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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Oct 14. 2020

이사벨 1세(1451~1504)

위기는 기회로 만들어라

이글이글 타오르는 태양과 열정의 플라멩코, 강렬한 투우의 나라 스페인. 이베리아 반도에 위치하여 지중해와 대서양을 동시에 접하고, 유럽과 아프리카의 교두보 역할을 하는 중요한 지리적 위치의 스페인. “유럽 속의 또 다른 유럽”이라 불리며 많은 여행객에게 사랑을 받는 스페인이다. 스페인은 가톨릭과 이슬람 문화가 공존하고 있고, 유럽과 아프리카 대륙을 접하며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가 잘 혼재되어 있다. 세계 문화유산이 40개 가까이나 되는 문화 강국이며, 연간 외국인 관광객이 7천만 명이나 되고, 그로 인한 수입이 약 500억 유로(약 90조원)인 유명한 관광 국가이다.

지금은 훌륭한 여행지 중 하나로 사랑받는 스페인이지만, 한때는 고대 로마 제국에 비할 만큼 크나큰 세력을 가졌던 적도 있었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이후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식민지를 건설하며, 그 식민지로부터 막대한 양의 금과 은을 들여와 스페인의 국고는 넘쳐났다. 풍부한 해양 기술로 지중해와 대서양을 자기네 앞 바다인 마냥 호령하던 때가 있었다.


스페인이 처음부터 이런 대국이었던 것은 아니었는데, 이베리아 반도에 자리 잡은 스페인은 원래는 여러 개의 작은 공국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1000년대 이베리아 반도는 카스티야, 아라곤, 그라나다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작은 오합지졸의 세 공국은 유럽에서도 크게 주목받지 못한 작은 나라들에 불과했다. 그런 이베리아 반도의 세 왕국을 통일하고 고대 로마 제국에 비할 만큼 눈부신 발전을 이루어 놓은 이가 있었으니, 바로 이사벨 1세이다.


이사벨 1세는 여러 개의 작은 공국들에 불과했던 스페인을 통일하고,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을 지원함으로써 스페인을 유럽 최강대국으로 도약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녀 이후 스페인은 500여년을 유럽의 최강대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여성으로써 그런 위대한 업적을 이루어 낸 이사벨 1세, 그녀는 단지 운이 좋았던 것일까?      


무능한 아버지와 현명한 어머니

 

이사벨 1세는 당시 카스티야 왕인 아버지 후안 2세와 포르투갈의 공주였던 어머니 이사벨 왕후 사이에서 1남 1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이사벨의 아버지였던 후안 2세는 무능력한 왕이었다. 그는 백성들의 삶에 무관심했으며 자신의 안락한 삶이 유지된다면 권력에도 크게 욕심이 없었던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당시 실권은 수상이었던 “알바로데 루나”에게 있었고, 후안 2세는 꼭두각시 왕에 불과했다. 수상 루나 역시 카스티야를 잘 다스리는 것보다 오로지 자신의 권력 유지에만 집중했다. 그는 왕의 신임을 믿고 권력을 남용하며 갖은 횡포를 부렸다. 하지만 후안 2세는 그런 수상을 믿었고, 그를 처벌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아버지 후안 2세는 무능력한 왕이었지만, 이사벨의 어머니 이사벨 왕후(어머니와 딸의 이름이 같음)는 현명한 여성이었다. 그녀는 포르투갈의 공주로, 당시 포르투갈의 통일을 이루었던 왕족의 위엄과 패기가 느껴지는 여인이었다. 이사벨 왕후는 남편과는 달리 수상에게 잃어버린 왕의 권력을 되찾고자 했다.


후안 2세는 이사벨의 어머니 이전에 첫 번째 부인을 두었는데, 그 사이에서 엔리케라는 아들을 두었다. 그 전부인은 엔리케를 낳고 얼마 뒤 죽었다. 이사벨의 이복오빠가 되는 엔리케 왕자는 아버지인 후안 2세와는 달리 권력욕이 있었다. 이에 엔리케 왕자와 이사벨의 어머니 이사벨 왕후는 뜻이 맞았고, 수상 루나의 권력을 전복시키고자 손을 잡고 의기투합했다.

 

여러 차례의 정변 끝에 이사벨 공주가 두 살이 되던 해, 드디어 이사벨의 어머니와 엔리케 왕자는 정변에 성공하여 루나 수상을 처형하고, 그동안 잃어버린 왕실의 권력을 되찾았다. 수상 루나에게 자신의 권력을 의지하던 후안 2세는 수상의 처형에 충격을 받아 몸져누웠고, 얼마 뒤 죽었다. 이에 큰아들이었던 이사벨의 이복오빠 엔리케 왕자가 엔리케 4세로 즉위하였다.  

