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편소설) 아빠도 뿔났다

by 반동희

그날도 아빠는 기타를 쳤다. "학교 다녀왔습니다"라며 현관 비밀번호를 풀었을 때 정면에 보이는 내 방문은 닫혀있었다.


엄마는 이미 내 앞에 와서 오른손 검지를 갖다 대며 조용히 하라고 신호를 줬다. 나는 알았다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거실 끝에 있는 내 방문은 이미 철옹성 같았다.


그날 나는 집에 오자마자 해야 하는 절차를 합법적으로 생략할 수 있었다. 그건 내 방에 들어가 가방을 내려놓은 뒤 내일 사야 할 준비물을 적어 엄마한테 주고 곧장 손발을 씻으러 화장실에 가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철옹성이나 다름없는 내 방문을 뚫기에 병균이 얼마나 있을지도 모르는 불확실한 내 손발은 미약했다.


"기타 소리 들리지?"

식탁에 마주 앉은 엄마가 내게 물었다. 그건 오늘 하루만큼은 서로 싸우지 말고 조용히 지내자는 정전 협정과도 같은 신호였다.


"올해도야?"

내 물음에 엄마는 고개만 끄덕인 채 나물 반찬을 뒤적거려 냉장고에 넣었다. 방안에선 아빠의 기타 소리와 이따금 흥얼거리는 노랫소리가 새어 나왔다.


내 방에서 아빠가 기타를 치는 이유는 하나였다. 내 방에 작은 베란다가 있으며 우리 집에서 가장 방음이 잘 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내 방에 아빠가 있는 이유가 방음이었다면 아빠가 기타를 치는 이유는 방어였다. 회사와 사회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행위라고 엄마는 이렇게 매우 현학적으로 설명했던 적이 있다. 내가 보기엔 그저 속상함을 풀기 위한 행동으로 보였다. 적어도 그땐 그랬다.

아빠는 그때까지 4년째 진급 심사에서 낙방했다. 그때마다 나보다 먼저 집에 왔다. 그러면 엄마의 검지가 집에 들어서는 내게 신호를 보냈다. 그 신호를 받은 나는 저녁에 아빠가 나올 때까지 TV를 보거나 밖에 나가 공을 차거나 마음대로 뭐든 했다.


어차피 '싸우지 말자'고 다짐한 엄마가 내게 잔소리를 할 확률은 제로에 가까웠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내가 중학교 3학년 때까지 아빠는 그렇게 매년 내 방에서 기타를 쳤다. 고등학교 가서 내가 야간 자율학습을 하면서는 아빠가 안 쳤는지 내가 못 봤는지 어쨌든 기타 소리를 당분간 듣지 않았다.


아빠는 직장 생활에서 많은 부침을 겪었다. 특히 노조위원장을 맡으면서 회사 고위층 눈 밖에 나기 시작했다.


엄마는 기분 좋을 때 아빠를 가리켜 "불의를 보면 못 참는 정의로운 성격"이라고 했다. 하지만 엄마 기분이 나쁜 날이면 아빠의 성격은 금세 "융통성 없는 바보 등신"으로 빙의했다.


그게 아빠 진급이라는 희소식 대신 기타가 내 방에 들락거린 이유였다. 나는 아빠가 기타 치는 것을 주의 깊게 듣지도 않았거니와 그 기타가 어느 정도의 울분을 대체하는지도 사실 알지 못했다.


그러나 군대에 다녀온 뒤 아빠한테 효도 좀 해보겠다고 회사로 찾아갔을 때 난 아빠에게 한참 어린 상사가 한두 명도 아니고 무려 다섯 명이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군대에서 나보다 나이가 어린데 계급이 무려 상병씩이나 돼서 근무를 밥 먹듯이 바꾸자고 했던 개놈의 자식이 좀비처럼 걸어오는 것 같았다. 그 좀비가 걸어올 때 나도 모르게 아빠의 기타 소리가 배경으로 깔렸다.


그날 저녁 난 '남자들만의 식사'라며 먹었던 감자탕과 목이 칼칼하니까 마셨던 소주의 힘을 빌렸다. 둘이 한 외식 자리에서 난 아빠에게 "커서 보니 비판 의식을 갖고 산 아빠의 삶이 좋았다"고 털어놨다.


아빠는 씩 한 번 웃어 넘기더니 그 말엔 크게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내년이면 정년이 5년 남는데 미리 희망 퇴직할 거다. 너도 인마 나머지 등록금 2년은 알아서 내. 퇴직금 일부는 생활비로 쓰고 아빠는 전국을 떠돌면서 기타를 칠 거야"라고 돌직구를 날렸다.

우려가 현실이 되는 건 한순간이었다. 아빠는 그대로 퇴직을 했다. 나는 망할 놈의 학자금 대출이라는 덫에 걸려 허우적댔다.


아빠는 "기타 치고 놀다가 어디 소일거리라도 하겠다"면서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기 일쑤였다.


