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편소설) 평범중학교의 열한 번째 동창회

by 반동희

"여러분들은 믿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중엔 먼 훗날 불행한 사람이 있을 수 있지. 열심히 살았는데 운이 안 따른 사람도 있을 거야. 그게 아니라면 인생을 소비하다 스스로 망쳐버린 경우일 수도 있을 테고. 당장 오늘 집에 가서 난 누구인가부터 잘 생각해보도록."

지극히 평범한 아이들이 다니는 평범중학교 졸업식에서 3학년 3반 담임선생이 마지막 종례를 했다. 학생들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대답하지 않자 선생은 계속 말했다.


"이제 여러분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생각할 시간이 부족해진다. 앞만 보고 달려가길 여기 저기서 채찍질할 거야. 거기서 낙오하면 곧장 탈락자라는 오명을 고교 졸업 때까지 달고 다닐 확률도 높고. 선생이 아니라 큰형 입장에서 하는 소리다. 앞으로의 세상은 더욱 쉽지 않아. 지금 이 시간을 아껴서 똑바로 살도록."


교실이 조용해졌다. 선생은 후련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공부를 잘하면 대부분 잘 살지 않나요?"

반에서 매번 공부 1등을 놓치지 않은 철수가 물었다.


똑똑하면서도 노는 것을 좋아했다. 특히 학 종이 따먹기나 판치기 등 잡기에 능했다. 수업 태도는 좋지 않았지만 머리가 좋아 이미 명문 고등학교 진학을 확정한 상태였다.


몇몇 선생들은 철수가 평범한 가정환경이 아니라 좀 더 잘 사는 집에서 태어났다면 일찌감치 유학을 가서 더 잘 클 수 있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담임은 그저 웃고 말았다.


"그렇지 않다. 공부를 잘한다고 무조건 잘 사는 건 아니다. 물론 못한다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공부를 잘해 높은 자리에 올랐는데 딴 맘을 먹으면 그만큼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 매번 말하지만 학교 공부는 인생의 출발선이 아니라 출발선에 서기까지의 준비운동이다. 공부 말고 다른 주변도 살펴라. 세상은 넓고 막상 출발선에 섰을 때 그게 남과 다를 수도 있다. 출발선이란 게 아무리 공부 잘하는 철수 너라고 하더라도 남들보다 뒤에 있을 수 있고."


선생이 준비된 답변처럼 곧장 대답했다.


"그럼 공부를 못하면 잘 될 수 없나요?"

열심히는 하는데 항상 중간 이상의 성적을 못 벗어난 영희가 질문했다. 영희는 크게 재주도 없고 성적도 그저 그랬다. 하지만 수업 태도만큼은 항상 좋아 여러 과목 선생들의 칭찬을 받았다. 영희는 평범 고등학교에 진학하기로 돼 있었다.


"아니다. 열심히 하는데 결과가 안 좋은 것과 전혀 하지 않아 결과가 별로인 것은 크게 다르다. 못하는 것은 물이 100도에서 끓는 것과 비교해 99도에 있는 것이다. 99도란 중요한 시점이다. 항상 생각하고 자기가 끓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에 어떻게 1도를 채울까 고민할 수 있는 순간이지. 영희 너는 언젠간 1도가 찰 거다. 하다못해 그 1도가 뭔지는 찾을 수 있을 거다."


이 또박또박 설명했다.


그로부터 35년이 지났다.


철수와 영희 모두 51살이 됐다. 둘은 나란히 동창회에 참석했다. 분위기가 무르익 다들 취기가 올랐다.


철수가 동창들 앞에서 말했다.


"예전에 중학교 선생님이 공부를 잘한다고 무조건 훌륭한 사람이 되는 건 아니라고 하셨지. 다들 기억할 거야. 학교 공부는 인생의 준비운동이라고 하셨고. 높은 자리에 올라서 딴 맘 먹으면 그만큼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고도 하셨지. 하지만 지금 나를 봐. 난 계속 공부를 잘했고 학 종이 따먹기와 판치기 같은 술수에도 늘 강했지. 돌아보니까 엉뚱하게도 거기서 사람 사이의 경쟁을 배웠더라고. 그 덕분에 경쟁에서 밀리면 끝인 세상에서 낙오하지 않은 거야. 타고난 머리와 승부수를 던질 타이밍을 알았던 거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둬야 하는 순간과 내 회사를 차려야 할 때를 절묘하게 맞춘 거야."


철수의 말에 동창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철수는 명문대를 졸업한 뒤 대기업을 다니다 일찌감치 퇴직했다. 그러다 회사를 창업해 성공 가도를 달렸다. 신문이나 잡지에도 여러 번 났으며 유능한 사업가로 가끔 방송에도 나왔다. 10년 전 동창회를 처음 소집한 것도 철수였다.


그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목소리가 커졌다.


"세상에 어느 정도는 길이 있다고 봐. 너희도 다 알잖아? 노력해서 되는 게 있고 안 되는 게 있어. 모두 최고 혹은 최상을 꿈꾸지만 그렇게 될 수 없지. 난 공부가 유리한 세상에서 운 좋게도 그 머리를 타고 난 거야. 그런데 지금 봐. 난 중간 이상을 해냈다고. 그런 의미에서 오늘 술값은 내가 전부 쏠게."


동창들이 환호했다. 모두 손뼉 치며 그의 이름을 외쳤다.


