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17 Wien Budapest
무척이나 힘든 밤을 보내고 빈에서의 아침이 밝았다.
1시가 다 되어 잠이 든 우리 가족 모두 9시가 넘어서 잠에서 깼다. 사실 오늘 같은 날은 호텔에서 조식을 먹으면 좋은데, 오스트리아 호텔의 조식 가격이 비싸도 너무 비싸다. 우리가 잔 호텔은 Novotel Wien Hauptbahnhof이다. 나름 저렴한 가격에 예약을 했다고 좋아했는데, 조식의 가격은 우리가 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여행 막바지로 향해 가는 지금, 경제적인 부담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 결국 우리의 선택은 중앙역이었다. 그리고 중앙역에서 우리가 고른 메뉴는 바로 버거킹. 아침이라고 하기도 뭐하고, 점심이라고 하기도 뭐한 애매한 시간임을 고려해. 단 2개의 메뉴와 커피 한잔을 주문해 넷이서 먹는다. 아, 불쌍한 우리 아이들. 어서 호텔을 정리하고 맛있는 걸 먹으러 가야겠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호텔로 들어왔다. 짐을 정리해 맡기고 빈 시내 구경을 나갈 참이었다. 그런데 예상 밖 상황이 발생. 호텔에 들어오는 길에 아이들이 1층 놀이방을 발견했다. 아니, 아이들은 어떻게 이런 건 놓치지 않고 발견하는지 참 신기하다. 빈에서 하루뿐인 시가이어서 고민을 했지만,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었다. 추운 날씨에 밖을 돌아다니기보단, 이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나 보다.
이미 놀이방에는 세계 곳곳에서 온 것처럼 보이는 아이들이 많이 있었다. 말이 안 통해 다른 친구들과 차마 놀진 못하고, 세현이와 세온이 둘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그러나 장난감 종류가 많지는 않아서 아이들이 곧 시시해하고 있다. 우리는 재빠르게 눈치를 채고 아이들을 데리고 방으로 올라왔다. 체크아웃까진 50분 남짓. 짐 정리를 마친 후 정확히 12시에 체크아웃을 완료할 수 있었다.
로비에 짐을 맡기고 바로 중앙역으로 향한다. 이상하게도 빈 중앙역은 시내로부터 조금 떨어져 있다. 덕분에 시내 중심부에 가기 위해선 교통편을 이용해야만 한다. 마침 시내까지 가는 트램이 있어, 우리는 리스본에서의 추억을 떠올릴 겸 트램을 타고 이동을 했다. 시내에 도착하자마자 식당을 검색하기 시작. 하지만 예전에 아내와 둘이 빈에 왔을 때도 느꼈지만, 생각보다 갈만한 식당을 찾기가 쉽지 않다. 물론 돈이 많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우리가 갈만한 금액대의 괜찮은 식당을 찾는 일이 참 어렵다고 느낀다. 예전에 왔을 땐 그래서 주로 패스트푸드를 이용하거나, 푸드코트 형태의 식당에 갔던 기억이 있다. 게다가 싸고 맛있는 음식이 많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거쳐 와서 인지 더 식당을 찾기 어렵다고 느낀다.
검색을 하다 보니 그나마 갈만한 식당을 발견했다. 식당의 이름은 Augustinerkeller Bitzinger. 아주 저렴하진 않지만, 아이들과 먹을만한 메뉴가 괜찮아 보인다. 우린 슈니첼과 소시지, 그리고 흰 밥 등을 주문했다. 주문한 음식이 나왔는데 생각보다 양이 적다. 아내에게 우린 아이들을 재우고 카페에 가서 뭐라도 먹자고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들을 주로 먹였다. 어제 너무 늦게 잔 여파 때문인지, 아이들이 많이 피곤해하는 거 같다. 우린 식사를 마무리하고, 바로 길을 나서 아이들을 재우기 위해 산책을 시작했다.
