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편소설) 어느 이장의 독백

by 반동희

처음부터 난 알았죠. 내가 평범한 곳에 태어나지 않았다는 것을요. 아버지는 동네를 제 손 주무르듯 쉽게 관리하셨어요.


키는 작으셨지만 저한텐 그렇게 커 보일 수 없었어요. 사람들은 아버지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셨죠.

하루는 아버지가 아침 식탁에서 보고를 하던 분을 향해 "자네, 지금 그걸 나보고 들으라고 하는 소린가?"라고 하셨어요. 그 다음날 그분은 저희 동네에서 볼 수 없었죠.


아마 아버지가 옆 동네로 보내신 것 같았어요. 그날의 카리스마는 정말 대단했죠. 이장으로서 아버지의 권위는 최고였어요. 늘 옆에 분들이 아버지 곁에서 손과 발로 일했으니까요. 저와 동생들은 그런 모습을 보며 사람을 다스리는 게 이런 것이구나 하고 배웠죠.


어머니요? 아버지에 대한 호불호가 암암리에 있었다면 어머니는 그렇지 않았어요. 어머니를 싫어하시는 분들은 적어도 제가 봤을 땐 동네에 없었죠.


늘 온화한 미소와 지적인 이미지를 갖고 계셨어요. 저와 동생들한테 늘 "그렇게 말 뒤끝 흐리면서 말하지 마라. 주어를 분명히 써서 얘기해라. 단어 하나를 쓰더라도 올바른 뜻을 알고 써라"라고 강조하셨죠.


그래서 그런지 전 어머니를 존경했어요. 자식들 중 유일하게 여자였기 때문에 어머니 모습을 많이 닮으려고 노력했죠. 어때요? 지금 제 모습이 어머니와 많이 닮지 않았나요? 밖에 나가면 동네 어르신들이 그렇게 저랑 어머니가 닮았다며 칭찬하더라고요.


잠시 슬픈 과거 얘기도 해볼게요. 아버지의 죽음과 어머니의 죽음은 제게 큰 상처였어요. 내가 머물고 있는 우리 집 밖의 동네가 그토록 험난하다는 걸 난 너무 어린 시절에 깨달았죠.


그때 한 동네 삼촌이 와서 제게 쌀가마니를 주셨는데 꽤 양이 많아 지금까지 사는데 문제는 없었어요. 그것 갖고 말들이 많아서 찝찝하지 않느냐고요? 글쎄요, 어떻게 말씀드려야 하나 모르겠네요.


아, 이렇게 생각해보시겠어요? 평범하지 않은 곳에서 태어나 부모를 다 잃는 낭떠러지까지 몰려봤으니 그에 상응한 대가라고 생각해요. 제가 얼마나 슬펐겠어요. 아무리 쌀이 많다 하더라도 동생들과 그 세월을 어떻게 견뎠을까도 고려해주세요.


앞으로 동네 분들에게 돌려주면 되는 거 아닌가요. 전 비록 제 손으로 모내기도 해보지 않았지만 크게 의미를 두고 있지 않아요.


제가 살아온 과정이나 그런 것들은 많이 알려져 있어요. 앞에 말씀드렸듯이 태어났을 때부터 평범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알려진 것들 중 사실도 있고 거짓도 있고 과장된 부분도 있었죠. 하지만 일일이 대응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으레 앞서 나가거나 평범하지 않으면 따르는 부작용이니까요.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을 보면 제가 깨달은 건 그런 부분도 있어요. 모든 것은 나중에 평가받는 것이지요. 지금은 그게 맞는지 아닌지 아무도 모르는 거예요. 전 저를 비판하는 사람들한테 그걸 강조하고 싶은 거예요. 평가는 역사가 하는 거죠.


하지만 몇 가지 할 말은 있어요. 최근 몇 년간은 제 인생에서 꽤 답답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 봐요. 제가 아버지를 이어 이장이 됐을 때부터죠.


처음부터 여기 저기서 부정선거라고 왈가왈부했어요. 특히 저 때문에 떨어진 이장 후보 쪽에서 그런 말들이 많았죠. 그쪽에 표를 던진 사람들도 그렇고요. 그래도 전 초지일관 모든 것에 대응하지 않는다는 제 신념을 갖고 버텼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남쪽 강가에서 일이 났지 뭐예요. 아이들이 타고 놀던 뗏목이 망가져 동네 아이들이 꽤 빠져 죽었죠.


갑작스러운 일에 저도 놀랐지만 아버지와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처럼 냉정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정말로 차분하게 대응했어요.


