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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영진 Oct 30. 2022

Day 15. 부다페스트

200118 Budapest

다시 돌아온 부다페스트에서 첫 아침을 맞이한다.

생각보다 집 안이 추워 새벽에 몇 번이나 자고 깨고를 반복했다. 결국 나와 아내도 9시 넘어, 아이들은 10시가 되어서야 잠에서 깼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집 안이 으슬으슬 너무 춥다. 아내와 과연 우리가 이 집에서 4일 밤을 보낼 수 있겠느냐 대화해보지만,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다. 예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유학 중이었던 사촌동생이 겨울이 되면 너무 추워 고생이라 이야기했던 게 생각났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전기장판이라도 들고 왔어야 하는 걸까.

차라리 빨리 외출을 하는 게 낫겠다 싶다. 급하게 아침을 준비. 어제 기차에서 먹고 남은 슈니첼과 수프를 아침으로 먹기로 했다. 식사를 하며 창 밖을 보니 정말 흐린 날씨. 식사를 마치고, 두껍게 옷을 껴 입었다. 오늘은 별다른 여행 계획을 세우진 않았다. 세현이 브리오 기차를 아직 못 샀는데, 계속 다음 도시에서 사주겠다고 미루고 미루다 다시 부다페스트로 돌아와 버렸다. 이 녀석도 그걸 아는 눈치다. 자긴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단다. 우린 어쩔 수 없이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커 보이는 쇼핑몰에 가야겠다 생각을 했다. 마침 날도 흐리니 실내에서 있는 게 훨씬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부다페스트 렌탈 집에서 맞이한 추운 아침 (2020.1. 헝가리 부다페스트)


4층 집 문을 나서 1층까지 내려가는 길. 마치 취업을 위해 면접 보러 가는 길처럼 긴장이 된다. 유모차는 과연 무사할까. 호기롭게 "가져갈 테면 가져가라지!"라고 외치긴 했지만, 사실 유모차가 없어진다면 정말 막막하다. 온 가족의 긴장과 관심 속에 드디어 1층에 도착. 휴, 다행히도 유모차는 자리를 지키고 있다. 유모차가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게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도, 긴장이 됐다. 나와 아내는 아직 유럽에서 분실이나 소매치기 등의 어려움을 겪진 않았지만, 워낙 그런 이야길 많이 들어왔다. 뭐, 유럽만의 문제는 아니겠지. 우리나라도 자전거에 있어서만큼은 여전히 도난 사고가 빈번히 발생하는 거 같다. 학교에서도 아이들이 자전거를 분실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아이들을 유모차에 태웠다. 뭔가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날씨는 정말 춥고 흐리다. 유럽에 와서 날씨 중에 가장 험난한 기후 조건이 아닐까 싶다. 곧 비나 눈이 내릴 것만 같은 하늘. 남은 여행 기간 내내 이럴까 봐 걱정이다. 우린 우선 24시간 교통 티켓을 구입하러 역으로 향했다. 부다페스트도 24시간 기준 티켓이 있어, 교통비 걱정이 확실히 덜 하다. 아이들이랑 다닐 땐 무조건 1일권 또는 24시간권을 사야 한다. 언제 어떤 상황이 벌어져 이동을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우린 티켓을 구입하고 바로 Budapest-Keleti역 인근의 쇼핑몰(Arena Mall)로 향했다. 구글에서 찾기엔 거의 우리나라의 스타필드와 비슷한 느낌의 쇼피몰처럼 보인다.

(나중에 지나서 안 사실이지만 쇼핑몰의 이름은 건너편 축구 경기장(Puskás Aréna)의 영향을 받은 걸로 보인다. 매년 축구 경기 중 가장 멋진 골을 시상하는 푸스카스 상. 아, 그 푸스카스가 헝가리 사람이었지. 부다페스트에 있을 땐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알았다면 축구 경기장도 구경 가봤을 텐데, 지나고 나서 알게 되어 아쉽다.)


곧 눈이라도 내릴 것만 같은 부다페스트의 모습 (2020.1. 헝가리 부다페스트)


궂은 날씨를 뚫고 쇼핑몰에 안전하게 도착했다. 날씨 때문인지 쇼핑몰 안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미 쇼핑을 즐기는 중이다. 우린 가장 먼저 장난감 판매점으로 향한다. REGIO JÁTÉK이라는 장난감 가게였는데, 들어가기 전부터 느낌이 심상치 않다. 분명 이 큰 쇼핑몰에 훨씬 더 큰 장난감 판매점을 기대했는데, 작아도 너무 작다. 과연 브리오 기차가 있을까. 한참을 찾아보지만, 역시나 보이질 않는다. 아, 오늘도 허탕인가. 세현이에게 뭐라고 이야기를 해야 할지 고민되기 시작이다. 어쩔 수 없이 아이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대신 기차 그림이 그려진 퍼즐을 사자고 설득한다. 새로운 걸 좋아하는 아이는 흔쾌히 부모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우리는 자리를 옮길 수 있었다. 물론 덕분에 내일 다른 쇼핑몰에 또 가야 한다.