아이들은 금세 잠들었고, 아내와 나는 빈 시내 여러 상점들을 편하게 둘러볼 수 있었다. 그렇다고 마땅히 어딘가 갈 곳이 있는 건 아니었다. 옷을 구경하는 일도, 소품을 판매하는 상점도. 그냥 우리 마음이 지친 건지, 아니면 춥고 흐린 날씨 때문에 움츠리게 되어 그런 건지. 재밌게 느껴지지가 않는다. 아이들은 계속해서 자고 있고, 결국 스타벅스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커피와 머핀, 케이크를 주문해 허기진 배를 채우며 시간을 보낸다.
문득 오스트리아 빈이란 도시에 대한 추억을 떠올려 본다. 처음 빈에 왔던 건 2014년 5월의 어느 날. 아내와 독일 뮌스터에서 지내던 중 거기서 만난 한 유학생의 추천으로 빈에 오게 됐다. 그녀는 오스트리아가 너무 좋다고 했다. 그 당시 아내와 둘이었고, 우린 무척 자유로웠다. 유학생의 추천을 받고 그냥 빈에 가야겠다 마음을 먹었다. 이탈리아 베니스 여행을 마치고 야간열차를 타고 빈에 들어와, 아침 일찍부터 빈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사실 5월의 오스트리아는, 뭘 하지 않아도 좋은 그런 도시였다. 그 와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오페라 공연을 봤던 일. 당시 주연배우의 노래 솜씨가 정말 훌륭했다. 그렇지만 훌륭한 발성이 가능하도록 한 퉁퉁한 몸매 때문에, 아내는 공연에 통 집중을 할 수 없었다는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그 노래 실력은 정말 엄청났다.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다 보니, 오스트리아 빈이라는 도시가 아이들과 오기에 적합한 곳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6년 전 추억들은 전부 아이들과는 하기 어려운 일들이다. 야간열차를 타거나, 오페라 공연을 관람하는 일. 아니면 유서 깊은 성당(슈테판 대성당, Domkirche St. Stephan) 내부를 관람하는 일까지. 아이들과 함께 하기 쉽지 않다. 혹 지금이 여름이라면 공원에서라도 뛰어놀면 참 좋을 텐데, 그것도 어려운 일이다.
우리가 이곳에 와서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게, 6년 전과 지금 상황이 다르다는 사실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도시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다른 도시에서는 주로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멋진 곳에 가서 사진을 찍거나. 그런 일들은 아이들과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 도시에서만큼은 그때의 기억의 일부를 지금 아이들과 같이 할 수 없다는 게 우리 기분을 이상하게 만든 것 같다. 더욱이 이 도시를 떠나면, 이제 정말 이 여행의 마지막 도시에 가게 된다는 사실도 우리 마음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스타벅스에서 한 시간 넘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아이들은 대체 일어날 생각을 안 하고 있다. 부다페스트로 가는 기차 시간은 저녁 6시 42분. 이제 두 시간 정도의 시간만 남아 있다. 우린 남은 시간 동안 BRIO 기차 장난감이 있는지 찾아보고 가기로 했다. 스타벅스 자리를 정리하고 나오고 있는데, 텀블러와 에스프레소 잔을 50프로 가격에 판매하고 있는 걸 발견했다. 아침에 아이들이 어떻게 놀이방은 그렇게 놓치지 않고 발견하냐고 그랬는데, 아빠와 엄마는 세일 코너를 놓치지 않고 발견했다. 원래도 국내보다 저렴한데, 거기서 50프로 세일을 하니 그 유혹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바로 2개의 텀블러와 선물용으로 4개의 에스프레소 잔을 구입했다. 스타벅스를 나서며 아내와 오스트리아에 오길 잘했다며 농담을 주고받는다. 어쩜 그렇게 이런 상황을 좋아하는지. 이 부분에서만큼은 아내와 닮아서 다행이다.
