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편소설) 마지막 고객

by 반동희

"이 정도 서류면 되는 거요?"


머리가 듬성듬성한 중년 남자가 웃으며 내게 물었다. 창구 밖에 앞에 선 그는 커다란 체구와 달리 목소리가 얇았다. 큰 눈동자에 짙은 눈썹이 돋보였으며 그 나이에 맞지 않게 새하얀 피부가 어우러져 이국적이었다.


"네, 주시고 돌아가시면 며칠 뒤 담당자가 연락드릴 겁니다."


창구 안에 앉아 있는 나는 받아 든 서류를 집어 들고 사무적으로 대꾸했다.


"아니, 그런데 되긴 되는 거 맞죠? 이거 꼭 돼야 우리 더 잘 먹고 사는데."


중년 남자는 물러서지 않고 친근하게 말을 이었다. 얘기하고 싶다는 감정이 읽혔다. 하지만 난 그 의중에 연결되고 싶지 않았다. 퇴근 시간을 앞두고 감정 소비에 빠지기 싫었다.


"잘 아시겠지만 특허 출원이란 게 까다롭습니다. 저는 서류 접수만 받습니다. 관련 담당자가 살핀 뒤 추가 사항을 알려드릴 겁니다."


고개를 숙여 책상 위에 옮겨 받은 서류를 흘깃 봤다. 특허를 내겠다는 건 찹쌀떡이었다. 다양한 고물을 넣어 전혀 다른 맛의 찹쌀떡을 만드는 데 이걸 특허받겠다는 것이었다.


"어때요? 총각이 보기에도 꽤 신기하지 않소? 우리 집 매상 팍팍 올릴 비장의 카드라니까."


서류를 주고 간 줄 알았던 중년 남자가 창구 앞에 여전히 서 있었다. 앉아있는 나를 내려다보며 웃고 있었다. 괜히 봤다는 생각이 밀려왔지만 이미 늦은 후회였다.


퇴근 시간 10분을 남기고 나타난 까다로운 고객이 반가울 리 없었다. 그러다 문득 '마감 업무 1시간 전부터 창구 출입이 되지 않는데 어떻게 이 남자가 내 앞에 서 있을까'란 기묘함이 머리를 스쳤다.


"과일도 넣고 으깬 팥빙수도 넣고 심지어 닭고기도 넣을 거요. 요즘은 웰빙 아니겠소, 웰빙. 야채 샐러드도 잔뜩 넣을 거요. 어때? 벌써 입맛이 싹싹 돌지 않소? 법률사무소에 알아보니 이건 내기만 하면 바로 특허감이라던데. 업무 대행 다 해주겠다는 걸 접수만큼은 내가 하고 싶다고 우겨서 이렇게 왔소."


"네, 어르신 알겠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10분 있으면 업무를 마감합니다. 서류에 쓰신 연락처로 연락이 갈 겁니다."


"허허. 그 총각 표정이 싹 읽히네. 자네도 이런저런 서류들 슬쩍슬쩍 봐왔지만 이게 대박 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모양이군."


"죄송합니다만 저희가 지금 시간이 없습니다. 일단 주고 가시면 연락이 갈 겁니다."


짜증이 밀려왔다. 어차피 10분 후면 나와는 관계없는 일에 힘을 쏟고 싶지 않았다. 그게 나를 밀어내는 것이라 더욱 의미 없었다.


특허청에 들어와 일한 지 2년이 다 됐다. 계약직으로 어렵사리 일자리를 잡아 버티고 버티는 중이었다. 오늘은 정확히 2년째 되는 날이었다.


1년 마다 계약 연장을 하는데 사측에서 아무런 말이 없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는 통보와 같았다. 그래서 마지막 이 10분이 내겐 쓰라림이었다. 개인적 씁쓸함과 사회의 비릿함을 넘어 막막함까지 불러오고 있는 시간이었다.


"거참, 총각 급하시네. 알았소. 연락처 적는 걸 깜빡했네. 여기 쪽지에 연락처 적을 테니 서류 안에 좀 넣어 주쇼."


"네, 이쪽으로 주시고 돌아가시면 됩니다."


나는 서류 접수받을 때 고객에게 주는 바구니를 중년 남자에게 건넸다. 그는 말없이 메모지 한 장을 그 위에 올렸다. 바구니를 받아 책상에 내리고 나는 멀뚱히 그를 쳐다봤다. 이번엔 진짜로 그가 몸을 돌렸다. 그리곤 소리 없이 걸어나갔다.


"창원씨. 뭐해? 오늘 마지막 일이라고 감상에 젖은 거야?"


등 뒤에서 부장이 의자에 기댄 채 날 불렀다. 담배 피우러 나간 것까지 확인했는데 어느새 들어와 있었다. 술을 잘 마시고 풍채가 좋은 부장은 내게 아빠뻘 되는 나이였다.


그는 종종 "요즘 젊은이들은 진짜 불쌍해. 우리 때랑 하도 달라서 내가 다 미안할 정도라니까"라는 말을 했다. 내 기준에선 염치 있는 인생 선배이자 상사의 태도였다. 난 늘 그의 정규직 일자리와 경력을 동경했다.


"아, 마지막 고객 서류 좀 받았습니다. 이것만 정리해 두고 가겠습니다."


"무슨 소리야? 벌써 10분째 멍하니 고개 들고 문만 쳐다봐 놓고선. 깊은 감상에 빠져있기에 말도 안 걸었다니까. 그리고 마감 코앞인데 무슨 서류 접수야. 창원씨 나랑 그동안 친했다고 마지막엔 장난도 치네?"


부장의 얼굴에 씁쓸한 웃음이 번졌다. 나는 갑자기 머리가 멍했다. 책상 위를 봤다. 아무것도 없었다. 건네받은 바구니에서 쪽지를 꺼내려했다. 하지만 바구니도 텅 비어 있었다. 찹쌀떡 안에 여러 고물을 넣는다는 생각이 허공을 떠다녔다.


등 뒤에서 부장이 무심한 듯 나지막하게 말했다. "얼른 퇴근하라고. 창원씨 들어가는 거 보고 들어갈게. 미안해서 뒷모습을 못 보여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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