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영진 Oct 30. 2022

아들, 아빠도 여행이 가고 싶다

덧붙이는 글

2020년 1월 21일 부다페스트 출발. 1월 22일 인천 도착.

2020년 1월 19일 대한민국 코로나 1번 확진자 인천 입국. 1월 20일 확진 판정.

내가 코로나 1번 확진자보다 하루 늦게 한국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확인했다. 국내로 유입되기 이전부터 유럽 지역에 바이러스가 퍼져 있었다는 보도를 언젠가 본 기억이 난다. 그렇다면 혹 내가 1번 확진자가 될 수도 있었다는 건가? 


정말 오랜 시간이었다. 

2년 전 우리 가족이 유럽여행을 마치고 돌아오고, 얼마 후 뉴스를 통해 팬데믹이 시작되었다는 보도를 접했다. 사실 잠시 이러다 말겠지 싶었다. 확진자 수가 점차 증가했고, 우리 사회는 아니 온 세계는 점차 패닉 속에 빠져버렸다. 한 달, 두 달, 아무리 그래도 여름쯤 되면, 아니 다시 겨울이 되면 여행을 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꿈에 부풀어 다음 여행을 어디로 갈까 고민하던 때가 있었다. 

이후 1년, 그리고 2년. 우리 일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여행은커녕, 그 바이러스가 우리의 삶을 이렇게나 송두리째 바꿔 놓을 줄 그땐 미처 몰랐다. 여행은커녕, 인천공항 근처에도 안 가본 지 2년이 넘었다. 공항에 가는 일이, 비행기를 타는 일이.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로 가는 일이 이렇게나 대단한 일이었는지, 이제야 알아버렸다. 


부다페스트, 베를린, 말라가, 포르투, 리스본, 빈, 다시 부다페스트.     


총 17박 18일. 

참 많은 곳을 다녔다. 다시 돌아봐도 아이들과 함께 다니기엔 과한 일정이다. 그만큼 아이들과 함께여서 힘들었지만, 함께여서 즐거웠고, 함께여서 할 수 없는 일들이 있었지만, 함께여서 할 수 있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엔, 아이들이 자라서 2018년 여행보단 훨씬 수월할 거라 믿었다. 하지만 거기엔 또 다른 어려움이 있었다. 아이가 커서 부모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게 많아질 거라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할 수 있는 건 더 적어지더라. 아이들이 자랄수록 이젠 의지와 의지의 대결이랄까. 부모와 자식 각자의 욕심과 의지가 늘 갈등 상황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 더 우리가 그때 무슨 용기로 여행을 해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여행은 그렇게 우리의 마지막 여행이 되어 버렸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또는 우리나라의 출국 금지 조치로, 혹 다른 나라의 입국 금지 조치로 해외여행이 불가능했던 지난 시간. 그래서 우리의 마지막 여행은 우리 가족에게 오랫동안 회자되고 있다. 첫째 녀석은 네 살 때 갔던 도시는 기억 못 하지만, 여섯 살에 간 부다페스트는 아주 잘 기억하고 있다. 어느 도시에 가서 어떤 장난감을 샀는지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부다페스트 트램에서 나오는 안내 방송도 간간히 언급하고, 베를린에서 탔던 기차의 모습들도 기억한다. 흔치 않은 화창한 날씨로 우리를 반겨 주었던 부다페스트, 따뜻하게 환영해준 베를린, 그리고 아름다운 말라가, 차가운 마력을 지닌 포르투, 화려한 리스본. 그리고 짙은 안갯속 부다페스트의 중후한 멋까지. 그 마지막 여행에서 만난 도시는 진실로 아름다웠다. 


펜데믹 기간에도 아이들은 자랐다. 마음도 몸도. 아이들이 더 크는 게 무서워 어떻게든 여행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나 오래 걸릴지 몰랐다. 언제까지 아이들 어린 시절 사진을 보며 이때 참 귀여웠었다고 회상할 수만은 없다. 조금이라도 더 어린 시절의 모습을 남기고 싶었다. 캠핑도 다니고, 속초와 양양에도 몇 번을 갔다. 그동안 다니지 않았던 제주에도 번이나 다녀왔다. 너무 즐거웠지만,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고 느꼈다. 


