작됐다.

어제 늦게 자서인지 9시쯤 느지막이 잠에서 깬 세온이 덕분에 모두가 일어났다. 창문을 활짝 열고 자느라 모기 걱정을 많이 했는데 생각보단 괜찮았다. 그러고 보니 활짝 연 창문으로 도둑이 들지 않은 것도 다행이다.

어제 하루 둘러보고선 취리히의 매력에 푹 빠져, 이곳 일정이 너무 짧게만 느껴졌다. 그 아쉬움에 부지런히 준비해 길을 나서기로 했다. 아침 식사를 위해 쌀을 씻고, 밥을 하고, 오늘의 메뉴인 짜장 라면을 끓이기 시작한다. 아내가 피곤했는지 약간의 몸살 기운이 있다. 유럽에 온 지 2주가 다 되어가고 있다. 힘든 여정도 그렇고, 제대로 된 식사를 못 해서일까. 걱정스럽고 미안하다.

어느덧 아침 식사 준비가 완료되고, 가족이 둘러앉았다. 사실 여행 중 가장 실패 확률이 낮은 요리 중 하나를 꼽는다면 짜장 라면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아이들이 아직 어려 매운 라면은 먹을 수가 없기에, 우리에게 짜장 라면은 아주 중요한 식사 아이템이다. 다행히 현이는 잘 먹었지만(feat. 콜라), 밥을 좋아하는 온이는 잘 못 먹는다. 몸이 안 좋은 아내와 온이를 위한 특별한 메뉴가 필요한 것일까.

식사를 마치고 간단히 씻은 후 11시 조금 넘어서 일정을 시작했다. 오늘 일정은 취리히 도심 산책과 호수에서 백조에게 먹이 주기. 그리고 호숫가에서 사진 촬영.

역으로 가는 길. 숙소 바로 옆 H&M에 들러서 아이들 옷을 샀다. 마침 할인 행사 중이었다. 언제 어디서든 싸고 예쁜 옷만 보면 소비 욕구가 샘솟는 우리 부부가 세일 안내를 보고 그냥 지나칠 리 없다. 우리 아이들 옷 그리고 지인의 아이들을 위한 옷을 조금 샀다. 그리고 역 앞 coop 마트에서 호수에서 백조에게 줄 빵 샀다.

다행히 어제 산 24시간 교통권 시간이 아직 남았다. 우리는 일단 티켓을 활용해 시내까지 나가기로 했다. 스위스의 식비는 참으로 부담스럽지만. 교통비는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다. 특히 (0시부터 24시까지 기준인) 원데이 패스가 아닌, (사용 개시로부터 24시간 이용이 가능한) 시간제로 운영되는 패스는 여행자의 부담을 크게 줄여준다. 특히 중앙역까지 가는 트램과 기차가 다양한데 자유롭게 탈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승차장에 세현이가 좋아하는 이층 기차가 대기 중이다. 달려가 기차에 올라탔다. 우리 첫 목적지는 중앙역이 아닌 호수에서 가까운 Zürich Stadelhofen 역이었다.

기차에서 내려 호수까지 걸어가는 길. 더운 날씨에 현지 아이들이 분수대에서 물놀이하는 중이다. 그 광경을 보고 우리 아드님들께서 그냥 지나칠 리 만무하다. 예상치 않은 물놀이가 당황스러운 상황이었지만, 아내는 이런 상황을 항상 여유 있게 대처한다. 나는 예상 밖 상황에 조금 불편했지만, 아내는 아이들이 하고 싶은 대로 옷을 벗기고 놀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아이들과 여행은 늘 이렇다. 계획에 없던 일이 수시로 벌어진다. 아이와의 여행이 부모에겐 내려놓음과 인내를 배우는 장이기도 하다. 물놀이를 마치고, 더 놀겠다고 울고 있는 온이를 억지로 이끌고 호수로 향했다.


2018 유럽957.jpg 호수로 향하는 길, 어느 분수대에서 (2018.8. 스위스 취리히)


드디어 호수에 도착.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백조에게 먹이를 주기 시작하자 어디 있던 녀석들인지 백조뿐만 아니라 참새들까지도 접근하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이 상황이 그저 재밌나 보다. 세현이는 먹이를 주며 실컷 웃고 떠들고, 온이도 백조 구경하랴, 엄마 손 잡고 걸으랴 무척 즐거워한다. 이보다 더 평화로울 수 있을까.