오후 2시. 점심을 먹을 시간이다. 이 큰 쇼핑몰 안에서 무엇을 먹으면 좋을까. 아이들이 장난감을 구경하는 사이 검색을 해보았지만, 이상하게도 마땅치가 않다. 식당이 이렇게나 많은데! 또 많은 식당은 이미 손님들로 붐빈다. 고민 끝에 우리가 결정한 식당은 LEROY CAFE(2022년 기준 폐업)라는 이름의 식당. 카페라고 하지만 바 같은 느낌이기도 하다. 자리를 잡고 클럽 샌드위치와 감자튀김, 슈니첼, 크림 스파게티를 주문한다. 요 며칠 너무 비슷한 음식만 계속 먹다 보니 조금 질리기는 하지만, 정말 갈만한 곳을 못 찾았다. 음식 맛은 상상할 수 있는 그 맛, 딱 그 정도. 나쁘진 않았지만, 가격에 비해선 그저 그랬다. 


아레나몰 LEROY CAFE에서의 점심 식사 (2020.1. 헝가리 부다페스트)
아레나몰 LEROY CAFE에서의 점심 식사 (2020.1. 헝가리 부다페스트)


식사를 마치고 나니 벌써 3시 30분이 넘었다. 오늘은 늦게 일어난 거부터, 뭔가 일정이 꼬일 대로 꼬인 느낌이다. 1층 스타벅스에 가서 아이들을 재워보려고 했지만, 아이들은 잘 생각을 안 한다. 오늘은 너무 늦게 일어나서 그런 걸까. 분명 점심을 먹으며 하품을 하고 피곤한 것처럼 보였는데 말이다. 끝까지 안 자겠다고 우기는 세온이는 덥다며, 결국 내복만 남기고 옷을 다 벗어 재낀다. 그래도 끝까지 자기는 안 자겠단다. 한참을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부모가 포기. 그냥 쇼핑몰을 구경하기로 했다. 

쇼핑몰 안엔 정말 다양한 상점들이 존재한다. 부모가 좋아하는 의류 상점인 ZARA나 H&M은 물론이고, 화장품과 기타 잡화를 판매하는 dm이나 Rossmann도 있다. Sports Direct라는 이름의 스포츠 용품 판매점도 들러 구경을 할 수 있다. 기왕 온 거 한참을 구경하다 보니 시간은 또 금방 흐른다. 오늘은 적당히 마무리하고 집으로 들어가야겠다. 마지막 코스로 Tesco 슈퍼마켓이 있어 이것저것 구입을 한다. 남은 일정 동안 저녁은 계속해서 해 먹기로 했다. 사실 숙소를 집 형태로 예약한 이유도, 숙박비용 자체도 더 저렴했지만 저녁을 해 먹을 수 있다는 게 가장 컸다. 여행이 오래 지속되다 보면 사 먹는 음식도 질리는 경우가 생긴다. 게다가 결국 아이들과 먹을 수 있는 메뉴라는 게 비슷비슷하지 않은가. 우린 야채와 버섯, 음료, 간식 등을 충분히 구입해서 집으로 복귀했다.


자기는 낮잠 안 자도 괜찮다며 끝까지 버티는 세온이 (2020.1. 헝가리 부다페스트)


오늘 저녁 메뉴는 볶음밥과 버섯 된장국. 성대하게 장을 봐 온 것 치고는 다소 조촐한 식사이긴 하다. 그래도 오랜만에 된장국을 먹으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나는 그래도 빵이나 서양 음식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확실히 그것만 먹고살라고 하면 힘들긴 한 거 같다. 

대학생 때 유럽여행을 하면서 나와 형이 3주 동안 몸무게가 2~3kg 빠졌던 경험이 있다. 돈을 아낀다고 잘 먹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다. 당시 파리 한인민박에서 만난 여학생들이 있었는데, 그 친구들은 마트에서 구입한 빵을 가방 안에 넣고 다니면서 시시 때때로 먹는다고 했다. 덕분에 여행 중 몸무게가 오히려 늘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때 그것이 개인 차이일 수도, 남녀의 차이일 수도 있겠지만, 확실히 내가 빵을 좋아한다고 이야기하기엔 많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이들도 오랜만에 먹는 집밥(?)에 입맛이 다시 돌아오는 듯하다. 우리 나름의 풍족한 저녁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또 오랜만에 일상과 같은 집 안에서의 시간을 가졌다. 

아이들은 자기들만의 놀이를 하고, 아까 사 온 퍼즐도 하며 시간을 즐긴다. 나와 아내는 남은 여행 일정에 대한 고민, 정리 등으로 시간을 보냈다. 오늘 자고 일어나면 이제 두 밤만 남는다고 생각하니, 뭔가 마음이 허전하다. 특히 오늘 하루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쇼핑몰에서만 시간을 보내고 왔더니, 뭔가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우선 세현이 장난감부터 빨리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다. 내일 일어나면 그거부터 해결하고, 부다페스트에서의 남은 시간을 즐기고 싶다. 실질적으로는 이제 이틀 남은 우리의 이번 여행이 부디 마무리될 수 있길. 


오랜만에 먹어보는 집밥과 저녁의 일상 (2020.1. 헝가리 부다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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