제주도에서의 형제 모습 (2021.10. 제주 함덕 / 2022.4. 제주 에코랜드)


2022년 10월, 팬데믹이 끝나고, 점차 이전의 일상을 회복하고 있는 오늘.

내 인생에서 마감 시간이라는 걸 경험하게 될 줄 꿈에도 상상 못 했다. 생계가 걸린 마감이 아니기에, 정말 그런 삶을 살아가시는 분들께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카카오의 작가 플랫폼인 브런치에서 개최하는 출판 프로젝트에 내 글을 출품을 하기 위해 제출 마지막 날 이 글을 쓰고 있다. 사실 프로젝트는 일주일 전 이미 마감이었는데, 카카오 정전 사태로 마감이 연기되어 결국 글을 마무리할 수 있게 되었다. 

책을 완성하기 위해 작성했었던 글을 다시 살피고, 수정하고, 완성하지 못한 부분을 완성하느라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사실 글을 쓰고 나면 몇 번이고 다시 읽으면서 무수한 퇴고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번엔 그럴 여유가 없다. 며칠 전 아내에게 분명 책을 제출한 후, 다시 읽으면서 이불 킥을 하게 될 거라는 농담을 했다. 대학원 논문을 쓸 때도, 그리고 2018년 여행책을 쓰면서도 반복해서 글을 읽으면서 계속 고치고, 다듬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이번엔 그렇게 하질 못했다. 


물론 시간은 많았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한창이었던 시기, 혼자 글 쓸 시간은 많았다.

더 놀라운 건 올해 3월부터 내가 육아휴직 중이란 사실이다. 첫째 녀석이 올해 학교에 들어갔다. 그 꼬맹이가 벌써 초등학생이라니. 아들 녀석을 핑계로 휴직을 했다. 휴직을 하며 개인적으로도 교사로서의 삶에 대한 고민들이 있었고,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란 기대도 있었다. 그리고 혹 코로나 이후 여행을 할 수 있을 거란 욕심까지 있었다. 

3월과 4월, 그리고 5월. 아들을 데리고 학교까지 걸어가는 길은 참 좋았다. 봄의 꽃 향기도 좋았고, 이제야 비로소 아빠 노릇을 하고 있다는 약간의 효능감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던 6월, 축구를 하다 아킬레스 건이 파열됐다. 그리고 거의 3개월, 일상생활이 어려웠다. 목발과 휠체어에 의지하는 생활을 해보리라고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20년 넘게 축구를 해 오며 한 번 다친 적 없던 나는, 도저히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7월 계획했었던 베트남 여행도 취소하게 됐다. 병상에 누워서, 걸을 수가 없어서. 글을 쓰기엔 좋은 조건인데도 그게 어렵더라. 그러다 보니 책을 완성하기까지 너무나 시간이 걸렸다.



2년 반 만의 해외여행을 떠나다 (2022.9. 필리핀 세부)


발목이 회복되어 걸어 다닐만하다고 느낄 무렵, 주위를 보니 사람들이 점점 많이 해외로 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하나둘씩 여행이 가능한 지역이 늘어나고 있다. 우리 가족도 오랜 기다림 끝에 9월 말 필리핀 세부에 다녀왔다. 7월 예약한 베트남 여행을 취소하면서, 실망이 컸다. 저렴한 패키지 상품을 발견하자마자 결제를 해버렸다. 사실 우리 가족의 첫 패키지여행이라 걱정이 많았다. 아이들 때문에 혹시 같은 여행객들에게 피해를 주는 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생각 이상으로 아이들은 자라 있더라. 아빠도 못하는 가이드와 농담 따먹기를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말은 안 했지만, 많이 놀랐다. 


오늘, 이 글로 책을 마무리하려고 하는 건 사실 출품 때문만은 아니다.