브리오 기차를 찾기 위해 장난감 가게에 가기까지, 3시간 넘게 아이들이 자고 있다. 아니, 대체 얼마나 피곤했던 건지 도저히 가늠이 안된다. 아이들이 잘 자주면 고마운 건데, 이쯤 되니 뭔가 미안해지기 시작한다. 이제 그냥 깨울까 하다가도, 곤히 자고 있는 아이들 모습을 보고 있으니 깨우기도 미안하다. 결국 우리끼리 장난감 상점을 몇 군데 들러보았는데, 브리오 기차는 결국 찾을 수가 없었다. 대신 브리오와 호환 가능한 기차를 찾아 우선 그거라도 아쉬우나마 구입을 했다. 아마 아이들이 자고 일어났을 때 보여주면 좋아하겠지!
이제 돌아갈 시간이 됐다. 우린 다시 중앙역으로 복귀해 호텔에서 짐을 찾았다. 그리고 중앙역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세현이가 이제야 잠에서 깬다. 낮잠으로 거의 네 시간을 잤다. 그렇게나 오래 자고 일어난 아들의 모습을 보며, 마음이 아프면서도 이제 피곤이 풀렸을 거란 생각에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 애초 계획은 중앙역에 와서 저녁을 먹고 기차에 타는 것이었는데, 온이는 아직도 자고 시간도 애매해 우리는 기차에서 먹을 수 있게 음식을 포장을 했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몇 가지 메뉴를 포장했고, 고이 싸들고 기차에 무사히 탈 수가 있었다.
기차에 탑승 후 같이 저녁을 먹기 위해 온이를 잠에서 깨운다. 오래 자고 일어나서 그런지 세온이도 순순히 잠에서 일어났다. 저녁 메뉴로 사 온 음식은 오렌지 치킨과 볶음밥, 피자, 그리고 슈니첼이었다. 전적으로 아이들의 입맛에 맞춘 메뉴이긴 한데, 일어난 지 얼마 안 돼서 인지 아이들은 잘 먹으려 하지 않는다. 포장 음식이라 맛이 없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부다페스트까지는 2시간 30분 소요 예정. 식사를 하고 정리한 후 2시간이 남았지만, 기차 장난감을 꺼내 주니 아이들은 신이 나서 놀기 시작한다. 기차에서는 마주 보고 앉을 수 있다는 것이 아이들과 여행에서 정말 큰 장점이다. 유럽 내 저가항공이 너무 잘 되어 있긴 하지만, 우리는 가능하다면 확실히 기차가 더 편하다.
9시가 넘어 부다페스트에 거의 다 도착해 간다. 지금도 충분히 늦은 시간이지만, 어제에 비하면 오늘은 아주 양호하다. 기차는 부다페스트 중심부에 있는 Keleti역에서 멈추었다.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택시를 호출했다. 한시라도 빨리 숙소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다. 사실 마음 같아선 여행 첫 이틀을 묵었던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자고 싶기도 했지만, 나흘이나 지내야 하기에 취사 가능한 아파트먼트로 예약을 했다. 집 위치는 부다페스트 번화가 Váci 거리 중앙에 있는 집이었다. 생각보다 택시가 오기까지 오래 걸렸지만, 덕분에 늦은 시간 편안하게 숙소까지 올 수 있었다.
아파트에 들어왔는데,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집은 4층인데, 엘리베이터가 없는 것이다. 이 많은 짐과, 유모차까지 들고 과연 올라갈 수 있을까. 더군다나 유모차는 매번 오르락내리락하는 게 너무 부담스럽다. 고민 끝에 우리는 아파트 1층에 유모차를 두 대를 나란히 세워놓기로 했다. 설마 누가 치사하게 유모차를 훔쳐가리라 하는 마음 반, 여행도 끝나는 데 가져가려면 가져가라지 싶은 마음 절반. 조금은 무모한 용기를 부려본다.
집 내부는 생각보다 넓고, 꽤 깔끔했다. 다만 천장이 매우 높아 다소 춥게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 우린 내일을 위해 짐 정리도 마다한 채 잘 준비를 시작했다. 아이들은 두꺼운 잠옷을, 나와 아내도 두꺼운 옷을 껴입고 침대에 누웠다. 이제 정말 처음과 마지막 도시 부다페스트에 돌아왔다. 이 여행의 마무리를 멋지게 할 수 있길 기도하며 눈을 감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