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편소설) 145km…어느 헛스윙

by 반동희

아침을 사는 이들은 저녁을 모른다. 아침 기지개 켜는 이들은 해가 원래 그 자리에 있는 줄 안다. 해가 숨은 저녁은 어둡고 음습하며 생명이 저마다의 거처에서 휴식하는 시간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때 그곳을 박차고 나와 움직여야만 한다. 이들은 어둠을 살라먹어야 비로소 밥을 씹는 자신의 처지를 온몸으로 체감한다. 이따금 이들은 세상을 한탄하지만 손에 잡히는 방법은 많지 않다. 동시에 이들은 아침을 누리지 못한 채 살면서도 아침에서 밤으로 가는 세상의 법칙에서 끝끝내 밀려나 조용히 소멸한다. 아침이 낮을 부르듯 저녁은 밤을 부른다.


그날도 영민의 저녁 출근은 찜찜했다. 눈 뜨자마자 온몸이 욱신거렸다.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도 힘들었다. 칠년 전 수술한 어깨가 이번에도 귀신 같이 날씨를 예보했다. 커튼을 열고 창밖을 보자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휴대폰을 보니 밤사이 빗줄기가 굵어져 내일 아침까지 장대비가 쏟아질 것이라는 날씨 정보가 떴다. 기상 직후 날씨를 보는 건 영민의 오랜 습관이었다. 야간 운전으로 또다른 밥벌이를 시작한 이후 그날의 판관 포청천은 날씨가 되었다. 해 뜨면 집에 들어와서 해지면 나가는 생활의 숙명은 밤하늘 마음에 따라 갈렸다.


“오늘은 좀 쉬라는지 어깨가 욱신거리네.”


곁에서 자는 아내 은주를 향해 영민이 말했다. 정말로 쉴 생각은 없었다. 그저 관심 받고 싶고 힘내라는 대꾸라도 들어보고 싶었다.


“약속한 거 벌써 잊었어? 건강이 태어나면 들어갈 돈이 한 다발이야. 나라에서 몇 푼 준다지만 당장 분유값은? 나도 일하고 싶어. 나도 일하고 싶은데 상황이 이래서 더 답답하다고.”


은주가 눈도 뜨지 않은 채 피곤하다는 듯 웅얼거렸다. 힘없는 말에선 귀찮음마저 묻어나왔다. 고개는 돌리지도 않고 벽을 본 채였다. 건강이는 영민과 은주 부부가 뒤늦게 가까스로 얻은 아이의 태명이었다.


“4번 타자, 좌익수 김영민!”

“날려버려, 날려버려, 홈. 런. 김. 영. 민.”


전광판에서 나오는 장내 아나운서의 소개와 관중의 함성소리가 영민의 귓가를 때렸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성공 가도를 달리는 야구 선수의 아드레날린이 폭발했다. 매 타석 등장마다 듣지만 이따금 부담감이 엄습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받는 연봉에 서푼 어치도 되지 않는 귓밥 같은 거였다. 영민은 크게 심호흡하고 대기타석에서 돌리던 방망이를 멈췄다. 이제 영민의 시간이었다. 영민은 방망이를 꽉 잡고 타석까지 일부러 더 천천히 걸어나갔다. 함성은 더욱 커졌고 심장은 오히려 안정되었다. 영민은 자신이 무대체질이라고 자신했다.


영민의 머릿속엔 초등학교 시절부터 넘어온 고난의 시간이 필름처럼 돌아갔다. 야구부 합숙비를 못내 코치 눈치 보던 일, 숙소에서 자다가 불려 나가 선배한테 방망이로 엉덩이 터지도록 두드려 맞던 어느 밤, 프로 구단과 계약해 약소한 계약금으로 홀어머니 소고기 사드리던 날, 산으로 둘러싸인 2군 훈련소에서 기약 없이 허공에 스윙 연습하던 날들이 머리를 수놓았다.