한 달여 뒤. 우리 가족은 유럽으로 떠난다. 휴직을 시작하면서, 12월 초 유럽으로 가는 항공권을 예약해버렸다. 사실 당시엔 갈 수 있을 거란 확신은 없었다. 코로나가 어떻게 될지 몰랐고, 아이의 학교 체험학습을 쓰는 일도 어떻게 될지 몰랐다. 그리고 중간에 내 발목 수술은 여행 계획에 또 다른 변수가 될 수도 있었다. 이제 달. 어떤 변수가 생길지 수 없다. 내가 반대쪽 발목이 끊어질 수도 있고, 여행 며칠 코로나에 확진될 수도 있다. 출국 비행기를 타기 전까진 여전히 불확실하지만, 그래도 여행을 계획하고 준비하고 있다. 


프랑크푸르트, 뮌스터, 로마, 팔레르모, 아비뇽, 말라가, 바르셀로나, 파리


총 44박 45일. 

이번 여행은 조금 더 길다. 이탈리아 팔레르모에서 열흘, 프랑스 아비뇽에서 열흘, 스페인 말라가에서 열흘. 다른 도시는 거쳐 지나가고, 주로 따뜻한 도시에서 주로 지내려고 계획을 세웠다. 도시를 이동하는 교통편과 숙소까지 예약을 완료했지만, 여전히 나와 아내는 우리가 과연 할 수 있을까 질문을 던진다. 부다페스트와 베를린, 그리고 포르투갈의 도시들. 가고 싶은 곳은 너무 많은데, 다 가기엔 경제적인 부담이 너무 크다. 


휴직을 하고 난 후, 지인들은 나에게 묻는다. 휴직 기간 동안 대체 무엇을 하고 지냈냐고. 내가 생각하기에 그 질문은 여러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그 의미 중 핵심은 그 시간 동안 내가 과연 어떤 의미 있는 일을 이루어냈냐는 질문이 아닐까. 그럴 때면 사실 답할 내용이 없어 곤란하다. 뭐 좀 해보려다가 수술을 했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휴직 기간이 끝나간다. 

그래서 12월의 여행이 내게 너무 소중하다. 그것마저 이루지 못한다면, 정말 앞선 질문에 답할 내용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라고 되묻고 싶기도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한 달, 그리고 반. 유럽에서 살아봤어."란 대답은 해보고 싶다. 그 대답은 할 수 있어야 먼 훗날 내 2022년이 부끄럽지 않을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리고 어느 순간, 아이가 부모와의 여행을 불편해할 시간이 올 거란 생각을 한다. 코로나로 3년 가까운 시간을 보내는 동안, 아이들이 너무 많이 커버렸다. 그래서 더 시간을 허비하기 싫다. 


앞으로 다가올 겨울 여행을 어떻게 글로 남길지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여행을 가기 전 이전의 마지막 여행의 대한 마무리는 꼭 짓고 싶었다. 그래야만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무리해서 이 글로 2020년의 여행을 마무리한다. 마무리라고 하기엔, 너무나 조잡한 글이지만. 여전히 이 책이 우리 가족에겐 평생 간직할 추억에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아이와의 여행을 꿈꾸고, 아이와의 여행을 계획하고 있을 누군가에게 용기를 주고 싶다. 지난 2018년의 여행을 글로 남긴 책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아이들과 여행하는 일은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나와 아내도 적잖게 용기를 내 여행을 다녀왔다. 그리고 아이들도 용기를 내 부모를 따라 그 먼 길을 다녀왔다. 뿐만 아니라 실력에 글을 쓰고, 책을 만든다는 것도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정말 큰 용기를 내서 어느 누군가 읽어 달라고 글을 쓰고 있다. 부끄러운 마음으로 치자면 아무도 안 읽었으면 좋겠지만, 그래도 누군가 읽게 된다면 이 글을 보고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다. 여행을 좋아하고, 여행을 꿈꾸지만. 혹 아이 때문에, 아니면 다른 상황 때문에 주저하고 있는 이들에게 작은 도전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전 19화 Day 18. 부다페스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