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편소설) 꽃거지 프로젝트

by 반동희

짝꿍과 더위사냥을 쪼개 먹던 날이었다. 양복쟁이 셋이 우릴 찾아왔다. 내가 사는 곳에 양복쟁이들이 온 건 처음이었다. 우리끼리는 '어른 옷'이라고 불렀지만 정작 우리랑 사는 어른들은 그런 옷을 입지 않았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뚝뚝 덜어지는 한여름이었다. 양복쟁이들이 타고 온 차는 냉동고라도 되는 모양이었다. 그들은 긴 팔에 겉옷까지 껴입고도 땀 흘리지 않았다.


나는 운동장 구령대에서 짝꿍이랑 누구 더위사냥이 더 크게 쪼개졌는지 실랑이를 했다. 그러다가 양복쟁이들이 걸어오는 걸 식구 중 제일 먼저 봤다.


"원장실이 어디니?"


양복쟁이 중 하나가 물었다. 나는 말없이 검지로 내 등 뒤를 가리켰다. 구령대를 지나 정문으로 들어가면 될 터였다. 빡빡머리를 한 양복쟁이가 "꼬마는 이름이 뭐냐"라고 내게 물었다. 나는 "은성"이라고 작게 말했다. 어쩐지 양복쟁이들과 말하는 게 싫었다. 질문한 양복쟁이를 포함해 그들 셋은 대답을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정문으로 들어갔다.


저녁 먹고 우리 모두 '화합의 방'으로 모이라는 방송이 나왔다. 화합의 방은 내가 살던 보육원에서 가장 큰 방이었다.


40명의 우리는 제각각의 성과 나이를 갖고 살았다. 보육원 어른들은 모두 우리에게 '화합'이 가장 중요하며 우린 모두 '식구'라고 강조했다. 화합의 방은 그러한 교육을 듣고 우리에게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나 이다음에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식의 수업을 받는 공간이었다.


나는 매번 화합의 방에 갈 때마다 내가 언제 어떻게 보육원에 닿게 되었는지 기억하려 안간힘을 썼다. 물론 발전되지 않는 물음이자 답을 찾을 수 없는 방정식과 같았다.


양복쟁이들이 돌아간 저녁 '화합의 방'은 조용했다. 원장은 그날따라 아무 말이 없었다. 그저 우리 40명을 처음 보는 것처럼 낯선 눈으로 응시했다. 그렇게 20분 정도가 흘렀다. 원장은 나를 콕 집어 내일 아침 먹고 원장실로 오라고 한 뒤 자리를 끝냈다.


"은성이가 올해 18살이지?"


식구 40명 중 나는 두 번째로 나이가 많았다. 19살을 끝으로 20살이 되면 이곳을 떠나 자립해야 했다. 내년에 경원이 형이 떠날 것이었고 다음은 내 차례였다. 경원이 형은 보육원에서 나간 뒤 작은 공장에 취직하기로 되어 있었다.


"연예 기획사랑 계약해보는 건 어떠니? 들어보니 처음에 크게 할 것은 없어. 그저 기획사에서 하라는 대로 하고 차근차근 관련 일을 배워가는 거야. 당장 계약금도 받을 수 있고 일하는 동안은 바깥에서 머물 수 있는 공간도 기획사에서 마련해줄 거야."


양복쟁이들은 연예 기획사 사람들이었다. TV에 나오는 가수를 키우고 탤런트를 관리하는 그런 곳이 떠올랐다.


내가? 내가 연예인이 된다고? 의아했다. 잘생겼단 소린 수없이 듣고 자랐지만 화려함과 내 처지는 거리가 멀었다. 노래나 연기는 먼 나라 얘기였다. 꿈에서라도 그런 단어들과 내 삶의 실선을 그려본 적이 없었다. 19살이 끝나는 날 나는 보육원에서 연결해 준 도시철도 하청 업체에 취업해 차곡차곡 돈을 모아 사는 게 목표였다.


보육원 어른 식구들 말로는 내가 처음 발견된 곳이 기차 안이었다. 발견 당시 나는 6살이었고 또래보다 말이 어눌해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불가능했다. 설상가상으로 그 이전 기억은 내게 없었다.


"보육원 선생님들이랑 식구들이 늘 뒤에 있다는 걸 잊지 말고. 네가 성공하는 것이 이곳에 있는 다른 식구들에겐 무척이나 큰 희망이 될 것이란 것도 잊지 말고."


그 자리에서 결정됐다. 달리 대꾸할 말이 없었다. 나는 거절하거나 반대하는 태도를 지녀본 적이 없었다. 나는 이틀 뒤부터 양복쟁이 아저씨들과 어울리게 될 운명의 열차 앞에 엉거주춤 섰다.


열차는 어디로 갈까. 선로는 끝까지 깔려 있을까.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거나 내가 계획한 삶으로 가는 옆길은 없을까. 열차가 중간에 멈추거나 사고라도 나면 어쩌나.


양복쟁이들은 나를 두고 '꽃거지 프로젝트'라고 했다. 나는 은성이가 아닌 꽃거지라고 불렸다.