9회 말 2아웃 주자 2-3루에서 팀은 4대 6으로 뒤지고 있었다. 영민의 안타 하나면 3루 주자와 2루 주자까지 들어와 경기는 6대 6 동점이 될 것이었다. 넓은 잠실구장은 우중간이든 좌중간이든 외야수 사이만 가르는 안타만 나와도 3루 주자와 2루 주자가 동시에 들어올 수 있는 환경이었다. 그러나 영민은 홈런 타자였다. 팀은 그의 ‘한 방’을 기대하는 눈치였다. 게다가 영민은 홈런 개수마다 연봉 총액이 늘어나는 옵션 계약을 시즌 전에 맺었다. 지난 시즌 홈런 1위를 차지한 만큼 올해도 그 이상을 해내라는 압박이자 당근이었다. 지금 홈런이라도 터지면 점수는 순식간에 7대 6으로 뒤집어질 터였다. 3점을 순식간에 뽑는 거였다. 경기는 그걸로 끝나면서 ‘역전 굿바이 홈런’이라는 미디어 헤드라인을 뽑아낼 참이었다. 한국시리즈 마지막 7차전에 끝내기 역전 홈런은 야구계에 영민 자신의 이름을 길이 새길 역사가 분명했다.


영민은 홈팀 더그아웃 바로 위 관중석을 올려봤다. 결혼을 약속한 은주가 왼쪽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오른손으론 입을 가린 채 글썽였다. 영민이 홈런을 치고 루를 돌아 들어올 때마다 은주와 주고받는 신호였다. 팀이 원했고 은주가 보고 있었다. 무엇보다 은주가 눈물을 글썽였다. 영민은 단타를 노리는 대신 큰 거 한 방을 위한 풀스윙을 다짐했다. 바싹 마른 입술에 침을 묻히고 심호흡을 크게 했다.


삼구 삼진. 경기 종료.


거짓말 같았다. 순식간이었다. 귀신에라도 홀린 듯 방망이는 말을 듣지 않았다. 영민의 스윙은 무뎠고 실밥까지 꿰뚫던 눈은 투수의 변화구 궤적마저 분별하지 못했다. 조급함은 그저 그런 스윙으로 스트라이크만 연신 늘렸다. 상대 팀은 환호했다. 영민은 자리에 주저앉았다. 꽉 들어찬 잠실에서 영민의 귀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최고의 순간 영민은 결국 기회를 잡지 못한 실패자가 되었다. 다음은 없었다. 일생일대 한 번 올까 말까 한 외나무다리에서 영민은 발을 삐끗했다. 역사의 주인공이 될 기회 앞에서 영민은 맹탕이 되고 말았다. 강물에 빠진 것처럼 영민은 관중석의 은주를 바라보며 말없이 허우적댔다.


그날은 정말로 외나무다리였을까.


영민은 이후 부상을 달고 살았다. 오른쪽 어깨 인대 손상을 시작으로 끊임없이 그 부분이 말을 듣지 않았다. 홈런 타자가 장타력을 잃고 말았다. 다시금 영민은 2군을 전전했다. 재활과 복귀가 반복됐다. 이미 전성기는 끝났다는 게 야구계 평판이었다. 서른 여섯의 나이는 더는 예전처럼 ‘도전’과 ‘훈련’으로 점철될 시기가 아니었다. 영민은 소리 소문 없이 은퇴했다. 언론에선 그를 “오랜 2군 생활 끝에 반짝 빛을 봤지만 끝내 꽃 피우지 못한 타자”라고 서술했다. 어디서는 “노력형 선수의 최대 약점인 큰 경기에서 약한 면모가 다시 입증됐다”라고 혹평했다. 또 다른 곳에선 “스타란 결국 타고나는 것이며 그렇게 타고난 선수들은 아무리 부진에 빠졌다가도 결국 큰 경기에서 잘해 부활한다”면서 “영민은 이런 유형의 선수가 아니었다고” 교묘한 사례를 들어 논평했다.


