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TO의 한국 불고기

by 육동녕








NATO의 한국불고기



1997년 말부터 몰아닥친 우리나라의 IMF외환위기로 20여년 재직했던 금융회사가 문을 닫는 바람에 졸지에 실직자가 된 나는 직장에서 담당했던 업무에 대한 책임문제까지 겹쳐 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50이 다되어 갑자기 맞게된 혼란과 절망속에 우연히 캐나다에서 학생모집차 한국에 온 아내의 선배를 만나 알게되었고 그것이 우리 가족의 준비없는 이민의 시작이었다.


캐나다 도착후 이렇다 할 기술도, 가져온 돈도없다보니 생계가 막연한 상태에서 이민후 몇년동안의 우여곡절끝에 호텔의 매니저를 맡아 일할 기회를 얻었다. 말이 호텔이지 호텔은, 북부 석유채굴지역의 낡은 노무자 합숙소 건물이고 호텔이 있는 Elk Town시는 겨울이면 영하 30도의 엄청 추운 고장이다. 석유채굴이 이루어지는 겨울엔 그런대로 방이 찼지만 봄이되어 땅이 녹아 노무자들이 모두 떠나면 인구 5,000명남짓의 도시는 텅 비게 되고 호텔은 적막강산이 된다.


투숙객들이 모두 떠난 후 ‘Spring break’라는 짧은 봄 시즌이 지나면 도시는 NATO의 ‘Maple flag’행사준비로 다시 활기를 띠며 술렁인다. NATO는, 미국, 영국 등 30여개국으로 구성된 '북대서양 조약기구'인데, 유럽 각국은 국토가 좁아 초음속의 신예 전투기를 훈련하기 어렵기 때문에 일년에 한 번, 큰 나라 회원국인 캐나다의 영공을 빌려 북극까지 비행하는 전략공군 훈련을 한다. 이 훈련의 공군기지가 카나다 앨버타 주의 cold lake시이고 ‘Maple flag’은 이 훈련의 이름이다.


훈련기간은 6주이지만 준비나 예행연습등을 포함하면 행사는 거의 두 달 가까이 소요되고 행사기간에는 각 회원국에서 조종사, 정비사뿐만 아니라 행정요원과 가족 등 1천 명 이상의 인원이 몰려오므로 지역의 숙박업소나 식당 등 모든 지역 사업체들은 일 년 매상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 행사를 봄부터 잔뜩 긴장해서 준비한다. 공군에서는 군 비행장과 신예기를 일반 개방하기도 하고 시에서도 광장 연주회나, 퍼레이드등을 준비할 정도이니 이 행사의 중요성을 짐작할만 하다.


행사본부가 있는 Cold lake시는 물론, 인접 도시인 우리 Elk town시의 모든 호텔들도 해마다 NATO각국에서 오는 Maple flag요원의 투숙 유치를 위해 '소리 없는 전쟁'을 벌인다. 모든 숙박업소는 일단 Cold lake공군기지에 수용 가능인원을 등록하고 배정을 기다리지만 결국은 각국 행정요원과의 개별접촉을 통해 방 수와 가격 등 조건을 합의하게 된다. 이름있는 큰 호텔은 큰 나라들과의 매년고정계약이 되어있어 느긋하지만 낡고 오래 된 우리 호텔은 사정이 다르다.


우리의 경우, 대규모의 행사요원 유치를 위해 개별 손님을 받지 않는 방법으로 한 두 달 전부터 준비를 진행해와 거의 모든 방은 비워져 있는 상태였다. 프랑스군은 작년 예약한 대로 투숙했지만 웬일인지 세 개 동으로 되어있는 Hotel건물 중 나머지 두 개동은 방을 통째로 비워놓고 기다리는데도 아무런 문의나 예약이 없다. 이대로라면 '대목'은커녕, 잘못하면 연중 매상에도 크게 차질이 올 수 있는 상황이다


거리는 이미 외국에서 온 군인들로 넘쳐나고 행사는 다음 주로 다가와 있는데 도시에서 유일하게 우리 호텔만이 비어있다. 그러고 보니 냉전이 끝나면서 훈련의 규모와 인원도 해마다 축소되어 가고 있고 최근에는 참가 각국이 체류경비 절감을 위해 공군기지 내에 일정 규모의 인원이 숙식할 수 있도록 군인 막사를 개설해 행사기간 중 운영한다는 얘기까지 들려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대로라면 두달동안 고객없는 빈 호텔이 될 판이다.


큰 참가국의 많은 인원을 기대해 작은 예약들을 거절한 게 후회될 무렵, 행사를 불과 사흘 앞두고 캐나다 공군 장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한 밤중에 걸려온 전화는, '방이 있는가' '있는 모든 방을 원한다' 는 물음에 다급함이 느껴졌다. 뒤늦게 추가 병력의 행사 참가가 결정되면서 급히 많은 방을 구하게 된 캐나다 공군 덕분에 우리는 빈 방을 한꺼번에 채울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만난 사람이 캐나다 공군의 Ryan대위였다.