    


고단했던 유년시절


엔리케가 왕이 되기 전까지 그와 이사벨의 어머니는 좋은 정치적 파트너였다. 하지만 왕이 된 마당에 양어머니와 그의 자식들은, 왕 엔리케에게 위협이 되는 존재가 되었다. 특히 이사벨의 어머니는 정치적 감각이 탁월한 여인이었다. 그녀가 마음먹고 움직인다면, 그녀의 친아들을 왕위에 오르도록 할 능력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를 닮아 무능력하고 소심한 면이 있었던 엔리케는 혹여나 그들이 자신에게 위협이 될까 두려웠다. 엔리케는 이사벨의 어머니와 세살박이 이사벨, 그리고 이제 겨우 한 살이 된 이사벨의 남동생 알폰소를 아레발로라는 시골의 작은 성에 유폐시켜 버린다.


친아들은 아니었지만 그동안 엔리케는 이사벨의 어머니를 극진히 모셨고 존경했다. 한때는 목표를 같이한 좋은 정치적 파트너였다. 그런 엔리케에게 배신을 당하고 쫓겨나자, 이사벨의 어머니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왕비라는 최고의 신분에서 최하층 평민의 생활로 전락해 버린 이사벨의 어머니는 결국 그 충격을 이겨내지 못했다. 이사벨의 어머니는 현실을 도피하며 정신줄을 놓아 버렸다.


한 나라의 공주로 곱디곱게 자라야 했던 이사벨은 이제 소녀가장이 되었다. 이사벨은 정신이상자 어머니를 모시고, 일상적인 생활을 하기 위한 집안일들을 해야 했으며, 어머니를 대신하여 어린 남동생도 돌보아야 했다. 이사벨 공주는 밥 짓는 법, 남동생을 목욕시키는 법 등을 배웠고 직접 생활용품을 사러 다녀야했다. 시련 속에 정신을 놓아버린 어머니와는 달리 이사벨은 그런 상황의 변화를 묵묵히 인내하며 견뎌내었다.  



위기는 기회가 되어


모든 일에는 양면이 있는 법, 이사벨의 어머니가 정신이상자가 되었다는 소식이 엔리케 왕에게 전해지자, 엔리케는 어머니 없는 어린 남매가 더 이상 자신에게 위협이 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또한 이사벨을 다른 나라 왕과 결혼시키면 좋은 정치적 동맹을 맺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했다. 엔리케는 이사벨과 그 동생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돈을 지급했으며, 훌륭한 학자를 보내어 그들이 교육 받을 수 있도록 하였다. 이제 이사벨은 일상생활을 위한 육체적 노동에서는 벗어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사벨이 편안하게 쉴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레발로에서의 시간은 이사벨에게 고통과 좌절의 나날이었다. 하지만 이사벨은 그 시간의 고통과 좌절에 불평만 하며 시간을 보내지는 않았다.  


이복오빠 엔리케가 보내준 선생님 안나로부터 이사벨은 다양한 지식은 물론, 어떠한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강인한 정신력을 배웠다. 평민들의 삶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직접 체험하며, 그녀는 백성들의 가난과 고통을 어루만질 수 있는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왕족으로도 성장할 수도 있었다.


아레발로에서의 10년은 분명 그녀에게 많은 어려움의 시간이었지만, 그녀는 그 시련을 인생의 훌륭한 자양분으로 삼으며 어느덧 어엿한 숙녀로 성장해가고 있었다.



왕권에 한 발자국 다가서다


작은 마을 아레발로에서 여느 평범한 소녀처럼 자라던 이사벨에게 새로운 인생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 한 귀족이 이사벨 남매를 자신의 성에 데리고 가, 앞으로의 안락한 삶을 보장해 주겠다고 한 것이다. 그 귀족은 이사벨의 남동생인 알폰소를 이용해 권력을 획득하려는 마음이었다.

 

이사벨의 이복오빠인 엔리케 왕은 자식을 볼 수 없는 장애가 있었다. 카스티아 왕국에서는 후사에 대한 논의가 끊이지 않던 중이었고, 귀족들은 자연히 이사벨의 남동생인 알폰소를 후계자로 지목하였다. 그러던 중 엔리케 왕의 왕후가 갑자기 딸을 출산하게 된다. 귀족들은 왕후가 출산한 딸 후안나가 왕의 자식이 아니라, 다른 남자와 간통하여 낳은 아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귀족들과 권력 다툼 중이었던 엔리케는 후안나가 자신의 핏줄이라 믿고 싶었고, 귀족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그 아이를 왕위계승자로 지목해버린다. 귀족들은 반발하여 엔리케의 퇴위를 요구했고, 알폰소를 새로운 국왕으로 맞이하겠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하여 엔리케 왕과 알폰소를 지지하는 귀족들 사이의 기나긴 왕위쟁탈전이 시작되었다.


