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사회가 닦은 교육을 따랐다. 그렇게 겨우 기업에 입사했다. 이후 회사 흡연실에서 담배를 피우며 한 손으로 스마트폰 속 주식 시세를 확인했다. 50원 오르고 내리는 것에 마음을 졸였다.
그때마다 통장에선 나가야 할 돈들이 줄줄이 빠졌다. 알림 문자 속 숫자는 줄고 또 줄었다. 이번 달도 마이너스를 간신히 면했다. 별로 나아질 것 없는 같은 풍경이 월화수목금 이어졌다. 주말엔 곯아떨어지거나 소파에서 넋을 잃었다.
"일어나."
같이 사는 여자 친구가 깨웠다. 오늘도 악몽이었다. 대충 세수를 하고 반팔 반바지 차림으로 밖에 나왔다. 기분 좋지 않은 꿈을 꾼 날엔 사무실에 가기 싫었다. 대충 노트북을 들고 동네 카페로 갔다.
5년 전 대학 졸업을 앞두고 경진대회에서 대상을 탔다. 정부가 주관한 컴퓨터 해킹 대회였다. 취지는 컴퓨터 전문가를 집중 육성하기 위한 인재 선발이었다. 입상자에겐 정부 산하 연구소 인턴 자리가 주어졌다. 난 그 길목에서 잠시 고민했지만 결론은 금방 내렸다.
어릴 적 맞벌이 부모 사이에서 내 친구는 컴퓨터였다. 해가 질 때까지 컴퓨터학원에서 시간을 때워야 퇴근한 엄마가 데리러 왔다. 엄마가 바쁜 날은 아빠 몫이었다. 집에 애 혼자 두면 나쁜 길로 빠진다는 게 이유였다.
베이식으로 어렴풋이 시작한 컴퓨터 프로그램 언어는 그때부터 나만의 안식처가 됐다. 컴퓨터 하나만 잘해도 먹고사는 데 지장 없을 거라고 우리 부모는 내게 말했다. 그렇게 커서 평범한 '코딩인'으로 살 것 같던 내 인생은 그날 경진대회 입상 이후 상반됐다.
"대상 수상자 목록을 보고 연락드렸습니다. 잠깐 통화 좀 가능할까요?"
입상 이후 사흘째 되던 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수화기 속 목소리는 자신을 벤처 업체 사장이라고 소개했다. 당장 내일 나와서 면접만 봐도 10만 원의 교통비 명목 면접비가 제공된다고 했다. 다짜고짜 초봉 1억 원에 추가 인센티브가 매달 지급될 것이라고 돈 얘기로 대화가 시작됐다. 방위산업체 성격으로 군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다고도 들려왔다.
그렇게 출발한 인연은 정부 연구소가 아닌 이름 모를 고액 연봉 회사 취업으로 이어졌다. 야근에 시달리는 평범한 IT 종사자가 되느냐의 갈림길에서 나는 수화기 속 인물이 이끄는 길로 돌아섰다.
면접 이후 5년째다. 나는 페이퍼컴퍼니 '시나몬 데이터'의 주인으로 살고 있다. 날 고용하고 싶다던 그 인물은 회사 설립 이후 매달 수익의 절반을 떼어갔다. 사무실 월세와 전기세를 포함해 기타 모든 잡비는 전부 그가 알아서 처리했다.
나는 첫 만남과 그다음 몇 번의 오리엔테이션을 가장한 대면보고만 한 채 그의 얼굴을 자주 보지 못했다. 사실상 1인 기업으로 모든 걸 혼자 결정하고 그에겐 결과만 통보하면 됐다.
그렇게 나는 같은 나이의 다른 대기업 '사축'보다 4배 이상의 연봉을 매년 챙겼다. 외제차를 탔다. 평일 밤마다 술값을 탕진했다. 주말엔 그가 주선해 준 유명인이자 나의 고객과 은밀한 곳에서 파티를 즐겼다. 그래도 수중엔 돈이 남았다. 몇몇 VIP 고객은 만날 때마다 성과급이라며 연봉에 가까운 돈을 다음날 바로 부쳐주기도 했다. 일 할 때만큼은 빈틈없이 임하고 그들의 이미지를 관리한 결과였다.
내가 '시나몬 데이터'에서 하는 일은 일종의 유명인 여론 관리다. 정치인, 기업인, 연예인, 운동선수 등 온갖 유명한 사람의 인터넷 이미지를 조작하고 삭제한다. 사실 조작이란 말을 스스로 싫어하는 데 달리 일반인에게 설명할 마땅한 단어가 없다.
여기서 조작이란 것은 단순히 댓글을 삭제하고 연관 검색어를 지워내며 그저 그런 시시껄렁한 인터넷 언론 사이트를 해킹하는 게 전부가 아니다. 때로는 이슈를 이슈로 덮어버리거나 그럴듯한 해외 매체처럼 보이는 사이트에서 또 다른 반대 여론을 수면 위로 쏘아 올린다. 확증편향에 갇힌 사람을 상대로 확대 재생산에 주력한다. 보이는 것만 보이게 하는 것이 이 직업의 원칙이다. 매크로 프로그램은 기본이고 수집한 개인 인터넷 서칭 성향으로 특정인의 눈과 손을 유혹한다.
