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민성대장증후군 약과 프로바이오틱스를 사 가지고 왔다. 프로바이오틱스는 먹고 있는 게 있는데 아무래도 다른 제품을 시도해 봐야 할 것 같아서. 코로나에 걸린 이후로 장 건강이 더 안 좋아진 것 같다. 식사를 하고 나면 바로 화장실에 가는 일상이 반복되고 있다. 화장실에 자주 들락거리면 사기가 저하된다. 기운이 빠져 뭘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책에서 읽었는데 우리 면역의 70 퍼센트를 담당하고 있는 곳이 바로 장이고, 장의 상태는 기분(우울감)까지 좌우한다고 한다.
아침마다 기대하는 마음으로 변기에 앉는다. 오늘은 과연 바나나 같이 예쁜 똥을 쌀 것인가. 적절한 속도로 내려오는 똥, 물에 둥둥 뜨는 똥, 더럽게 까맣지 않고 황금색인 똥. 그걸 기대하며 앉지만 오늘도 실패다. 시속 100킬로로 내려온다. 기분 나쁘게 가라앉는다.
처음에는 그냥 몸에 안 좋은 음식을 자주 먹어서 그런가 보다 했다. 워낙에 짜장면만 먹어도 설사를 죽죽하는 타입이니까. 그런데 최근에는 좋은 식재료를 사서 건강에 좋다는 음식을 해 먹는데도 계속 배가 편치 않다. 이것저것 하고 싶고, 해야 할 일들은 많은데 이거 이래서는 생산성에 차질이 생기겠다.
더러운 예를 들어서 좀 그렇지만 이것은 다름 아닌 ‘불편함’에 관한 이야기이다. 사람들은 종종 이런 불편함을 그저 안고 산다. 해결의 의지가 없어서이기도 하고,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기도 한다. 나는 특히 이런 성향이 강하다. 물건이 고장 나 제대로 기능하지 못할 때나(우리집 슬라이딩랩에 칼날이 나갔지만 일년 째 계속 쓴다) 손톱이 길어 불편해 죽을 것 같을 때 그저 참고 지내는 것이다. 그러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것 같은 순간이 오면, 그때 슬슬 불편함을 돌아본다. 왜 그러는지 정확하게 파악할 수는 없다. 아마 게으름 내지는 두려움인 것 같다. 드물게 절약정신이 발동해서 일때도 있다. 물론 어쩔 때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그러기도 한다. 다만 건강의 문제일수록 불편함을 안고 간다는 건 위험하고도 어이없는 일이다.
낮에 용법에 따라 약을 먹었는데 벌써 괜찮다. 약을 먹은 이후에 오전에 못다 한 일들을 다 따라잡을 수 있었다. 불편함을 해결하고 나면 그제야 나의 불편함들이 결코 감수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빨리 해결했으면 좋았을걸… 하고 후회한다.
불도저처럼 일 처리하는 사람들을 가만히 관찰해 보면 이러한 불편함 들을 그때그때 해결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손톱이 길면 바로 깎고, 찝찝하다고 느끼기 전에 샤워를 한다. 우체국에 보낼 것은 보내고 청구서는 즉각 처리한다. 목표하는 일에 장애물이 되는 것들을 재빠르게 치워버리고(그게 사람이든, 물건이든, 상태이든) 갈길을 간다. 그래야 내 길을 갈 때 집중해서 바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웬일로 남편이 나에게 감정을 실어 말했다. “똥 얘기 좀 그만 좀 해, 좀 제발 좀!” 그도 그럴 것이 코로나에 걸린 1월 초부터 그는 거의 매일 마다 내 똥 상태에 대해 들어야 했다. 나는 똥에 진심이었으니까. 똥줄 빠지게 일하고 와서 듣는 똥 얘기가 달갑지는 않았을 거다. 어려서부터 개운치 않던 뒷 사정을 오늘 먹은 약으로 한방에 해결한 기분이다. 한참 공부할 나이 고삼 때도 뻑하면 부글부글 해서 좌불안석이었는데 나는 그 불편함을 왜 지금까지 안고 산 것일까.
프로덕티브 하게 살기 위해 프로바이오틱스와 과민성대장증후군 약(페퍼민트 오일)을 먹는다. 이제는 더 이상 이러한 불편함을 감수하며 살고 싶지 않다. 어쩌면 나는 쓸데 없는 데다 참을성을 다 써버려 정작 뚝심있게 해나가야 할 일들에 갖다 쓸 참을성이 늘 모자랐는지도 모른다. 불편함은 감수하는 게 아니라 해결하는 것이다. 그래야 나같은 게으름뱅이가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