우리는 사진을 찍기 위해 자리를 잡았다.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수 있는 공간을 찾고, 삼각대를 설치한 후 구도를 잡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하지만 이 멋진 호수를 배경으로 어찌 사진을 남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몇 컷 사진을 찍다 점심시간도 다 되어가고 아이들 낮잠도 자야 했기에 해 질 무렵 다시 와서 촬영하기로 하고 일단 자리를 옮겼다. 하루가 길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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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F01105.jpg 평화로운 취리히호의 풍경 (2018.8. 스위스 취리히)


트램을 이용해 중앙역 부근 rice up에 다시 방문했다. 역시 우리 부부는 갔던 곳을 또 가는 것을 너무 좋아한다. 하지만 아침을 제대로 먹지 못한 온이가 밥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제 경험한 바로는 밥양이 적지 않기에 오늘은 성인 메뉴 2개만 주문하여 식사를 시작한다. 미트볼 옥수수와 소고기 호박이 포함된 비빔밥. 의욕적으로 식사를 시작했지만, 다 먹지 못하고 밥이 조금 남았다. 넷이서 먹기에도 양이 정말 많다. 어제 아이 메뉴까지 어떻게 먹은 것인지 의아할 따름. 어찌 되었건 온이가 배를 채워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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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스업에서 주문한 메뉴 (2018.8. 스위스 취리히)



트램을 이용해 중앙역 부근 rice up에 다시 방문했다. 역시 우리 부부는 갔던 곳을 또 가는 것을 너무 좋아한다. 하지만 아침을 제대로 먹지 못한 온이가 밥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제 경험한 바로는 밥양이 적지 않기에 오늘은 성인 메뉴 2개만 주문하여 식사를 시작한다. 미트볼 옥수수와 소고기 호박이 포함된 비빔밥. 의욕적으로 식사를 시작했지만, 다 먹지 못하고 밥이 조금 남았다. 넷이서 먹기에도 양이 정말 많다. 어제 아이 메뉴까지 어떻게 먹은 것인지 의아할 따름. 어찌 되었건 온이가 배를 채워서 다행이다.

식사 후 드디어 아이들 낮잠 재우기 프로젝트 돌입이다. 여행의 하루를 잘 보내느냐 아니냐는 결국 아이들이 낮잠을 잘 자주냐 아니냐에 달려있다. 날은 점점 더워지고 있었다. 일단 시원한 에어컨이 나오는 C&A라는 이름의 매장에 들어갔다. 아내는 온이를 아기띠로, 나는 세현이를 유모차에서 재우는 데 성공했다. 이제 우리 부부에겐 피로를 달래줄 시원한 커피 한 잔과 시원한 공간이 필요하다. 상점에서 나와 인근 스타벅스로 이동했고,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아이스라테를 주문하고 자리를 잡았다. 생각보다 스타벅스 커피 가격이 비싸진 않았다. 하지만, 스타벅스 내부가 시원하지 않았다. 결국, 더 시원한 곳을 찾아 인근 백화점으로 이동했지만, 백화점 안에 앉을 만한 자리가 마땅치 않았다. 우리는 백화점 안을 서성이다 결국 다시 스타벅스로 향했다. 아직 음료가 남아 있어서 다행이다. 그리고 자리도 남아 있었다. 우리는 빠르게 자리를 잡고 다시 휴식을 취했다. 스타벅스가 없다면 우리 여행을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2018 유럽980.jpg 아이들, 그리고 부모도 휴식 중 (2018.8. 스위스 취리히)



오후 4시경, 온이와 현이가 차례대로 기상했다. 한 명이 일어나면, 어떻게 알고 다른 한 명도 곧 잠에서 깨는지. 참 신기한 노릇이다. 갑자기 세현이 어렸을 때의 일이 떠오른다. 자기 싫어하는 아이를 재우겠다고 유모차를 끌고 나가 아파트를 돌곤 했었다. 한참을 돌다 겨우 잠이 들고 집으로 돌아올 때, (당시 집이 아파트 24동이었는데) 그 부근만 오면 꼭 잠에서 깨는 것이다. 당시 우리 부부는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며 불평을 했었던 추억이 있다. 이런 경험 속에서 우리 삶 속에 이성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고 느낀다. 사실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나는 모습 자체도 그렇다. 이성으로는 설명 안 되는 신비함을 매번 느낀다.