때로는 내 고객을 위협하는 이의 스마트폰을 직접 해킹해 그의 크롬 화면부터 뉴스 프로그램 추천 리스트까지 온갖 미사여구로 교란한다. 나를 고용한 수화기 속 목소리의 주인공은 이럴 때 주로 내가 있는 곳으로 온다. 내가 작업해야 하는 해당 인물의 휴대폰 번호와 스마트폰 계정 아이디 따위를 건네줄 때도 있다. 내 해킹 이후 그가 보는 화면은 어제와 다른 전혀 다른 화면이 된다.
내가 또 다른 '페이퍼컴퍼니'로 설립해 인터넷 매체처럼 운영하는 국내 사이트와 해외 사이트만 오늘 날짜 기준 15곳이다. 그곳엔 각 사이트마다 최소 6명에서 많게는 15명 가까운 '가상의 기자'가 있다. 물론 이름만 있는 정말 가상의 생명체다.
이들이 맡아 콘텐츠를 생산하는 영역은 내가 부여한다. 내가 그들 가상의 기자를 매일 일을 시켜 마치 정상적인 매체인 것처럼 운영한다. 평소 이런 방식으로 돌려둔 인터넷 매체는 진짜 여론전이 필요할 때 의견이 사실인 것처럼 기사를 쓴다. 일상에 쫓겨 뭐든 스크롤 내리기 바쁜 일반인들은 대체로 의견과 사실을 구분하지 않고 매혹적인 메시지만 진실로 받아들인다. 여기가 내가 노리는 포인트다.
여론은 그렇게 돌고 돌아 내 고객이 불리한 것을 주변부로 밀어내고 훗날 슬쩍 삭제하는 데 미끼가 된다. 일종의 '야바위' 눈속임이다.
아무리 내 고객을 위협하는 부정 이슈가 터져도 사흘을 채 넘긴 적이 없다. 반박에 반박을 가공한 뒤 내가 고용한 가상의 기자단이 '용병 기사단'처럼 기사를 흩뿌린다. 그러면 여론의 시선은 돌아간다. 그 뒤엔 해킹으로 원래의 소스를 삭제한다.
강한 압력이 필요하거나 추후 싹을 자르기 위해선 해당 원본이 담긴 사이트를 폭격한다. 모두가 밝은 곳을 보고 있을 때 희미한 촛불이 타고 있는 곳에 바람을 불어버리는 식이다.
'시나몬 데이터'가 사용하는 모든 아이피는 동남아시아 국가와 일부 이름 모를 유럽 소국으로 나뉘어있다. 일종의 '조세회피처' 개념이다. 실제 여름이나 겨울엔 진짜 그곳에 놀러 가 바닷가에 누워 일을 한다. 신문에서 요즘 '워라밸'이니 '재택근무'니 떠드는 데 나는 그게 가장 우습다. 세상은 늘 앞서가는 이들보다 반발 이상 늦는다는 걸 요란한 헤드라인을 보며 깨닫는다.
댓글 부대 사태가 터졌을 때도 '시나몬 데이터'엔 아무 문제가 없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진짜는 항상 가짜의 탈을 쓰고 있다는 신념이 내겐 있다. 내 발자국은 끝내 잡히지 않았다. 때론 아이피를 교란하고 때론 사이트와 행적을 흔적도 없이 지워버리고 10분 만에 또 다른 행로를 뚫었다. '용병 기사단'은 계약이 끝난 용병처럼 훌쩍 그들 눈에서 떠났다. 히든카드로 준비한 또 다른 2중대 기사단이 저쪽에 웅크려 내게 검을 주고 명령을 내려달라고 무의식에서 아우성쳤다.
해킹이 불가능하다는 블록체인이 큰 위협이 되고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요즘엔 가상화폐 이슈로 시간을 끌며 이것을 덮고 있다. 가상화폐와 블록체인의 개념을 혼동시키는 게 대전제다. 가상화폐는 위험하고 비현실적인 것이며 블록체인은 결국 가상화폐를 위한 것이라는 뻐꾸기를 매일 날리고 있다.
가상화폐 거래소와 커뮤니티를 해킹한 것 역시 나다. 블록체인에 대한 대중의 관심으로 내 입지가 위협받을 때마다 가상화폐 거래소를 해킹했다. 며칠 후면 곧바로 블록체인은 여론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가상화폐의 위험성이 대두했다. 최근은 이것의 반복이다.
시간을 벌어 관련 규제 여론이 활발해지는 동안 나는 또 다른 돌파구를 찾는 중이다. 고객은 소중하며 내 밥줄이고 고액 연봉은 마취제이기 때문이다. 회사 휴게실에서 담배 피우며 스마트폰으로 주식 시세를 보는 동안 대출금이 빠져나가는 삶을 살 순 없다.
가상이 현실을 지배하는 세상에서 용병 기사단은 늘 앞서간다. 나는 정말 일찍 시대의 법칙을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