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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비두비두밥 Oct 18. 2023

8. 교수님 표 맛집

2023.03.17

시청 유림면(메밀국수)

신당 쌀국숫집

교직원 식당?

평양면옥 X


 내가 반년에 걸쳐 적은 메모이다. 언뜻 보면 맛집 목록 같지만 확신 없어 보이는 물음표와 엑스자 표시가 영 미심쩍다.


 먼저 시청의 유림면을 살펴보자. 시청으로 답사를 간다고 말씀드렸을 때 교수님께서 추천해 주신 곳이다. 메밀국수 맛집은 근처에 미진과 한 곳이 더 있지만 유림면이 교수님 픽이었다.


 교수님은 시청 근처의 서울도시건축전시관과 성공회 성당을 가보라고 조언해 주시며 손수 지도까지 그렸다. 길치인 나와 친구는 서로를 너무 잘 알았기에 지도 어플에 식당 이름을 검색했다.


 점심시간이 지나서 갔는데도 식당은 붐볐다. 우리가 앉고 자리는 다 찼다. 메밀국수 1인분씩을 시켜서 열심히 먹었다. 뭔가 고소하고 새콤하고 한편으로는 그렇게 맛났는지 잘 모를 맛이었다.


 가격이 그리 비싼 편이 아니었기에 군말 없이 먹고 나왔다. 그날 오후부터 나는 끔찍한 복통에 시달렸다. 저녁도 걸렀는데 심하게 체해서 한밤중에 깨어났다.


 식은땀이 나는 와중에 교수님께는 비밀로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나를 믿지 못해 메모에 식당 이름도 적어두지 않았다.


 결과적으로는 쓸데없는 노력이었다. 교수님께서 메밀국수를 한 번 더 언급하신 날 나는 체한 이야기를 털어놨다. 교수님께서 그렇게 실망하시는 얼굴은 처음 봤다. 내가 교수님의 수업에서 B0를 받은 사실을 아셨을 때도, 과제를 개발새발 해갔을 때도 본 적 없던 표정이었다.


 나는 서둘러 식당이 문제가 아니었다고, 너무 급하게 먹어서 그랬나 보았다고 덧붙였다. 두 판이 나왔는데 배고파서 빨리 먹었나 봐요.


"두 판이나 먹었니? 그러면 체할 만 하지."


 1인분 몫이 두 판이었다는 사실은 숨기기로 했다. 그렇게 맛집 목록의 첫 시작은 다시 가지 않을 식당이었다.


 다음으로는 신당동의 쌀국숫집 차례이다. 이름도 모르지만 교수님 말씀에 따르면 중앙시장 안쪽에 위치했다. 3학년 2학기 프로젝트가 신당동 관련이라 답사를 가야 했다. 가는 김에 쌀국숫집도 가보라는 추천을 들었다.


 쌀국숫집을 가볼 기회는 세 번이 있었다.


 처음에는 수업을 듣는 동기들과 단체로 갔다. 동행하신 전공 교수님께서 그 유명한 마복림 떡볶이를 쏘시는 바람에 쌀국숫집은 가지 못했다. 사족이지만 그날 전공 교수님은 떡볶이 값이 10만 원 넘게 나왔다며 당황해하셨다.


 두 번째 기회는 동기가 개인적으로 답사를 갈 때 생겼다. 도착 예정이 4시로 떴는데 하필이면 브레이크 타임에 걸렸다. 나는 깔끔하게 방문을 다음으로 미뤘다.


 세 번째 기회는 다른 학교 친구와 만날 때였다. 동대문과 신당동 주변이 가운데 지점이라 살살 구슬려보려 했다. 비 오는데 쌀국수 먹고 싶지 않아? 그러나 친구는 밥 먹을 기분이 아니었고 나는 대신 카페에서 남자친구 이야기를 두 시간 동안 들었다. 물론 재밌는 시간이었지만 쌀국숫집 방문은 실패했다.


 결국 신당 쌀국숫집은 가보지도 못한 채 학기가 중반으로 접어들었다. 언젠가 꼭 가보고 이번에는 안 체했으면 좋겠다.


 교직원식당과 물음표에도 사연이 있다. 그날도 1시에 면담이 시작해 점심을 굶은 상태였다. 내가 배고파 보였는지 교수님은 음식 이야기를 꺼내셨다. 요즘 학생들은 왜 그렇게 자극적인 맛을 찾는지 모르겠다는 말씀이었다.


"우리 대학원생들은 밤 12시, 1시에 마라탕이랑 엽떡 그런 걸 먹어 놓고. 다음날에 왜 그렇게 속이 쓰리다고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네."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매운 음식이 땡기는 법이었다. 대학원생들이 스트레스가 많은 모양이네요, 하고 말하려다 이어질 대화가 두려워졌다. 나는 예의 바르게 웃었다.


 그러다 교수님은 교직원 식당을 가봤냐고 문득 물어보셨다. 내가 당황해서 교수님들만 가는 곳 아니었냐고 되묻자 단호한 대꾸가 돌아왔다.


"학생도 갈 수 있어."


 이 말이 맛집 추천인지는 불확실했지만 일단은 목록에 추가했다. 물론 가지는 않았다. 내게 교직원 식당은 여전히 무시무시한 곳이었다.


 교수님의 기습 질문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동대문 근처로 답사를 간 날에도 긴장을 놓으면 안 되었다.


"평양냉면 먹어봤니?"


"아뇨, 안 먹어봤습니다."


"왜 그렇게 사람들이 좋아하는지 모르겠네. 소금 탄 에비앙 맛이던데."


 그날 서 있던 횡단보도에서 가까운 동대문 평양냉면집이라면 범위가 좁혀졌다. 나는 마음속에서 한 곳의 식당을 지웠다. 겨자를 안 넣으셨냐고 물어볼 용기도 없었다.


 이렇게 교수님 표 맛집 리스트는 끝났다. 나는 종로 3가의 곰탕집이나 학교 후문의 제육집을 넣은 나만의 맛집 리스트를 만들 계획을 세웠다. 나름 서울토박이에다 22년 동안 살았는데 질 수는 없다.


질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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