영민은 은퇴 직후 구단에서 마련한 2군 타격 코치 자리를 잠깐 맡았다. 하지만 오래 버티지 못했다. 팀 성적이 좋으면 감독 공이 됐지만 타격이 잠깐이라도 부족하면 1군을 비롯한 2군 타격 코치의 지도 능력까지 도마 위에 올랐다. 그럴 때마다 잠깐 반짝한 이력이라는 꼬리표가 영민을 둘러싸고 다시 고개를 들었다. 영민이 야구계를 떠나는 건 예정된 수순이었다. 영민의 이름은 한국 야구계를 수놓은 천재 타자 ‘이영민’의 이름을 따서 아버지가 지어준 것이었다. 얼굴도 못보고 돌아가신 아버지가 지어준 영민의 이름은 그렇게 야구계에서 지워지고 한때 반짝한 추억으로 어둠 속에 묻혔다. 이후 덥석 시작한 영민의 사업은 줄줄이 파산했다. 해외 야구 용품을 직수입하는 업체를 차렸다가 소송에 휘말려 망했다. 동업자는 이미 투자금의 두 배 이상을 뒷돈으로 챙기고 떠난 뒤였다. 영민은 선수 에이전트 회사를 하겠다고 기웃거렸지만 그쪽은 변호사들이 꽉 잡고 있어 직원 봉급만 주다가 파산했다. 권리금을 잔뜩 주고 인수한 파스타 집은 파리만 날렸다. 프랜차이즈 빵집을 열었다가는 본사 납입금만 맞추다가 문을 닫는 사태까지 치달았다. 전부 어그러진 시장 조사로 덤볐다가 무너졌고 그럴 때마다 세상은 운동만 해서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이라고 영민에게 고개를 저었다. 그사이 애인에서 아내가 된 은주마저 세상을 모르니 당하는 것이라고 쓴소리를 했다. 영민의 내리막길은 끊이지 않고 펼쳐졌다. 쌓인 빚이 영민을 찍어 눌렀다. 영민은 겨우 정신을 차리고 은주 말에 따라 2년 전부터 택시 운전 일을 시작했다. 더는 돌아갈 더그아웃도 흘끔흘끔 쳐다볼 관중석도 없이 외로운 야간 운전이 그렇게 펼쳐졌다. 밤은 아침보다 길었고 어둠은 밝음보다 선명했다.


세상과 야구계는 투수의 패스트볼처럼 빠르게 그를 잊었다. 평생 야구 외길만 걸은 그에게 빚 많은 마흔 네살 나이는 이도 저도 아닌 경계인으로 몰아넣는 조건이 되었다. 영민은 한국시리즈 7차전 이후 거푸 헛스윙을 하는 것처럼 살았다고 고개를 저었다. 밤은 그렇게 가까이 있었다.


“다녀올게.”


영민은 주섬주섬 옷을 입었다. 출산 직후 숨을 쉬고 살기 위해선 다른 방도가 없었다. 은주는 말없이 건강이가 있는 자신의 배만 쓰다듬었다. 눈은 뜨지 않고 잠도 자는 둥 마는 둥 했다. 요즘 부쩍 반복되는 저녁 출근 풍경은 그렇게 별다를 것 없었다. 영민이 차에 타자마자 굵은 빗줄기가 창을 때렸다. 영민은 호출 신호를 기다렸다. 서울 논현동에서 경기도 김포까지 가겠다는 손님 신호가 떴다. 콜을 잡았다. 삼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 손님은 취해있었다. 몸을 못 가눌 정도는 아니었지만 손님은 뒷자리에서 곧바로 곯아떨어졌다. 영민은 콜에 찍힌 주소대로 차를 몰았다. 145km까지 속도를 냈다. 맘에 안 드는 숫자인 145로 속도를 살짝 밟았다가 돌아오는 건 영민이 가진 일종의 반감이자 혼자만의 은밀한 일탈이었다. 차가 없는 밤은 그런 짜릿함을 느끼기에 최적이었고 과속 카메라 위치는 투수의 변화구보다 예측하기 쉬웠다.


운명의 경기에서 삼구삼진을 당한 그날 전광판에 찍힌 상대 투수의 마지막 구속은 145km였다. 빠르다고 할 수 없고 느리다고 할 수도 없는 그런 애매한 구속이었다.


