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편소설) 코피노의 일기

by 반동희

내 외모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몇몇은 나를 보며 이국적이라고 했다. 또 다른 이들은 동남아 혼혈이냐고 물었다.


동남아란 단어가 내 얼굴을 향해 날아올 때 그 단어를 뱉은 사람은 묘한 웃음을 흘렸다. 옆에 있는 누군가는 눈살을 찌푸리기도 했다.


내가 보기에도 난 한국 사람들과 달랐다. 이들보다 확실히 큰 눈은 한눈에 구분됐다. 이따금 한국인 중에도 눈 큰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의 눈매와 내 눈매는 길이에서부터 차이가 났다. 내가 보기엔 내 눈매가 아무래도 그들보다 짧았다.

게다가 누가 봐도 조금 더 검은 피부색이 '이국적'이란 단어를 불러오기에 충분했다.


얘기하다 보니 설명이 길어졌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한국 사람들은 날 '코피노'라고 불렀다. 가판대의 신문과 TV 방송도 날 그렇게 규정했다. 난 크면서 한국도 내 나라라고 생각했으며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코피노라는 단어가 갖고 오는 부정적인 어감엔 사실 서운할 때도 있다.


난 필리핀 보라카이에서 23년 전에 태어났다. 엄마와 외할머니는 우리나라에서 손꼽힌다는 깔리보 공항 인근에서 오래 살았다. 아차, 다시 설명하자면 여기서 내가 말한 우리나라는 필리핀이다.


이건 아빠가 어디 있고 엄마가 어디 있느냐와 같은 그런 기준이 아니다. 아무리 내가 한국의 문화를 많이 접하며 컸다고 하더라도 난 23년이나 필리핀에서 태어나 자랐다. 필리핀을 우리나라라고 표현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코피노 자식이 한국에 돈 벌려고 와 있으면서 우리나라 필리핀 찾기는!"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거슬리더라도 이해해주길 바란다.


내가 필리핀에서도 손꼽히는 관광지인 보라카이에서 태어난 건 행운이었다. 적어도 난 아직 그렇게 생각한다.


깔리보 공항에서 일하던 우리 엄마는 어느 날 갑자기 발걸음이 보라카이로 향했다고 한다. 몇 년 전만 해도 엄마는 이 말을 하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그땐 그랬다"고 덤덤히 말했다. 며칠 전 전화통화에선 울면서 "그건 전부 헛바람이었어. 너희한테 미안해"라고 했다.


당시 젊었던 엄마는 지금 내가 한국에 와 있는 것처럼 화려한 삶에 대한 동경이 있었던 것 같다. 그때나 지금이나 한국인 관광객 중 많은 사람이 깔리보 공항을 통해 보라카이로 건너갔는데 아마도 이들의 옷차림이나 행동이 엄마의 감성을 꾸준히 자극한 것 같다. 난 엄마 머리에 켜켜이 쌓인 그 자극이 보라카이로 이동하는 행동으로 연결됐다고 언젠가 추측해봤다.


엄마는 깔리보 공항에서 입국 심사하는 일을 하다 보라카이로 넘어가 레스토랑에서 매니저로 일했다. 외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그때 얘기가 나오면 하나 마나 한 욕을 내뱉었다. 한국말로 바꿔보자면 "망할 놈의 지지배"정도 될 것이다.


이런 배경을 안고 나는 보라카이에서 태어났다. 내 위로 2살 위의 형이 하나 있는데 형은 지금도 트라이시클을 운전하며 친구들과 어울리길 좋아한다.


트라이시클은 보라카이의 대표적인 교통수단이다. 오토바이에 앉을 수 있도록 만든 것인데 보라카이 시내에서 트라이시클 운전을 하면 벌이가 꽤 짭짤하다. 나도 한국에 오기 전까지 트라이시클 운전을 하며 엄마와 형과 살았다.


형과 나는 동네에서도 "아빠가 한국인"이라며 항상 시선을 끌었다. 아빠가 한국인인 아이들이 꽤 있었으나 대부분 태어나면서 아빠 얼굴도 못 보고 컸다. 하지만 우리 형제는 조금 달랐다.


몇몇 긍정적인 사람들은 "나중에 네 아빠 찾으면 사는 데는 지장 없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항상 모든 것을 삐딱하게 보며 혀를 끌끌 차기 좋아하는 부류들은 "평생 찾지도 못하고 그렇게 아빠 없이 살 거다"라고 악담을 하기도 했다. 나는 주로 긍정적인 사람들의 말을 믿었다.


반면 형은 혀 차기 잘하는 사람들의 말을 신뢰했다. 그게 지금 필리핀에 남아 있는 형과 한국에 넘어온 나의 차이를 만들었다.


한국에 처음 간다고 했을 때 형은 내게 "석 달 안에 못 찾으면 접고 와라. 내 친구는 갔다가 일주일 만에 왔다. 왜 그런지 알아? 차마 내가 너한테 말하진 못하겠다. 하지만 난 우리도 다르지 않다고 본다. 찾으면 좋겠지만 기대마"라고 열변을 토했다.


하지만 한국에 처음 왔을 때의 부푼 마음이 난 아직도 있다. 비록 지금 여섯 달째 제대로 된 일도 못 하며 아빠를 찾고 있지만 여전히 긍정적이다.


