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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비두비두밥 Oct 18. 2023

3. 교수님의 전화

2023.06.01

 살면서 전화를 두려워해 본 적이 없었다. 겁 많고 심약한 성격이지만 전화만큼은 곧잘 해냈다. 치킨 주문할 때도, 행정실에 문의할 때도, 식당을 예약할 때도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전화공포증과 나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전화? 그냥 하면 되지. 얼굴 보여주는 것도 아닌데. 귀찮으면 귀찮았지, 뭐가 그리 무섭나.


 나의 그런 안일한 생각은 지도교수님의 메시지 하나에 무너졌다. 


 전공 수업 회식 중에 묘하게 불안했다. 아니나 다를까 핸드폰을 꺼내 확인하니 알림이 떴다. 내용이 눈에 들어온 순간 술이 깼다. 교수님의 메시지를 못 읽은 두 시간 동안 맛있게 먹은 치킨과 회와 제육이 뱃속에서 각자 춤을 췄다. 나는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갔다.


무시무시한 한마디


 전화바란다. 그 한마디가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다. 상황이 긴박해 인사말도 미리 생각하지 못했다. 교수님이 전화를 받은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세 가지 인사말을 몽땅 뱉어냈다. 


"여보세요. 네, 교수님. 안녕하세요."


 큰일 났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딱 맥주 한 잔 만이라고 시작을 잘못 끊었다. 3차로 온 주점 앞에서 핸드폰을 왼손으로 받쳤다. 마치 그러면 술에 취한 사실이 달라지기라도 하는 마냥 예의를 갖췄다. 


 주점 옆 골목에서 담배 연기가 두둥실 실려왔다. 그와 함께 날아가 버릴 듯 위태로운 내 정신을 겨우 붙들었다. 어찌어찌 전화를 마치고 무사히 플라스틱 의자에 다시 앉았다. 옆자리 친구는 너 취했냐며, 피곤해 보인다며 놀릴 채비를 했다. 나는 이만 집에 가고 싶었다.


 그 후로도 비슷한 사건은 몇 번 더 일어났다. 한강 공원에서, 테니스 대회장에서, 덜컹거리는 지하철에서 교수님의 전화를 받았다. 밤에 산책을 다녀와보니 부재중 전화가 찍혀있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회식 중에 전화를 받았던 일은 그리 나쁜 기억이 아니었다. 나는 가끔 무용담처럼 그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꺼냈다. 전화 내용도 전화를 받았던 장소도 기억에서 흐릿했다. 유일하게 기억에서 선명한 것은 그날의 메뉴였다.


"아니 들어봐. 1차로 치킨을 먹고, 2차로 연어회랑 광어회랑 우럭회를 먹었단 말이야. 3차로 제육을 먹었어. 그렇게 많이 먹는 중이었는데 전화가 걸려왔다니까."


"치킨에 회에 제육이라고? 하늘과 바다와 땅의 기운을 받아 잘 좀 받지 그랬냐."


 친구가 비웃긴 했지만 나는 진지했다. 집에 돌아와서 메모장에 <오늘의 힘이 나는 문장>을 적었다. 


'교수님의 전화를 받을 때는 하늘과 바다와 땅이 모두 도와줄 것이다. 안심하자!'


전화바란다 한마디에 가슴이 벌벌 떨리고 간이 콩알만 해지는 학부연구생이었지만, 메모에서는 왠지 하늘과 바다와 땅의 기운이 느껴지는 듯했다.


하늘과 바다와 땅의 기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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