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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비두비두밥 Oct 18. 2023

2. 교수님의 음료 취향

2023.06.26

 계획이 예상치 못하게 실패할 때가 있다. 지도교수님께 처음으로 음료를 드렸던 날이 그랬다.


 교수님께서 무슨 음료를 좋아하실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카톡으로 여쭐 수도 있었을 텐데 괴상한 고집이 나를 가로막았다. 괜히 여쭸다가 음료를 거절하시면 어떡하나. 카페에 들어서는 순간까지도 나는 마음을 못 정하고 있었다.


 어디선가 교수님들은 차 종류를 좋아한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났다. 팥차와 관련된 농담도 떠올랐다. 카페 메뉴를 보니 차 계열은 감귤차뿐이었다. 적당히 달달하니까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여름이었어서 센스를 살려 차갑게 주문했다.


감귤차라니. 그것도 아이스 감귤차라니. 결과적으로  그 메뉴는 최악의 선택이었다. 당시의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내가 마실 초코 라테와 최악의 선택을 종이박스에 담아 학과 건물로 향했다. 


 박스에 가려져 있던 감귤차를 교수님이 꺼내든 순간 뭔가 잘못되었다는 직감이 들었다. 아래가 주황색이며 가운데는 투명하고 위쪽이 보라색인 음료였다. 멋을 내려고 한 건지 로즈메리 줄기 하나도 동동 떠있었다. 


“이게 뭐니?”


“감귤차입니다.”


 내가 말해놓고도 부끄러워서 웃지도 못했다. 잘 마시겠다고 하시며 교수님은 빨대를 컵에 꽂았다. 빨대에 눌린 로즈메리처럼 내 심정도 가라앉았다.


 아이스 감귤차를 한 모금 맛보신 교수님이 다시 음료를 드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감사한 마음을 음료로 표현해 보겠다는 계획이 단단히 틀어졌다. 음료 고르는 센스를 본 교수님은 내가 카페 음료 맛을 하나도 모르는 학생이라고 결론지은 듯했다. 일이 마무리되자 교수님이 한마디를 건넸다.


“카페로 갈까? 음료라도 마시자.”


“네, 좋습니다.”


 카페로 향하며 나는 외면당한 아이스 감귤차를 흘긋 봤다. 얼음이 녹아 처음보다 오히려 양이 불어나 있었다. 이상하게 웃음이 나오려 했다. 내 실패를 누가 보고 비웃기 전에 내가 선수를 치고 싶었다.


 교수님은 비웃지 않았다. 맛없는 음료에 불평하지 않았고 카페에서 다만 이렇게 말씀하셨을 뿐이었다.


“난 늘 카페라테만 마시는데. 00이는 뭐 마실래?”


 제일 싸고 만만한 아이스티를 고르고 나는 마음을 놓았다. 다음번에 음료를 준비할 때는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다. 교수님과 헤어진 후에 메모장을 열었다. 카페 라테라고 적고 나는 그 메모를 잊어버렸다.


 나중에 또 교수님 음료를 사가야 할 일이 있었다. 당연히 온갖 키워드로 검색을 해봐도 메모는 나타나지 않았다. 카페 라테라는 단어로밖에 검색이 되지 않을 텐데 그걸 알았으면 메모를 찾을 이유가 없었다. 그날 나는 결국 한라봉 주스를 사갔다.


 몇 주 뒤에야 폴더를 정리하다 뜬금없이 카페 라테가 적힌 메모를 발견했다. 그때는 이미 한라봉 주스를 보시고 교수님이 한마디 하신 후였다. 그리고 얄궂게도 그 순간에 나는 카페 라테를 기억해 냈다.


"한라봉 주스라고?"


"단 거 좋아하시지 않았나요?"


"나 단 거 안 좋아하는데?"


 변명하기 위해 머릿속을 뒤지다가 메모를 적던 순간이 번뜩 떠올랐다.


"아메리카노 말고 카페 라테 드시지 않으셨나요?"


"카페 라테가 단 거는 아니지."


 내 변명이 효과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세 번째 시도에서야 나는 아이스 카페 라테를 제대로 사서 드렸다. 전에 했던 대화를 떠올리며 뿌듯해서 괜히 생색을 냈다. 그건 실수였다.


"시럽 넣지 않은 카페 라테입니다. 단 거 안 좋아한다고 하셔서요."


"카페 라테에는 시럽이 원래 안 들어갈 텐데?"


 그런가요, 하면서 웃어넘길 배짱과 용기가 내게 없었다. 나는 당황해서 입만 뻐끔거렸다. 아무리 계획을 열심히 세워도 교수님 앞에서는 허물어지기 일쑤였다. 내 메모는 늘 행방이 묘연했고 중요한 순간마다 사라졌다.


 그래도 메모는 내가 세울 수 있는 최선의 계획이었다. 실질적인 도움보다 심리적 안정을 위해서라도 필요했다. 카페 라테 메모에 뒤를 이어 내 메모장에는 메모 하나가 더 생겼다.


'카페 라테에는 원래 시럽 안 들어감'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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