일주일 전엔 전화영어 회사에 면접을 보고 왔는데 면접관은 내게 기초 수준의 수업을 진행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다시 연락 준다고 하기에 난 휴대전화를 옆에 경건하게 놔둔 채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러고 보니 전화 올 때도 됐는데 아직 아무런 답이 없다. 이 글을 쓰면 내가 먼저 걸어볼 참이다.


의외로 한국에 오기 전에 들었을 때보다 이곳 사람들은 내게 친절하다. 내가 보라카이에서 본 한국 사람들을 굳이 말해보자면 그들은 한국말로 '개차반'이었다.


내가 몰던 트라이시클에 탄 한국 남자 대부분은 "어이 친구, 여자 말이야 여자"라고 외쳤다. 그들이 우리나라에 전파한 '마사지'란 단어가 그렇게 탄생했음을 난 트라이시클에서 깨달았다.


가끔 내가 엄마에게 배운 한국말을 관광객에게 할 때면 그들은 웃고 말았다. 지금도 기억나는 진짜 나쁜 녀석 하나는 "네 출생의 비밀을 내가 알고 있지"라며 비꼬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한국에 오니 그 개차반들의 비율은 높지 않았다. 가끔 영어 잘하는 한국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은 내게 꼭 아빠를 찾길 바란다고 힘을 실어줬다.


물론 어디나 마찬가지지만 못된 개차반은 항상 있다. 한국에 오자마자 우여곡절 끝에 한 달간 공사장 아르바이트를 해봤는데 "코피노 자식"이라며 불필요하게 강한 억양을 쏟아내는 사람도 있었다.


며칠 전 지하철에서 잠깐 만난 영어 선생님이라는 젊은 여자는 "엄마가 당신한테 잘못한 거예요"라고 말해 내게 상처를 줬다. 그 여자는 심지어 "필리핀 영어는 한국에서 낮은 수준으로 취급되죠"라며 내게 이러쿵저러쿵 발음을 지적하기도 했다. '나도 전화영어 선생님 할 건데'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겉으론 웃어 넘겼지만 정말이지 한국에서 만난 최악의 여자로 꼽힌다.


솔직히 한국에 온 지 여섯 달이 지나가니까 지치는 감도 있다. 내가 아는 아빠에 관한 정보라고는 이름 석 자와 지나버린 주소가 전부다. 엄마는 아빠가 한국에서 주유소 관련 사업을 한다고 했다.


나와 우리 형 기억에도 아빠는 가끔 우리 집에 들러 정유 회사 사람들을 만난다고 했던 것 같다. 아빠는 내가 여섯 살이 지난 후부터는 오지 않았다. 종종 편지 정도 오는 게 전부였다. 엄마는 항상 아빠가 일 때문에 더는 필리핀에 오기 힘든 상황에 부닥쳤다고 설명했다.


나는 열다섯 살이 되던 해에 읽었던 책에서 삶은 이따금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배웠다. 아빠도 그런 상황을 통과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으며 지금도 이 생각엔 변함이 없다. 책 읽기를 극도로 싫어하는 형은 그래서 아빠를 지금도 이해하지 못하는 거다.


한국에 오자마자 내가 처음 한 일은 아빠가 쓴 편지의 주소로 찾아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년 전에 사업체를 정리하고 지금은 모른다"는 게 돌아온 답이었다.


정확히 아빠가 우리 집에 편지마저 끊은 날과 맞아 떨어졌지만 난 여전히 아빠를 만나 할 말이 많다. 내가 한국에서 영어 선생님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소식과 어릴 적부터 유달리 공부를 안 하던 형이 지금은 뒤늦게 깔리보 공항 취업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꼭 전하고 싶다.


외할머니는 끝까지 아빠를 향해 "무책임한 한국 놈"이라고 했지만 지금쯤 하늘에선 아빠가 잘 풀리길 바랄 거라고 믿는다는 위로를 하고 싶다.


난 여전히 아빠가 나를 목마에 태우고 보라카이 화이트비치를 걸었던 그 날을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있으며 아빠가 알려준 한국말이 좋아 그때 찍은 사진을 책상에 붙여놓고 열심히 공부했다고 털어놓을 것이다. 옆에서 안 좋은 소리를 하는 개차반들과 부정적인 사람들이 있지만 난 여전히 아빠를 만날 수 있으며 그간 못다 한 얘기를 풀어놓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쯤에서 일기를 정리하고 TV를 틀었더니 파퀴아오와 메이웨더의 복싱 경기를 '세기의 대결'이라며 광고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파퀴아오의 인기는 역시 대단한 것 같다. 내 어깨가 나도 모르게 순간 으쓱한다. 그는 분명 필리핀의 자랑거리이자 보라카이를 방문한 한국인들이 꼭 한 번은 꺼내는 대화 소재다.


아빠는 예전에 우리에게 쓴 편지에서 파퀴아오 얘기를 하며 필리핀에서 두 번 다시 나오기 힘든 영웅이라고 했다. 아마도 지금쯤 형은 한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트라이시클을 몰며 침이 튀도록 파퀴아오 얘기를 하고 있을 거다.


파퀴아오와 메이웨더의 경기는 한 달 정도 남았다. 난 아빠를 만나 누가 이길 것 같으냐고 꼭 물을 것이다. 아마도 아빠는 파퀴아오가 이길 거라고 말할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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