Maple flag행사기간 동안은 단기 임대 형식이므로 방값이 훨씬 높게 책정된다. 예상하지 못했던 이 뜻밖의 손님들이 반가웠던 나와 아내는 여러 생각끝에 큰 맘먹고 멋진 환영파티를 해 주기로 했다. 시내 정육점에서 맛있기로 유명한 알버타소고기를 넉넉히 주문하고 도시 입구의 호숫가에 위치한 아름다운 시 회관을 하루 빌려 이미 투숙해 있는 프랑스, 영국, 독일군 일부와 캐나다군 130명 모두를 오게 해서 맥주, 보드카와 함께 아내가 밤새 한국식으로 양념하고 준비한 불고기를 볶아냈다.


우리식 양념불고기에 감탄하며 즐거워하는 각국의 조종사들로 파티는 떠들썩한 축제가 되었다. 고기를 굽고 땀에 절어 뛰어다니는 호텔주인이 한국 공군 출신임을 알리자 큰 환성이 올랐고 언제 준비했는지 일동을 대표한 Ryan으로부터 캐나다공군이름의 감사패도 받았다. 아내는, 파티가 끝난 뒤에도 시도 때도 없이 전화로 물어오는 조종사들의 불고기 양념의 '레시피'요청에 아예 재료와 조리방법을 매직팬으로 크게 써 호텔 현관에 붙여놓기까지 했다

다음 해에, 소령으로 진급해 캐나다공군을 이끌고 다시 우리 호텔을 찾은 Ryan은 알려줄 비밀 얘기가 있다고 했다. 첫째, 작년 행사때, 마지막으로 문을 두드린 우리호텔에도 방이 없었다면 '캐나다에서 주관하는 행사에 캐나다 군인이 잘 곳이 없는' 아주 난감한 상황이 될 뻔해 그들이 우리를 도운게 아니라 사실은 우리 호텔이 그들을 구했던 셈이며 둘째, 이번에도 우리 호텔을 다시 찾은 가장 큰 이유는 다름아닌 한국식 불고기파티 때문이라고 했다.


지난 해 행사이후 한국식 불고기 ‘레시피’는 캐나다 공군부대가 있는 Kingston의 모든 부대원과 가족들에게 널리 알려져 이제 한국식 불고기는 Kingston에서는 부대식당의 인기 급식요리가 되어있고 실제로 이번 행사에 부대원들의 참가지원이 많아 애를 먹었는데 그 가장 큰 이유가 우리 호텔의 불고기파티 때문이었다는 것. 아울러 Ryan소령은, 호숫가 시 회관의 파티가 각국에서 참가한 다른나라 공군들과 교류할 좋은 자리가 된 점도 크게 감사했다.


캐나다에는 도시마다 한국산 자동차의 대리점이 생기기 시작해 세계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이제는 현대,기아차가 거리에 즐비하다. 어디든 가전매장엔 삼성과 LG의 냉장고. T.V가 맨 입구에 진열돼 쇼핑을 하러가는 우리를 제일먼저 반긴다. 거리마다 한국 음식점이 생기더니 요즘은 한국식 치킨점이 이곳 사람들에게 큰 인기다. 우리가 무심히 먹어왔던 김치, 김밥과 비빔밥등이 헬스푸드로 떠올라 외국 사람들이 몰리는것을 보며 K드라마, K 컬쳐의 위력을 실감하면서도 우리 조상의 지혜에 새삼 감탄하기도 한다.


얼마전부터 이곳 코스트코의 식품코너에 한국식 불고기가 ‘Korean Bulgogi’라는 이름으로 팔리고 있는것을 본다. 한국 라면, 만두, 심지어 육포는 알았지만 한국식 양념으로 조리된 불고기는 처음이라 무척 반갑고 자랑스럽다.

Elk town의 호숫가에서 불고기를 메인 메뉴로 삼아 130명 NATO공군의 파티를 치뤄냈던 우리 부부가 혹시 ‘캐나다 불고기’의 원조는 아닐까.

여름마다 찾아오는 NATO공군을 위해 땀에젖어 불고기를 양념하고 볶아내던 추억에, 터무니없는 상상이 즐겁다.


세상에서 하늘이 가장 넓은 나라, – 북극을 향해 상공을 가르던 각국 초음속기들의 폭음 소리, 6월의 밝은 햇빛에 반사되어 눈부신 드넓은 호수의 찰랑대는 은빛물결, 나라가 달라 서로 말이 안 통해도 시끄럽기만 하면 상관없는 신나는 음악, 산더미 맥주와 그리고 세계 최고음식 한국 김치와 양념불고기.


Ryan이 주고 간 캐나다 공군이름의 감사패에는 오늘도 각국 젊은 Pilot들의 유쾌한 웃음소리, 노랫소리와 함성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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