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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정혁 Apr 24. 2022

서울 떠나 동해로…퇴계로 떠나 퇴사로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난다. 대충 아침 8시부터 눈이 떠진다. 이제 조금 느긋해졌는지 침대에서 꾸물거린다. 제대로 정신 차리는 건 9시쯤이다.


현관문을 열어 배달된 신문 2부를 펼친다. 책상으로 가 아내가 가져다주는 간단한 아침을 먹으면서 신문 기사를 훑는다. 이슈 확인이 끝나면 컴퓨터를 켜서 써 보내야 하는 글을 쓴다. 가끔 답답하면 주식창을 열어 포트폴리오를 점검하지만 크게 신경 쓰진 않는다.


한낮의 점심은 오아시스가 따로 없다. 아이 낮잠 시간과 겹쳐서다. 아내가 아이를 재우면 우리 둘은 태풍의 눈과 같은 고요함을 감지하며 차를 몰고 나간다. 우리가 사는 곳에서 유명한 물회, 장칼국수, 짬뽕, 막국수를 포함해 김밥, 돈가스, 비빔밥, 햄버거 등 여전히 서울에서 버리지 못한 간편함도 어우러진다. 메뉴 선택부터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점심 사치 이후엔 집으로 돌아와 인터넷 바둑을 두거나 낮잠을 잔다. 이후엔 써야 할 글들을 처리하면서 잠깐의 독서를 한다. 얼핏 오후 4시가 넘어가면 이때부턴 아내와 아이와 강아지와 나들이 시간이다. 아이는 똥을 싸고 밥을 먹고 낮잠을 자고 일어난 후라 에너지가 가장 충만할 때다. 우리는 대충 10분여 정도 차를 몰고 나가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동해 바다 앞에서 트렁크에 매일 넣고 다니는 캠핑 의자를 꺼낸다. 아이는 모래를 만지고 뿌리고 날아다니는 새를 보고 나와 아내는 말없이 바다를 눈에 담는다. 그렇게 어제도 오늘도 ‘1일 1 바다’를 여지없이 실천한다.


다시 집에 돌아오면 본격 육아 시간이다. 아이와 놀아주면서 아내랑 농구를 본다. 그사이 저녁을 먹고 다시 아이를 씻기고 잠을 재운다. 아이가 잠에 빠지면 저녁 9시가 훌쩍이다. 이때부터 다시 자유다. 바둑과 온라인 축구게임으로 시간을 보낸 뒤 요즘 재밌다는 드라마를 아내와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으로 본다.


요즘 일상을 정리하고 보니 원래 계획했던 분량보다 글이 길어졌다. 하지만 어떤 특정 일과도 빼고 싶지 않다. 이런 느낌의 자유와 해방감을 느껴본 적이 없어 생소하다. 그만큼 귀하다. 서울을 떠나 동해 바다를 맘껏 보는 이런 삶을 결정하기까지 수없이 고민하고 좌절했다. 그런 나날의 갈팡질팡과 고통이 다시 떠올라 지금의 후련함과 소중함은 그 이상이다.


이제 더는 아침 7시부터 줄줄이 달려오는 카카오톡과 전화에 시달리지 않는다. 시시각각 터져대는 사안을 기계적으로 파악해 기사로 써내는 일도 옛날이 되었다.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과 어색한 점심 식사도 없다. 가고 싶지 않은 곳에 끌려가 ‘소맥’ 마는 일도 사라졌다. 숙취 속에 겨우 일어나 어둠 속에 출근하면서 발제 기사 골몰하는 일도 잘라냈다.


어느 언론사에 속해 있든 ‘기자’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으면 피곤하다. 요즘 우리나라에선 어느 기자나 마찬가지다. 온라인 매체 환경은 속보와 깊이를 전부 잡으라는 채찍질을 기자에게 계속한다. 이런 분위기는 한순간도 스마트폰에서 옴짝달싹 할 수 없을 정도로 올가미처럼 조여 오고 한 번 조여진 강도는 절대 풀리지 않고 더욱 강해진다. 그런 압박감이 언젠가 하루는 “이유 불문하고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만들어내라”는 말처럼 들렸다. 잔 하나에 따뜻하면서도 차갑기도 한 아메리카노를 담는 법을 나는 모른다. 그날부로 사표 제출이라는 탄도 미사일을 나는 쏘아 올렸고 비로소 그러한 전면전 선포로 내 목을 조여오던 올가미는 끊어졌다.


한층 핼쑥해진 통장만큼이나 앞으로의 불안함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면 안 되겠지만 통장이 ‘텅장’이 되면 다시금 헝그리 정신이 기어올라올지도 모를 일이다. 그전엔 일상을 위한 답을 찾아야 할 것이고 늘 그랬듯 답을 찾을 것이라는 자신감은 충만하다. 그래도 절대 불변의 확답은 이전과 비교해 삶의 질은 따져볼 가치도 없을 정도로 나아졌다는 점이다.


마침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를 보았다. 10년 전 읽은 ‘월든’도 책장에서 다시 꺼내 훑었다. 전화 연결로 출연하는 라디오에선 이제 ‘기자’가 아닌 ‘칼럼니스트’로 나를 부른다. 명함 지갑은 책상 서랍으로 들어갔다. 휴대폰은 소중한 지인들 연락만 울린다. 그마저도 가족 나들이와 저녁 시간엔 ‘무음’ 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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