이들의 노닥거림은 내가 보기엔 단순했다. 부스스한 머리를 하고 겹겹이 겹쳐있는 레이어드 패션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게 내 과제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땟국물이 줄줄 흐르는 게 첫째였다. 그러면서도 이목구비만큼은 뚜렷이 해 일명 '잘생긴 거지'가 되어야 한다고 그들은 내게 말했다.


어느 날 양복쟁이가 부른 화장 진한 누나가 와서 내 눈썹을 더 진하게 그렸다. 머리를 박박 깎은 양복쟁이는 그 정도만 해도 됐다며 달걀흰자랑 우유를 끼니마다 먹어 머리를 빨리 길으라고 했다. '아저씨는 달걀흰자랑 우유를 무척이나 싫어하나 보네요'라는 말이 턱밑에서 울렁였다. 그렇지만 말은 목구멍에만 잠겨 창자 밑으로 내려갔다. 보육원 식구들 얼굴이 떠올랐다.


양복쟁이들이 말하는 '예수 머리'가 되었을 때 서울역을 시작으로 전국을 돌기 시작했다. 빡빡머리 양복쟁이는 나한테 내일로 여행 티켓을 줬다. 그러면서 끼니는 구걸해 먹으라고 했다.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으니 딴짓할 생각은 하지 말라고 했다. 일주일을 그렇게 버티면 이틀은 사람들 몰래 숙소에서 먹고 싶은 걸 전부 사 줄 테니 시키는 대로 하라는 식이었다. 큰돈을 벌기 위한 과정이라고 양복쟁이들은 자기들끼리 중얼거렸다. 최소 1년 안에는 승부가 난다고 했다. 양복쟁이들은 저 멀리서 내 일거수일투족을 사진으로 찍었다.


그게 시작이자 끝이었다. 내일로 티켓 기간이 끝나면 또 다른 기차표가 주어졌다. 또다시 반복이었다.


집도 돈도 휴대폰도 없는 나는 내가 뭘 하는지 그땐 몰랐다. 구걸도 처음이 어려웠지 생각보다 벌이가 쏠쏠했다. 그렇게 한 푼 두 푼 모은 것으로 일주일을 대충 때우면 진수성찬을 먹을 수 있었다. 잠은 역에서 잤다. 얼굴은 양복쟁이들이 세수하지 말라고 해서 눈곱만 뗐다. 구걸은 최대한 불쌍하게 하라는 지시도 충실히 따랐다.


얼마가 지나자 길에서 알아보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들은 내게 더 큰돈을 주기 시작했다. 주로 젊은 사람들이 나한테 친절했다. 당연히 그때는 그 이유를 몰랐다.


나중에 알았다. 말 그대로 '꽃거지 띄우기' 계획이었다. 인터넷에서 내 행동과 몰골은 화제였다. '얼짱 거지'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양복쟁이들은 인터뷰가 첫째고 CF가 둘째라고 했다. 얼마 뒤 나는 그들이 데리고 간 곳에서 진짜로 인터뷰를 했다.


방송 카메라 앞에서 나는 어디서 어떻게 태어났는지도 모르고 그저 살길이 막막해 구걸을 하기 시작했다고 정신이 벌거벗겨지는 것처럼 대답해야 했다. 꿈은 어려서부터 연기자가 되는 것이라고 거짓말했다. 보육원 식구들에게 발견된 날 열차 안에서 방황하고 있었는데 혹시나 엄마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역에서 먹고 자며 선로 위에서 살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빡빡머리 양복쟁이가 시킨 거였다.


단역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드라마부터 영화까지 출연하는 횟수가 잦아졌다. 양복쟁이들 표정은 점점 밝아졌다. 진수성찬을 먹는 날엔 화장이 더 진한 누나가 와서 '연기 수업'이란 걸 했다.


하루는 보육원 원장이 전화가 와서 "은성이가 우리 식구들의 희망"이라고 했다. 나는 얼떨떨했다. 공장 생활을 시작한 경원이 형이 잘 지내는지 제일 궁금했다.


'꽃거지'는 어느 날 '꽃거지 출신 배우 은성'이 되었다. 집도 생기고 차도 생기고 스마트폰도 생겼다. 원장은 또 전화가 와서 "보육원 기부금과 물품 기증이 늘었다"라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나는 카메라 앞에서 웃음과 울음을 파는 날이 많아졌다. 연기 수업 누나는 내게 배우가 되어간다고 했지만 나는 그저 '척하는 삶'을 파는 것일 뿐이라고 스스로 깎아내렸다.


매일 밤마다 꿈을 꿨다. 꿈에선 열차가 끝도 없이 달렸다. 열차는 보육원에서 출발했다. 어디서 왔는진 알 수 없었다. 그저 보육원 앞에 '뿅'하고 나타났다. 열차는 그 어떤 역에도 서지 않고 나만 태운 채 선로를 질주했다. 단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매번 열차가 멈추기 전에 내가 먼저 잠에서 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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