한 가지 의아한 건 아빠가 퇴직하겠다고 했을 때 하늘이 찢어질 듯 돌고래 이상의 고음을 냈던 엄마가 어느 순간 조용해졌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아빠는 내가 3~4학년을 마치고 취업이 안 돼 1년간 아르바이트로 학자금 대출을 갚아가는 동안에도 아무런 직업 없이 전국을 쏘다니며 기타를 쳤다.


아빠는 바닷가에서 치고 산에서 치고 어느 산골 근처 음식점 옆에서 치고 노인 대학에 찾아가 쳤다. 엄마는 아빠의 퇴직금과 해지한 적금을 더해 생활을 꾸렸다.


아빠는 그렇게 방랑자 역할극을 하다 어느 날 집에 돌아와 "아, 이제 원 없다. 원 없어. 가수 하고 싶다고 했다가 네 할아버지한테 기타 모가지 부러지고 또 그 부러진 거로 두드려 맞은 게 엊그제 같은데 난 진짜 이제야 기타 선수 다 해봤다"하면서 나를 방으로 불렀다. 아빠는 정체 모를 흰 봉투를 오른손에 들고 있었다.


"이거 가져가서 잘 읽어보고 준비해."

"그게 뭔데요?"

"한글로 쓰여 있으니까 어려운 거 없어. 방에 가서 잘 보고."


"네, 그런데 이제 진짜 기타 안 쳐요?"

"응, 당분간은. 내일부터 요 앞 노인정 가서 소일거리나 하기로 했다. 이제 기타 선수 해봤으니까. 아, 그리고 너도 기타 칠 줄 알잖아?"

"네, 알죠."


"그럼 기타 좀 가져다가 네 방에 놔. 보면 또 치고 싶을 거 같아."

"네 알겠어요."

"아무튼, 난 내일부터 노인정 오가면서 소일거리하고 글이나 쓸 거야. 피곤하다 가서 자라."


방에 들어와서 봤을 때 흰 봉투에는 작은 메모가 있었다. 그 메모에는 '준비 서류'라며 고등학교 성적증명서, 대학 졸업증명서와 성적증명서, 주민등록등본, 신체검사기록, 통장사본, 가족관계증명서라고 적혀있었다.


그리고 안에는 아빠의 청춘을 흡수하고 노조활동을 장려해 기타 실력 향상에 혁혁한 공을 세웠으며 희망퇴직으로 내게 학자금 대출을 선사한 회사 이사장의 추천서가 들어있었다.

의아했다. 모든 사실은 아빠가 잠든 뒤 엄마와 둘이 저녁을 먹으며 확인할 수 있었다.


"내 새끼. 결국 그거 받았구나. 아빠가 마지막으로 양심의 흠집 내며 거래한 거다. 어찌나 신신당부하던지 절대 먼저 말할 수는 없었어. 아빠가 퇴직 직전에 회사의 큰 부정부패를 노조 활동하며 알았는데 회사에서 제안을 한 거야. 무슨 폐수 방류부터 해서 하청업체에 요즘 TV에서 그렇게 때려대는 단가 후려치기 같은 걸 했다나 봐. 어쨌든 아빠가 그걸 폭로하겠다고 했더니 이사장이 직접 면담을 하자고 했대. 그리고선 마지막으로 아빠를 회유하기 위해 내놓은 게 희망퇴직과 네 대학 졸업 후 취업이었어. 아빠는 흔들렸대. 이놈의 베이비붐 세대가 애들 앞길 막고 있는 건 아닌지 답답할 때도 있다고 했던 사람이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엄마한테 그 말을 한 날 아빠는 기타를 치지 않더라. 엄마는 당연히 아빠가 기타를 칠 줄 알았는데 말이지. 생각보다 결정은 쉬웠나 봐. 아빠는 엄마한테 '여보, 나 바보 등신같이 살았지?'라고 묻더라고. 그래서 내가 '당신 그래도 양심 하난 최고지'라고 했더니 한 번만 그 양심 자식을 위해 실금 좀 내보자고 하더라고. 사정을 다 듣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 어쨌든 내 새끼는 내일부터 그 회사 가는 거야. 먹고살기 위해서도 있지만 그래도 아빠의 마지막 양심은 네가 땜질해야 하지 않겠니? 다니면서 아빠의 기타 실력이 늘 수밖에 없었던 그 모습들 앞에서 당당히 살아봐. 아이고, 내 새끼, 지금 우는 거야? 그러지 마. 아빠 일어나면 그냥 아무것도 모른 척하고 고맙습니다만 해. 너도 기타 치는 거 좋아하잖아. 얼마 있다가 아빠처럼 일찍 퇴근해서 치는 거 아니니? 아무튼,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까 내일 당장 서류 준비 잘하고. 아 맞다. 아빠가 그래도 한 마디는 전해달라고 하더라. 아빠도 뿔났다고."

이전 05화(초단편소설) 월세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