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길역 5호선 환승 구간, 현타가 온 순간이었다.
‘이짓, 더 이상은 못해먹겠어!’
출퇴근 왕복 3시간에, 취재 차 돌아다니며 길바닥에 버린 시간까지. 안그래도 낭비로 점철된 내 젊은 인생이 계속적으로 안쓰럽게 낭비되고 있었다. 할 수만 있다면 길바닥에 버린 시간들을 주워담고 이어붙여, 나의 이십대를 몇 년 더 연장하고 싶었다. *타임푸어로 살던 그때, 내가 절실히 갈구하던 것은 시간을 맘대로 운용할 수 있는 자유였다.
* 타임푸어: 일에 쫓겨 자신을 위한 자유 시간이 없는 사람을 뜻하는 신조어
짧은 직장생활이었다. 그런데도 뭐가 그리 버거웠는지 나는 매일 소금에 절인 오이지처럼 쭈글거리며 다녔다. 명함에 적힌 나의 직책은 엄연히 취재기자였다. 그런데도 우리 사장님은 행사 취재에 동행할 때마다 나를 종놈 부리듯 부렸다. 뒤에 누가 있는지 보지도 않고 외투를 훌 벗었다. 얼른 받으란 뜻이었다. 그 다음에는 명품 핸드백을 휙 토스했다. 손이 없나 보았더니 있었다. 덕분에 나는 히터가 빵빵 나오는 뒤지게 더운 실내에서 나의 외투와 그녀의 외투, 노트북이 든 나의 가방과 그녀(ㄴ)의 가방까지 들쳐메고 다녀야 했다. 시간맞춰 기사님을 부르는 것도 내몫이었다. 그러니까 사장 때문인지, 술만 쳐먹으면 성희롱을 일삼는 회장놈(사장의 남편이었다) 때문인지, 월급같지도 않은 월급 때문이었는지 어쨌거나 나는 정말로 거기서 벗어나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오늘도 여느때처럼 불평에 가득 찬 얼굴로 혼자서 툴툴대던 참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그날이 떠오른 것이다. 출근하다 말고 신길역 한복판에 서서, 잰걸음으로 나서는 직장인들을 응시하던 날. 나의 분신이기도 한 그들이 환승구간을 지나며 내는 구두굽 소리는 쩌렁쩌렁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더는 못해먹겠구나.
신길까지 와도 회사가 있던 역까지는 열정거장이 넘었다. 하루는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갈길이 창창한 ‘겨우 환승구간’. 거기서 지칠대로 지쳐 숨을 고르다 발견한 것은 바로 와플 가판대였다.
딸기가 없는 딸기와플이었다. 와플의 농도는 매우 옅었다. 바삭하기는 했지만 고급 와플에서는 맛볼 수 없는 가벼움이었다. 그 가벼움을 왕창 올려진 딸기크림이 조금 커버했다. 과다한 양의 크림이 올려질 때마다 느끼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적당히 달고 적당히 느끼한 맛이 났다. 아마 한쪽에는 사과잼 같은 걸 발랐던 것 같다. 사과잼은 상큼한 맛을 더해주었다. 양도 많아서 먹어도 배고픈 직장인의 허기를 채우기 딱이었다. 와플을 들고 걸으면 그 긴 환승구간이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출근하지 않는 주말에도 생각나는 맛이었다.
지금도 가끔 그립다. 저렴한 가격처럼 부담스럽지 않던 와플의 맛. 와플 기계를 사서 비슷하게 흉내 내려 해 봤지만 불가능이다. 농도와 당도와 온도와 식감이 절대 달랐다. 지금 한국에서는 훨씬 고급진 와플을 팔 테니 언제 다시 그 맛을 볼 수 있을까.
그런데 좋아했던 것에 비해 와플을 그렇게 자주 사 먹지는 못했던 것 같다. 나는 늘 급했기 때문이다. 출근하기 급했고 퇴근하기 급했다. 신길은 나에게 그저 환승역일 뿐이었다. 종착지가 아닌 곳을 기분 좋게 둘러볼 여유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매사에 환승역을 지나다니는 사람처럼 살지 않았나 싶다. 삶의 구간 구간을 좀 더 여유롭게 즐기지 못하고 종착역이라 믿는 곳을 향해 서둘러 휙휙 지나쳐 버리기 바빴으니 말이다. 맛있는 와플을 그렇게 지나쳐버렸던 것처럼 말이다.
그때보다는 지금의 내가 훨씬 시간 부자이다. 맘만 먹으면 누구의 눈총도 참견도 받지 않고 살 수 있다. 그 시절 그렇게 갈망하던 것이 지금 나에게 제한적이나마 주어져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오늘 더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놀란다. 싸구려 와플이 아니라 벨기에 와플이든 크로플이든 얼마든지 사 먹을 수 있는 지금이, 맘대로 시간을 쓸 수 있는 지금이 더 행복하지 않다니. 그래서 그때, 어쩌면 나는 신길역에서 딸기크림와플을 들고 좀 더 행복할 수도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실은 행복이란 게, 우리가 갈구하는 것과 무관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행복은, 내가 있는 자리에서 기뻐할 수 있는 것을 기뻐하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신길역, 딸기크림와플을 추억한다. 빌어먹을 사장 핑계를 대기에 내 젊은 시절은 너무 소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