잠에서 깬 아이들에게 음료를 사주고, 다시 길을 나선다. 목적지는 또다시 취리히호(Zürichsee). 계획한 대로 다시 호수를 방문하여 백조에게 먹이를 주고, 2차 사진 촬영에 돌입할 생각이었다. 시간은 늦어졌지만, 아이들이 낮잠을 충분히 자서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먼저 호수 근처 맥도날드에 들러 저녁거리를 샀다. 마땅히 먹을만한 것도 없고, 시간도 애매해 오늘은 패스트푸드를 포장하여 호숫가에서 먹기로 했다.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둘러앉아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먹는다. 어린아이들에게 패스트푸드 주기 조금 미안해서 그렇지, 맛이야 너무 훌륭하지 않은가. 온이는 감자튀김을 끊임없이 흡입했다.

드디어 취리히호에 도착. 이 경관도 정녕 오늘이 마지막인가. 아침의 호수 경치도 좋았지만, 개인적으로 해 질 무렵의 느낌이 훨씬 좋다. 따스한 햇볕이 은은하게 내리쬐는 호숫가에 앉아 사랑하는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세상 편안하다. 여름 취리히를 방문하는 이들에게 해 질 무렵 호수를 방문하라고 꼭 추천하고 싶다.

백조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세현이는 취리히에 와서 백조 구경에 푹 빠졌다. 어제부터 계속 백조 백조 노래를 부른다. 온이도 말을 못 해 그렇지, 꽤 즐거워 보인다. 아이들이 웃고 즐거워할 수만 있다면 어딜 가든, 무엇을 하든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혹 반대로 아이들이 짜증이 나면 상황은 달라지겠지만.

백조와의 놀이. 사진 촬영. 여유를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어제, 오늘 날씨도 너무 좋다. 충분히 시간을 보내고 호텔로 돌아가는 길. 바닥에 카메라 셔터 버튼이 혹시라도 있을까 확인하지만, 역시나 찾기 힘들다. 그 넓은 길에서 찾는다면 그게 기적이겠지. 아쉽지만 분실한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2018 유럽994.jpg 마지막 호수가에서의 평온한 시간 (2018.8. 스위스 취리히)
2018 유럽1061.jpg 백조들과의 놀이 시간 (2018.8. 스위스 취리히)
DSF01253.jpg 호수를 배경으로 가족사진 찍어보기 (2018.8. 스위스 취리히)


취리히에서 3박을 했지만, 첫날은 밤늦게 도착했고 마지막 날은 아침 출발이라 영 아쉬웠다. 내일은 아침 일찍 바젤로 이동하는 날이다. 기차 이동이어서 비행기를 타는 것보단 여유롭지만, 다음 일정을 위해 욕심을 잠시 내려두기로 했다. 분명 취리히엔 머지않을 때 다시 올 것만 같다. 아니, 꼭 다시 오고 싶다. 그동안 스위스에 대한 이미지와는 영 다른 느낌이었지만, 취리히의 매력을 한동안 잊지 못할 것이다.

한편 아이들과의 여행은 아무래도 한두 개 도시에서 길게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해본다. 마치 요즘 유행하는 한 달 살기 프로젝트처럼 말이다. 도시 이동하는 일도 만만치 않고, 아이들이 새로운 나라, 도시에 또 적응하는 일도 혼란스러울 수 있으니까. 우리 부부의 여행 성향상 과연 가능할진 모르겠지만, 언젠가 우리 네 사람도 이곳에 와서 그런 기회를 만들 수 있길 소망한다.

방에 들어와 아이들을 재우고, 아내와 나는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짧지만, 취리히를 만날 수 있어서 감사할 뿐이다. 그리고 아이들도 취리히에 와서 많이 웃어줘서 고맙다. 이제 여행의 막바지. 남은 시간도 웃을 일들로 가득하길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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