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훈이가 떠나기로 결정한 날은 토요일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창밖에 빗줄기를 보며 결심했다. 담배 두 모금째를 내뱉으면서 상훈이는 이제 그만하자고 생각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두통이 사라졌다. 휴대폰에서는 서울을 비롯한 중부지역에 장마가 시작됐다고 뉴스앱 속보가 울렸다.
5년 하고도 반이 지난 시간이었다. 목포에서 상경할 때만 해도 상훈이는 2년이면 될 줄 알았다. 이런 곳에서 살 수 있느냐며 온갖 반찬을 바리바리 싸들고 따라온 어머니의 잔소리에도 상훈이는 걱정하지 마시라고 했다. 싸구려 모텔에 있을 법한 좁은 냉장고에 반찬을 꾸역꾸역 넣고 돌아서는 어머니를 상훈이는 꼭 안았다. 군대에서 전역한 날 이후 처음이었다.
그렇게 딱 서른이 되던 해에 원룸을 가장한 고시원 크기의 골방 생활을 시작했다. 9급 공무원 시험 낙방이 이어질수록 주변에선 사법시험이라도 공부하는 것 아니냐며 농담조로 놀리는 친구들이 생겼다. 상훈이는 그들과 연락을 끊어가며 점점 자신을 고립했다. 그럴수록 합격에 다가서는 기분이었다. 다음, 또 다음이라는 자기암시를 걸며 좁은 골방을 무인도 섬으로 바꿔갔다.
“벌써 일어났어?”
뒤에서 연희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진짜 그만두고 집에 갈까 해.”
상훈이가 건조하게 대답했다. 뒤에선 아무 대답이 없었다. 상훈이는 창밖만 봤다.
3년째 시험에서 떨어진 날 상훈이는 ‘룸메이트 구해요’라고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인터넷 카페 글에서 연희와 닿았다. 방값을 같이 부담하면서 잠만 잘 것이므로 아무리 좁은 곳이라도 관계없다는 글이었다. 딱히 성별을 구분해 적어놓지 않아 더 눈길이 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게시물 아이디로 쪽지를 보냈다. 놀랍게도 정말 여자였다. ‘이거 사기 아니야?’라는 마음이 번졌지만 한편으론 욕정이 끌었다.
그렇게 상훈이는 연희와 2년 가까이 골방에서 생활했다. 아침이면 각자의 학원으로 수업을 들으러 나갔다가 밤이면 서로 골방에서 만나 부족한 애정을 채우고 골아떯어지는 식이었다. 연희는 자신을 의성에서 올라와 간호학원을 다니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대학은 가지 않았고 어릴 적 부모님이 이혼해 할머니랑 살았다고 어느 날인가 설명했다.
나머지 것들은 구태여 서로 묻지 않았다. 한낮의 일상도 그들은 공유하지 않았다. 언제쯤 집에 들어올 것이냐, 밥은 먹고 올 것이냐 따위의 확인이 전부였다. 늘 상훈이가 아침에 먼저 나가고 연희가 나중에 나갔다. 주말이면 연희는 나가지 않고 하루 종일 집에서 노트북으로 영화를 보거나 빈둥거렸다. 상훈이는 그런 구분 없이 매일이 똑같았다.
“정말 그만두고 가려고?”
연희가 다시 물었다.
“나도 이제 서른 중반이 넘었는데 지쳤나 봐. 내려가서 부모님 일이나 도우면서 살려고. 이제 답답하고 지긋지긋해.”
상훈이의 말로 이별의 절차는 끝이었다. 주제는 바로 넘어갔다. 연희는 방값을 절반이 아닌 3분의 1만 내고도 살게 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상훈이는 괜찮다고 했다.
‘룸메이트 구한다고 하셨죠?’라고 상훈이가 쪽지를 보낸 뒤 연희를 처음 카페에서 만났을 때 둘은 그렇게 합의했다. 상훈이는 괜찮은 외모의 여자가 정말로 자신과 골방에서 지내기로 했다는 것에 어떻게든 그걸 성사시키고 싶어 미끼를 던졌다. 연희는 거리낌 없이 그걸 받아들였다.
“내가 필요한 일이 생기면 전화해. 짐은 내일 전부 빼서 부칠 거야. 더 오래 고민해봐야 시간만 버려. 이번 달 월세까지는 내고 갈게.”
“그래. 필요한 일이 있으면.......”
연희는 말끝을 흐렸다.
골방에서 상훈이가 가장 많이 한 말은 ‘시간만 버려’였다. 둘의 대화는 늘 겉돌았다. 밤에 나누는 몸의 대화도 욕망에 사로잡힌 날 것 그대로일 뿐 언어로 익혀지지 않았다. 아침이 되면 또다시 상훈은 낭떠러지에 매달려 안간힘을 쓰는 사람처럼 부산을 떨며 밖으로 나갔다.
“나 때문에 시간만 버린 건 아니지?”
상훈이가 신발을 신으며 물었다.
“시간 버릴 게 뭐가 있어. 나도 거의 공짜나 다름없이 살았는데. 고마웠어.”
연희가 침대에 걸터앉아 티셔츠에 목을 넣으며 대답했다.
상훈이는 택배 부칠 박스를 사러 나갔다. 연희는 PC방으로 가서 공무원 준비 카페에 접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