‘이걸 못 쳤다니. 분명 이상했어.’


영민은 전방에 카메라가 있다는 내비게이션 울림을 받고선 액셀에서 발을 뗐다. 속도는 120km까지 줄었다.


“쿵.”


순간 뭔가가 자동차 보닛을 때리고 유리창을 넘었다. 빗줄기가 앞 유리에서 널찍이 퍼졌다가 재탕됐다. 뒷자리 손님은 계속 잠들어있었다. 본능적으로 시계를 봤다. 밤 11시 56분이 째깍거렸다. 영민은 차를 세웠다. 문을 열고 내렸다. 떨렸다. 사람만 아니길 빌었다. 차에서 내려 뒤로 걸었다. 그 시간이 꼭 한국시리즈 7차전 대기타석에서 그라운드로 나가던 때처럼 길었다. 긴장감은 그 이상이었다. 우산을 쓸 겨를도 없었다. 여자가 바닥에 쓰러져있었다. 붉은 피가 그 여자 몸에서 흘러나와 웅덩이에서 장대비와 뒤엉켰다. 피가 여자 등을 적시면 장대비가 주변을 재빨리 씻는 공포 영화 같은 장면이 펼쳐졌다. 영민은 여자의 코에 손가락을 갔다 댔다. 그 어떤 바람도 인기척도 없었다. 무수한 장대비가 쏟아졌다. 영민의 머리카락에선 물만 뚝뚝 떨어졌다.


‘망할. 망할. 망할.’


영민은 타석에 주저앉아 은주를 쳐다봤던 그날처럼 쓰러진 여자를 내려다봤다. 허무함이 번졌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꼬였을까. 그때 방망이에 공을 맞췄다면 여기까지 오진 않았겠지. 아니야. 어깨부상부터 문제가 있었어. 그때라도 재기는 충분히 할 수 있었지. 아니야. 그것도 아니야. 모든 것이 그대로였더라도 오 년만 더 젊었으면 다시 도전할 수 있었어. 2군에서 보낸 생활이 너무 길었어. 그날 이후 수십 번도 더 되돌렸던 회로들이 필름처럼 영민의 머릿속에서 돌아갔다.


“쿵.”


이번엔 영민이었다. 온몸이 붕 떴다. 마지막 헛스윙을 했을 때처럼 잔뜩 힘 들어갔던 몸이 허공에서 맥없이 흩어졌다. 영민은 손가락 끝까지 저릿함을 느꼈다. 방망이에 축약됐던 몸이 사방으로 돌아가던 그날 삼구삼진 같았다. 꽉 막혀있던 혈류가 온몸에 급히 도는 느낌이었다. 곧 깊은 잠에 빠질 것 같은 나른함이 몰려왔다. 뒤통수가 바닥에 닿는 기분이 들었을 때 영민의 눈엔 반짝이는 휴대폰 액정 화면이 들어왔다. 열리기만해도 통화 수신이 되는 폴더폰은 저쪽 목소리를 전했다.


“축하합니다. 태명 건강이. 어여쁜 공주님으로 8월 3일 00시 3분 3.1kg으로 태어났습니다. 아빠 닮았나 봐요. 눈이 아주 크네요. 산모도 건강하십니다. 축하드립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이렇게 되어선 안 되는데. 또 헛스윙은 잔인한데. 영민은 빗줄기에 씻겨 내려가는 자신의 피를 보며 생각했다. 온몸이 뜨거웠다. 그토록 지리멸렬했던 몇 년이 이렇게 끝나는 것인가. 남겨질 이들은 어떻게 되는 거지. 나도 남아야 하는데. ‘그래도 하루가 지났네. 다행이야. 아빠 제삿날과 딸 생일이 같으면 안 되지. 미안해. 건강아. 진짜 이름은 엄마한테 부탁할게. 아빠는 또 헛스윙한 거야. 아빠는 또 아웃을 당했어. 145km에 또 당해버린 거야.’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