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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비두비두밥 Oct 18. 2023

7. 교수님 꿈

2023.07.03

 어느 날 꿈에 지도교수님이 나왔다.


 배경은 조선이었다. 잘 기억나진 않지만 교수님은 분명 곤룡포를 입고 계셨다. 뒤편으로 일월오봉도가 펼쳐졌다. 한편 나는 내시인지 궁녀인지 모를 궁의 심부름꾼이었다. 


 학부생에게 교수님은 엄청난 존재이니 당시 내 심리 상태를 적절히 반영한 꿈이었다. 거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는데 모든 꿈이 그렇듯 내 꿈도 이상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내 꿈에서 왕(교수님)은 잔병치레가 많았다. 게다가 왕 뒤에는 권력을 호시탐탐 노리는 영의정이 있었다. 꿈속에서도 나는 그 영의정이 누군지 똑똑히 알았다. 바로 지도교수님과 친하게 지내시는 단과대 학장님이었다.


 대부분의 꿈처럼 내 꿈은 묘하게 현실을 반영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현실에 대한 내 나름의 인식과 해석이 녹아들어 갔다.


 교수님은 허리 디스크가 있으셨고 그래서 아픈 왕으로 나온 것 같았다. 단과대 학장님은 우리 학과 내에서는 권력자니 영의정으로 나오실 만도 했다. 그러나 꿈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꿈은 황당할 정도였다.


 나는 심부름꾼이니 아픈 왕을 위해 어딘가에서 약을 달여왔다. 그런데 약을 꺼내가는 동안 영의정(학장님)이 의뭉스러운 미소를 짓고 나를 지켜봤다. 어딘가 불안했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드린 약을 먹고 왕의 병세가 악화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왕을 독살하려 한 죄인으로 잡혀가는 동안에도 나는 열심히 영의정이 진범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다 잠에서 깼을 때는 목이 칼칼해져 있었다.


 잠자리가 뒤숭숭한 적은 처음이 아니었다. 전에도 교수님과 학장님은 내 꿈에 출연했다. 그때는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정치극보다 더욱 괴상쩍었다.


 2022년 10월 5일자 꿈에서 지도교수님은 국자였다. 그리고 학장님은 외계에서 온 슬라임이었다. 슬라임은 나를 공격했고 내게 자신을 방어할 수단은 손에 든 국자뿐이었다.


 그런 꿈을 기록한 메모는 메모장 구석에 숨어 있었다. 제목만 보고 대체 작년에 무슨 꿈을 꿨는지 들어가 봤던 나는 멋쩍은 미소를 걸고 나왔다.


 꿈 일기를 써보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그러나 나는 알았다. 꿈 일기를 쓰기에 내 성격은 너무 게을렀다. 유난히 특이한 꿈들만 이렇게 메모로 남을 영광(?)을 누릴 것이다.


 메모장을 절대 교수님께 들키면 안 되는 이유가 하나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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