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편소설) 절름발이와 탐지 약

by 반동희

수많은 사람들이 다리를 절뚝거렸다. 왼쪽 다리와 오른쪽 다리의 길이가 달라졌다. 그들이 걸으면 "쿵쿵" 소리가 났다. 그들의 어깨는 걸을 때마다 좌우로 심하게 흔들렸다. 길이 차이는 저마다였지만 이제는 양 다리 길이가 같은 사람을 찾기 힘들었다.


이 모든 게 한 과학자가 만든 '탐지 약' 때문이었다. 신분을 철저히 숨 이 과학자를 사람들은 '탐지 박사'라고 불렀다. 탐지 박사가 만든 탐지 약을 먹으면 대부분 다리 길이가 달라져갔다.


탐지 박사는 "탐지 약을 먹은 사람이 심한 거짓말을 한다면 다리 길이가 달라진다. 어쩔 수 없는 거짓말이나 우리가 어린 시절 했을 법한 수위의 거짓말은 반영되지도 않는다"면서 "자신이 거짓말인 것을 알면서도 욕심에서 벗어나지 못해 거짓말을 할 때면 약이 한쪽 다리 길이를 줄여나간다"고 설명했다.


처음 이 약이 나왔을 때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세상에 무슨 이런 동화 같은 얘기가 다 있냐고 웃었다. 언론은 탐지 박사를 정신병자 취급했다. 그가 신분을 드러내지 않자 더욱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붙였다.


심지어 이메일 주소부터 시작해 인터넷상에서도 그 어떠한 기록이 드러나지 않자 정신병자가 꾸며낸 허상이라고 매도했다. 탐지 박사의 말을 전하는 '탐지 약 연구소'에 대해선 쓸데없이 사회 분란을 조장하는 암적인 존재라고 평했다.


하지만 탐지 박사는 "이 약을 먹고도 다리 길이가 멀쩡한 정치인이 나온다면 내가 언론 앞에 나타나 정신병자임을 인정하겠다"고 강하게 대응했다.


언론은 엄청난 화젯거리가 될 수 있다는 계산을 했다. 정치인 몇몇이 이 약을 먹어 저 정신병자를 끌어내야 한다고 했다. 그게 사회 안전에 기여하는 첫 단추라고 분위기를 조성했다. 그러자 진짜로 먹는 정치인이 생겼다. 묘한 영웅 심리가 그들 사이에 번졌다.


한 정치인은 "나는 목숨을 걸 수 있을 정도로 청렴하다. 이런 교묘한 말들로 국민들을 호도하는 탐지 박사를 심판의 단두대에 올리겠다"며 약을 먹었다. 하지만 그의 다리 길이가 달라지기 시작한 건 바로 그 다음날이었다. 국민들 사이의 놀라움이 폭발하는 동시에 그 정치인을 향한 삿대질이 멈추지 않았다.


국민들은 더 많은 정치인들의 약 복용을 요구했다. 어쩔 수 없이 다른 정치인들도 동참했다. 그러자 극소수의 정치인만 빼고는 전부 한쪽 다리가 줄었다. 또 한 번 탐지 박사가 이겼다.


그날부터 정치인들 중 절름발이가 늘어나기 시작해 다리 교정기를 만드는 업체의 주가가 폭등했다.


이제 국민들은 정치인을 넘어 재벌과 여러 유명 인사도 이 약을 먹길 원했다. 겁에 질린 몇몇 재벌과 유명 인사는 국외로 도망가거나 숨어버리기 일쑤였다. 용기 있는 재벌과 유명 인사가 약을 먹었으나 그들 또한 탐지 약 앞에 대부분 패했다.


이제 온 사회는 탐지 박사가 만든 탐지 약을 먹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구분됐다. 평범한 국민들도 약을 복용한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로 구별됐다.


탐지 약이 팔려나간 이후 가장 먼저 선거 문화가 달라졌다. 국회의원에 출마하거나 의원에 나오는 사람들은 탐지 약 복용 여부를 가장 먼저 홍보했다. 약을 먹지 않은 사람은 유권자들이 먼저 외면했다.


반면에 탐지 약을 먹었음에도 다리 길이가 멀쩡한 사람들은 유권자가 먼저 알아봤다. 출마자들 사이에서 선심성 공약이 사라졌다. 말을 조심하는 문화가 생겼다. 이따금 선거 운동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다리 길이가 달라지는 사람이 나타났는데 당연히 유권자들은 그의 진실성을 의심했다.


일자리 문화도 달라졌다. 취업과 승진과 이직에서 탐지 약 복용은 필수였다. 다리를 절뚝거리는 사람들은 그 자체로 불신을 받았다. 고용주들은 함부로 '주 5일 근무에 가족 같은 분위기'를 입에 담지 못했다. 다리 길이가 다른 고용주들은 회사 문을 닫아야 했다.


가끔 다리를 절어 취업하지 못하거나 몇 십 년을 다니던 곳에서의 비리가 들어나 쫓겨난 사람들은 가게를 차리기도 했다. 하지만 장사가 될 리 없었다. 김밥 한 줄을 먹더라도 사람들은 주인이 다리를 절면 재료를 의심하며 먹지 않고 나갔다.


결혼 준비에서도 탐지 약은 인기를 끌었다. 상견례 자리에선 당사자와 두 집안 모두가 이 약을 먹었는지 확인했다. '시월드'란 단어가 사라졌다. 이혼율이 급감했다.


탐지 약을 만든 탐지 박사의 정체는 끝까지 드러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의 존재를 궁금해했지만 누구도 밝혀내지 못했다. 그의 입장을 전하는 탐지 약 연구소는 계속 침묵했다.


어떤 사람들은 탐지 박사가 외계인이라고 믿었다. 종교 집단에서는 저마다 자기네 신들의 재림이라며 떠들었다. 또 다른 사람들은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앞으로도 얼마나 꾸준히 이 약을 받아낼 수 있는지가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던 어느 날 탐지 박사는 그의 연구소를 통해 국민들에게 띄우는 편지라며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는 편지에서 "앞으로 더는 탐지 약을 공급하지 않을 것"이라며 "그간 판매금으로 거둬들인 수 조원으로는 연구소 명의의 재단을 세워 사회 취약계층을 돕는 데 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자 갑자기 국외로 떠났던 인물들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이제는 탐지 약을 먹었던 사람과 먹지 않았던 사람들을 구분할 수 없었다. 약을 먹고도 다리 길이가 똑같은 사람들은 자신의 진실함을 설명하며 다녔다.


하지만 은근슬쩍 귀국한 사람들도 그렇게 자신을 포장하긴 마찬가지였다. 국민들은입국 관련 기록들을 공개하라고 외쳤다. 그러나 모든 자료가 남아있지 않다고 그들은 대꾸했다. 탐지 약이 사라지자 그 이전으로 돌아오는 건 한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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