이때 영희가 손을 들어 자기도 할 말이 있다는 의사 표시를 했다. 영희가 동창회에 참석한 건 10년 만에 처음이었다. 이 때문에 모두의 시선이 급격하게 영희 쪽으로 쏠렸다.


"철수가 담임선생님 얘길 하니까 기억나네. 거기에 하나 덧붙여 볼게. 너희도 그때 내가 공부는 열심히 하는데 성적 안 나왔던 거 알고 있지? 몇몇은 수업 시간에 놀면서도 1등 하는 철수랑 나를 몰래 비교했지. 내가 수업 태도 제일 좋고 심지어 나가는 선생님들 매번 따라가 질문까지 하는데 늘 중간밖에 못한다고. 나 그거 다 알고 있었어. 맞지?"


동창 몇몇이 멋쩍은 웃음을 보였다.


"그래. 난 늘 열심히만 했지. 그날도 마찬가지였어. 난 마지막 종례 날에도 담임선생님께 가서 더 여쭤봤지. 그랬더니 선생님께서는 설사 마지막 1도가 오르지 않아 평범하게 살더라도 그게 최고가 되는 시대가 올 것 같다고 하셨어. 삭막함이 더욱 번져 지금부터 반 학생들 사이사이가 조금씩 멀어질 것이며 '그런 친구가 있었나?'라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경우도 많을 거라고 하셨지. 그동안 정기적으로 모였던 너희 사이에선 그게 나였을 확률이 높고. 그렇지?"


철수를 비롯한 대부분 동창이 고개를 끄덕였다.


"궁금할 거야. 그래서 난 어떻게 됐느냐고? 평범해. 지극히 평범하지. 평범 고등학교를 마치고 평범 대학교에 학자금 대출을 받아 진학했어. 평범 회사에 들어가 꽤 오래 일하다가 몇 번의 구조조정으로 이직을 경험한 뒤 지금도 평범한 일을 하고 있고. 무기 계약직이지만 만족해."


영희의 말이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그럼 넌 결국 중간 이상의 삶을 벗어나지 못한 거야?"

의아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한 동창이 물었다.


영희가 웃었다. 그리곤 기다렸다는 듯 술술 풀어냈다.


"여기서 일터에 9시에 출근해서 6시에 딱딱 퇴근하는 사람 손 들어봐."

아무도 들지 않았다.


"그럼 집이나 차 살 때 은행 대출금이나 하다못해 조금이라도 빚 없는 사람 손 들어봐."

역시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럼 여기서 각자의 자녀들이 요즘 무슨 고민을 하고 있으며 뭘 하고 싶어 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 손 들어봐."

묻나 마나였다.


"그럼 여기서 고혈압, 당뇨, 복부 비만, 만성 두통, 만성 피로, 탈모 그것도 아니면 심한 스트레스 없는 사람 손 들어 봐."

모두 눈동자만 굴렸다.


"그럼 여기서 배우자가 더 능력 있는 상대와 바람피우진 않을까 걱정 한 번도 안 해본 사람 손 들어 봐."

서로 남의 눈치만 봤다.


영희가 계속 당당하게 말했다.


"난 서울 변두리 월셋집에 살고 있어. 남들 다 뼈 빠지게 일해서 집 살 때 받은 대출금아나가는 게 부질없어 보이더라고. 그래 놓곤 일하느라 집에 있을 시간도 없잖아. 안 그래? 차도 당연히 없지. 기름값에 세금에 소모품 교체까지 그런 거 하려면 또 돈 벌어야 하잖아. 그렇게 집도 없고 차도 없으니까 대출금도 없더라고."


모두가 더욱 영희의 입만 바라봤다.


"결혼? 안 하는 사람이 더 많은 세상에서 당연히 나도 안 했지. 아이도 있을 리가 없고. 아이 있어봐야 같이 보낼 시간도 없잖아? 또 맞벌이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야 하니까. 물려받은 게 많지 않으면 평범한 사람이 이 모든 걸 빚 없이 하기 힘들어. 그런 것쯤은 이젠 우리 모두 알잖아. 그렇지?"


영희의 말에 모두가 숙연해졌다.


그런데 갑자기 철수가 크게 흐느껴 울었다. 철수의 눈물은 한동안 멈추지 않았다. 아무도 그에게 왜 우는지 묻지 않았다. 철수가 울자 동창 몇 명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영희는 고개를 좌우로 절레절레 흔들더니 계속 말했다.


"어쨌든 난 정시에 퇴근하며 적은 월급 받으니까 스트레스는 받지 않더라. 무기 계약직이라 정규직 하곤 차이가 많이 나지만 이 나이에 무슨. 어쨌든 꾸준히 집 주변에서 달리기 하니까 아까 내가 말했던 병들도 없고. 외롭거나 갖고 싶은 것 없느냐고? 당연히 그럴 때 있지. 하지만 금수저 물고 태어나지 않은 이상 평범하기 힘든 세상에서 그런 게 다 무슨 소용 있을까? 가지려고 하면 할수록 늪에만 빠지는 걸 너무도 많이 봐 왔거든. 우리 모두 평범중학교 다녔잖아. 잊지 말자고. 우리에게 필요한 건 작은 것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능력이지 않을까 해. 99도를 산 내가 느낀 게 이거야. 평범하지 못한 사람들도 부지기수라고."


은 2045년 8월 30일을 넘고 있었다. TV에선 "국민소득 5만 달러 시대가 눈앞에 왔다" 소리가 들렸다. 모두가 TV 뉴스로 눈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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