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편소설) 쇼미 더 '뭐니?'

by 반동희

안녕. 내 소개부터 할 게. 난 한국에 잠깐 있는 24살 남자야. 사람들이 래퍼라고 부르는 MC이기도 하지.


너희가 힙합 게시판에서 순수 힙합 정신이니 뭐니 말도 안 되는 주제로 싸우길래 무대를 달구는 내가 직접 몇 자 적어볼까 해. 내 개인 의견이지만 다른 래퍼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깔고 들어갈게.


일단 내가 가끔 "난 마이크를 잡았을 때 가장 편안하고 내가 살아있음을 느껴"라고 하는 건 전부 방송용이야.


사실 난 숫자 '땡땡땡'이 찍힌 내 은행 어플을 켰을 때 가장 기쁘지. 땡땡땡이 많을수록 내 가슴속에서 행복감에 울리는 땡땡땡의 증폭도 커지지.


그러니까 한 마디로 난 내가 한 랩이 돈이 되어 돌아왔을 때 살아있음을 느낀다는 거야.


간단히 자랑질 좀 할게. 다른 사람들이 아침에 찌뿌둥 한 몸을 일으켜 출근할 때 난 여전히 꿈나라지. 난 그들을 '일반인'이라고 불러.


가끔 난 내가 폭삭 망해 직장인이 되는 꿈을 꿀 때가 있는데 정말이지 최악이야.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살면서 매일 아침 9시까지 철창이나 다름없는 사무실에 들어간다는 건 죄수나 다름없을 것 같아. 전생에 지은 죄가 남아서 그런 건 아닐까 상상도해.


게다가 가는 길은 또 어떻고? '지옥철'에 몸을 구겨 넣는 건 기본이겠지. 인터넷 뉴스에서 본 그 장면들은 정말 끔찍했어. 내 앞에 몸이 밀착된 여자에게 괜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대한독립 만세를 해야 할 거야. 노트북과 각종 서류가 든 가방은 앞 무릎에 가지런히 모아 사람 사이에 낀 몸으로 중심을 잡아야겠지.


만약 그게 백팩이라면 난 나보다 소중한 노트북과 서류가 든 백팩을 꼭 껴안으면서 "여자를 더듬는 놈이 아닙니다"라고 표현하는 동시에 고개까지 거기에 놓을 수 있겠지. 잠깐 잠이라도 들 수 있다면 일석삼조가 따로 없을 거야. 그렇다면 역시 답은 백팩인 건가? 그래서 그런지 사진 속 직장인 중에도 백팩 맨 사람들이 많더라고.


어쨌든 내가 생각한 것과 주워들은 걸로 죽 나열해봤는데 정말이지 한국에서 직장인이 되는 꿈을 꾼 다는 건 끔찍해. 몇몇 남자들이 군대 갔다 온 꿈을 다시 꾼다고 하던데 내가 직장인으로 사는 꿈을 꾸는 게 아마도 그 정도의 처참함이지 않을까 싶어.


이런! 군대 얘기가 나와 버렸네. 맞아 난 그딴 거 몰라. 다녀오지 않았지. 난 미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이야. 한국 국적? 난 한국을 사랑하지만 한국의 군대까지는 사랑하고 싶지 않아. 내게 2년을 거기서 구르라는 건 치워도 되지 않는 길거리의 개똥을 2년 동안이나 치우고 다니라고 하는 것과 같아.


생각해 보자고. 내가 분단국가 만들었어? 아니잖아. 힘없던 어르신들이 싸워서 남한 북한 만든 걸 왜 미국에서 태어난 나까지 책임져야 하느냐고. 난 안 해. 아니 미국인이니까 못하지.


방송에서 이런 문제가 나올 때가 있는데 그땐 조용히 미국 가 있으면 돼. 소속사에서 알아서 길을 열어주지. 그래도 상관없어. 난 저작권료로 놀면서도 누워서도 자면서도 똥을 싸면서도 물을 내리면서도 돈을 버니까.


사실 솔직히 말해볼게. 내가 방송에서 한국을 사랑한다고 말할 때는 '팬들이 내게 환호할 때의 한국'을 좋아하는 거야. 무대에서 내려왔을 때의 한국을 사랑하는 건 가당 치도 않은 거지.


한국은 답답해. 난 어쩔 수 없이 랩에 쓸 가사의 영감을 얻고 단어 폭을 키우기 위해 신문을 봐. 그때마다 생각하는 건 참 서러운 나라라는 거야. 일자리가 없어서 내 또래 친구들은 난리인 듯해. 거기다 북한과는 매일 이러쿵저러쿵 다투지.