그랬더니 이번엔 말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 당시 7시간 동안 어디서 뭘 했느냐고 따지더라고요. 결혼도 하지 않고 자식도 없으니 저렇게 태평하다고 하고요. 아마도 부정선거 왈가왈부했던 사람들이었겠죠.


이번에도 전 먼 훗날 역사의 평가를 받겠단 생각으로 대수롭지 않게 넘겼어요. 다만 이런 일을 일으킨 뗏목 장수를 끝까지 쫓았죠. 그랬더니 사람들도 조금은 잠잠해지더라고요. 저보단 그쪽으로 비난의 화살이 날아갔어요.


그리고 한 가지 확실히 했죠. 마을 회관에 저를 비판하는 낙서가 자꾸 거슬리니까 이들을 잡아보자고 늘 문고리 뒤에 앉아계신 어르신들과 상의했어요.


근데 또 이게 끝이 아니었어요. 제가 예전부터 좋게 본 유 씨 젊은이가 있는데 문제를 일으켰어요. 이 친구 그렇게 안 봤는데 마치 스파이였던 것처럼 제 의중에 대들었지 뭐예요. 제가 어떻게 키운 친구인데 하는 생각에 화가 나더라고요.


다시 제가 느낀 것을 행동에 옮겼죠. 그건 바로 배신하는 사람을 단호히 처리했던 아버지의 생생한 교육이었어요.


결국 그를 내쳤죠. 물론 아버지 대와는 다르니까 수위 조절은 했어요. 그 친구 지금 생각이 많을 거예요.


어쨌든 조금 잠잠해지는가 싶더니 이번엔 온 동네에 메르스가 도는 거예요. 중동호흡기 질환이라고 예전엔 없던 것이었죠.


전 또 다시 세태를 관망했어요. 기다리면 답이 보인다고 기다리라고 지시했어요. 동네 사람을 안심시켜야겠단 생각에 여러 의견을 들어 홍보활동을 했죠.


그런데 이번엔 또 트집 잡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낙타 고기를 운운하더라고요. 생각해보세요. 요즘 시골 길이 어디 옛날 시골길인가요? 경운기 한 대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잖아요.


아무리 군 단위가 달라지는 동네라 하더라도 마음만 먹으면 낙타고기쯤은 우리 동네에서도 먹을 수 있지 않겠어요? 정말 답답했다니까요.


문제는 이런 우여곡절이 많아지다 보니까 지지율이 떨어졌다는 거예요. 안 그래도 간발의 차이로 자리에 올랐는데 이러다간 큰 일 날 것 같다 싶었죠. 아무리 훗날 역사의 평가를 받겠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지지율이 떨어질 줄은 저도 몰랐으니까요.


게다가 내년에 동네 주요 직책을 뽑는 총선도 있는데 예전부터 선거의 여왕이라 불리던 제가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죠. 제 주변 분들이 모두 저를 쳐다보고 있으니까요.


나중에 이장을 꿈꾸는 제 측근을 위해서 확실한 반전 카드가 필요했어요. 매번 수첩 들고 나가면 수첩 공주라고 하고, 그런 소리 듣기 싫어 눈길 좀 피하면 대면 보고 안 받는다고 귀찮게 한 이들을 향해 '한 방'이 필요했죠.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어요. 그랬더니 쉽게 방법이 보이는 거예요. 머리를 굴리기 전에 머리 위에 뭐가 있는 가 먼저 살폈죠.


그래요. 우리에겐 북쪽 동네가 있었어요. 이 녀석들 얼마 전 이장 바뀌더니 욱하는 성질이 심하더군요. 그쪽 이장이 나이가 어려서 아무래도 그런 경향이 있거든요. 그래서 슬슬 건드리자고 했죠.


가만 보니까 북쪽 동네에 대고 소리치던 확성기가 우리 쪽에 여전히 있는 거예요. 예전부터 북쪽 동네랑 저희랑 티격태격 많이 했는데 그때마다 저희랑 그쪽 모두 확성기로 서로를 긁었던 적이 있거든요.


그래 저거다. 저걸 틀어보자. 저 욱하는 성질을 건드리면 내 지지율이 올라가겠구나 생각했죠.


저쪽 동네 얘기를 조금이라도 꺼내면 "거기가서 살아 이 벌거숭이 놈아"하는 분위기가 우리 동네에 아직도 있거든요.


오래간만에 확성기 틀어 볼 테니 이 녀석들아 너희가 매번 말하던 그 돌팔매질 한 번 해봐라 하는 심정으로 결국 틀었죠.


결과는 어땠냐고요? 보시다시피 제 얼굴은 다시 평온을 찾았죠.


벌써 이장 임기도 절반이 지났는데 앞으로도 큰 어려움은 없을 것 같아요. 이미 위기 탈출의 달인이 됐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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