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말리며

by 소봉 이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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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잔치였다. 오색단풍이 차고 넘치는 시월 하순, 문학상 시상식에 오시는 걸음마

다 축하의 꽃다발이 풍성하다. 꽃 향에 취하고 그 고운 마음에 젖어 흥건하다.

이 고마움을 오래 간직하고자 꽃을 말리기로 했다. 다발을 조심스레 풀어헤쳐 밑 부

분의 잎은 떼어내고 모양을 다듬다 보니 이름 모를 들풀들이 더 고고하고 우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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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알이 채워가는 씨방 위로 꿈이 가득한 맨드라미는 여름 장독대 옆에서 마중물을 부어 펌프질하던 어린 날의 내 언니 오빠를 스치게 하고, 비비추의 진한 보랏빛은 활달하고 서구적인 모습으로 축하를 해 준 친구를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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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으로 난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빨래 줄 두 줄을 만들었다. 한 줌씩 묶어 호박고지 만들듯이 줄에 걸었다. 참새도 포르르 날아와 앉을 것만 같다. 고운 색 잃지 말라고 바람을 넣어주고, 예쁜 모양 변하지 말라고 스프레이도 뿌리며 정성을 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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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는 말린꽃색이 훨씬 깊이가 있다. 흑장미, 노랑, 보라, 하늘색 장미의 색깔이 일품이다. 풋살구 맛인 듯 잔디 깎는 풋내인 듯 지나칠 때마다 코가 호사를 하니, 마른 꽃 향이 더 짙다는 걸 깨닫는다. 범 부채 잎으로는 화기를 감싸고 경계에 소담스럽게 여러 가지 꽃을 꽂아주어 풍요로운 가을을 표현했다.

운치가 그만인 들꽃 중에는 수수색깔의 큰 길갱이(?)가 한껏 분위기를 내 준다. 낮은 곳을 향해 고부장하게 휘어진 모양이 일전 한강 유람선위에서 보던 반달 같다고나할까. 아니, 물속에서 일렁거리던 달과 같다는 말이 더 어울릴 것이다. 달을 보기 위해 하늘을 보는 것이 아니라 물을 바라보면서 月印千江의 이치를 음미한다던 말이 꼭 이럴 때를 두고 하는 말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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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도 범부채도 멋지지만 들꽃 무리가 아주 예스럽다. 힘을 모아 준 귀한 사랑을 잊지 말아야겠다.

바람을 타고 잠자리처럼 하늘로 날아오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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