내가 미국에 있을 때 들은 소리 중 하나가 "한국에 소포나 택배 보내면 김정은이 먼저 검사하느냐?"였어. 난 그때까지 한 번도 한국 땅을 밟아 본 적이 없었고 이미 내가 미국인이라 나도 모른다고 답했지. 물론 내가 어릴 적 살던 곳이 텍사스의 시골 마을이고 워낙 어릴 때 얘기라 그럴 수도 있어. 하지만 지금도 그런 평범한 미국인 많을 걸?


내가 태어난 미국이란 나라는 정말 개방적이라서 생김새가 중요하지 않아. 가끔 인종문제가 터지기도 하지만 그건 또 국적이랑은 다른 개념이. 미국은 국적이 미국이면 곧장 '우리'가 될 수 있지. 그런데 한국은 안 그렇잖아? 그 베타성이 참 의문이야. 뭐 그리 대단하다고 싸고 감싸는지 모를 정도라니까.


나한텐 영국 친구가 하나 있는데 그 쪽은 더 심해. 영국 친구는 처음에 '노쓰 코리아'와 '싸우스 코리아'도 구분하지 못했으니까. 근데 그 친구 얘기 들어보면 그런 애들이 자기 친구 중에도 많대.


그런 얘길 듣고 내가 한국에 와서 처음 느낀 건 영국은 지구 어디에 붙어있는지도 모르는 한국이란 곳에서 내가 '구너'라느니 '콥'이라느니 하면서 프리미어리그 구단 서포터를 자청한다는 거야. 정말 웃겨서 할 말을 잃었지. 뭐 어쨌든 상관없지. 다들 내 무대에 열광하는 팬들이거나 혹은 그런 섹시한 여자들의 남자 친구들일 테니까.


현업 래퍼로서 익명성을 이용해 하나 귀띔해볼게. 친구들 요즘 <쇼미 더 머니>에 푹 빠져있지? 아주 좋은 현상이야. 너희 같은 시청자들이 엄청난 이슈를 불러 모을수록 초반에 내가 말한 내 은행 어플의 땡땡땡이 불어나기 때문이지.


좋은 평가든 나쁜 평가든 차이 없어. 대중들 입에 오르는 존재 자체가 우릴 돕는 거지. 이건 정말 진심으로 내가 여러분께 감사한 일이야.


사실 쇼미 더 머니 촬영이 쉬운 건 아냐. 앨범 저작권료가 들어올지 말지도 모르는 그 곡을 위해 가사를 쓰고 외워야 해서 그래.


그런데 그것도 시즌을 거듭할수록 요령이 붙더군. 대충 라임 짜 맞춰 넣으면 돼. 그리고 "이건 디쓰야"라고 반복적으로 외치면 되지. 가사 쓰기 어려울 땐 뭐다? 영어를 구거어서 빠르게 읊으면 돼. 그럼 더 간지가 나지. 게다가 욕까지 섞어주면 그럭저럭 한 회분은 때울 수 있어.


아까 말한 저작권료도 살짝 말해볼게. 다행히 최근에 나간 것들은 음원사이트에 올라오더군. 그럴수록 뭐다? 맞아. 내 은행 어플의 땡땡땡이 불어나면서 내 간지가 살아나면서 내 심장이 쿵쿵 뛰는 거지.


내가 게시판에 이런 글을 쓰는 이유가 뭐냐고? 이제 슬슬 한국 생활에 흥미를 느끼지 않기 때문이야.


난 국적이 미국이니까 비자 문제 때문에 한국 활동을 오래 하더라도 미국에 의무적으로 다녀올 수밖에 없거든. 그럴 때마다 내가 하는 생각이 뭔지 알아? 미국에서 뜰 수만 있다면 한국에서 더는 활동하고 싶지 않다는 거야. 'fuck'이나 '족구 하네' 같은 소리만 랩에 넣어도 환호하는 그 어설픔이 이제 지겹고 촌스럽다는 거지.


얼마 전 쇼미 더 머니에 스눕독이 나왔을 때 난 "암 쏘리. 잇츠 어나더 힙합"이라고 말하며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지. "이런 게 힙합이면 난 힙합 아니네"라고 속삭이며 나도 모르게 조용해졌지. 솔직히 요즘 내 잔고를 채워주고 있는 쇼미 더 머니는 내가 보기에도 정말 '쇼미 더 뭐니?'란 소리가 절로 나와.


지금 이 게시판에서 내가 프로듀서인지 참가자인지는 밝히지 않겠어. 그것까지 알려지면 한국에서 내가 가장 인정하는 '네티즌 수사대'가 가동될지도 모르지.


사실 이 글을 이 게시판에 쓰고 있는 지금도 난 지금 막 만든 아이디와 PC방을 이용하고 있지. 불필요한 IP 추적이라느니 이런 거에 휩싸이고 싶지 않아.


아쉽겠지만 이만 쓰고 퇴장할게. 진짜 한국에서 퇴장하고 미국으로 돌아가는 날을 위해 오늘도 '족구 하는 fuck' 같은 가사를 쓰러 'Go ah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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