어머니의 탁월한 정치 감각을 물려받은 이사벨은 이 전쟁에서 자신의 남동생이 불리하다는 사실을 금방 깨닫는다. 비록 귀족들이 자신과 남동생을 돌봐주지만, 상대는 왕이었다. 이사벨은 이 전쟁에서 자신들이 이길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판단했다. 그리하여 그녀는 아주 현명하면서도 위험한 선택을 하게 되는데, 엔리케 왕에게 투항을 결심한 것이다. 열두 살의 어린 소녀 이사벨은 스스로 엔리케의 인질이 되기로 결심하고, 남동생 알폰소에게는 국왕을 배반하지 않을 것을 다짐하도록 하였다. 그 결과 이사벨은 엔리케의 왕궁에 감금되어 3년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런 이사벨의 결단과 희생에도 불구하고 전쟁은 계속되었다. 엔리케의 인질로 3년을 지낸 이사벨은 더 이상 감금되어 있는 것이 해답이 아니라고 판단했고, 다시 한 번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그녀는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한다. 이사벨은 3일 밤낮을 헤매어 천신만고 끝에 남동생의 성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녀 역시 남동생을 왕으로 만들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자 결심했다.  


하지만 세상일은 알 수 없는 법. 남동생과 다시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남동생 알폰소가 갑자기 죽어버린 것이다. 왕위계승권의 핵심인물인 알폰소가 죽은 것은 이 전쟁의 명목이 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구심점을 잃은 이사벨 쪽의 귀족들은 서서히 무너지게 되었다. 하지만 기나긴 전쟁 중에 하나뿐인 동생까지 잃은 이사벨은 그 전쟁에서 그대로 패배를 선언할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자신이 스스로 왕이 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기나긴 전쟁은 모두에게 해가 되는 것이었다. 특히 많은 백성들의 삶을 피폐화시키고 있었다. 안 그래도 힘없는 카스티야는 더욱 황폐해져갔다. 또 현실적으로 생각해봤을 때, 비록 이사벨이 많은 귀족들의 지지를 받고 있었지만 국왕 알폰소를 이기는 것에는 무리가 있었다. 지혜로운 이사벨은 알폰소와 합의를 하 전쟁을 끝내고자 했다. 이사벨은 알폰소의 현재의 왕 자리는 보장하나, 그녀의 딸 후안나의 왕위계승권은 반대했다. 알폰소 역시 자신의 왕 자리를 보장해주는 이사벨의 제안이 나쁘지 않았다. 알폰소는 자신의 왕 자리를 위협하지 않겠다는 이사벨의 다짐을 받고, 카스티야 왕국의 다음 왕위계승권자는 이사벨로 승인하며, 4년여에 걸친 긴 내전 끝을 맺게 된다.


이사벨은 4년 동안의 긴 전쟁을 견뎌내고, 작은 시골 마을의 소녀에서 카스티야 왕국의 왕위계승권자가 되어 있었다. 지리한 전쟁 속에서 3년 동안 인질이 되어 갇혀 있기도 했고, 하나뿐인 혈육인 남동생을 잃는 깊은 슬픔을 겪어야 했지만, 그 시련 속에서 자신이 여왕이 되는 기회 또한 발견한 셈이다.   


  

또 다시 위기, 그리고 기회

 

왕위계승권자 이사벨은 어느덧 16살이 되었다. 그녀는 하얀 피부와 아름다운 금발, 맑게 빛나는 아름다운 눈동자를 지닌 아름다운 숙녀로 성장해 있었다. 이제 그녀도 결혼할 나이가 되었다. 엔리케 국왕은 이사벨을 포르투갈의 국왕 아폰수 5세에게 시집보내 자신의 권력을 더 공고히 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이사벨은 자신의 결혼이 정치적으로 용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자신보다 더 큰 힘을 가진 누군가에게 종속되는 결혼 대신 동등한 입장에서 함께 일구어나가는 부부의 미래를 꿈꾸었다.

 

그녀는 오빠 몰래 직접 신랑감을 찾았다. 친분이 있는 전도사들을 각국에 파견하여 그녀의 신랑감들을 물색하도록 한 것이다. 아르곤의 페르난도 왕자는 준수한 외모에 패기가 넘쳐흐르는 멋진 젊은이였다. 전도사들에게 페르난도에 대해 칭찬 가득한 이야기를 듣자, 아직 얼굴도 보지 못한 그 청년에게 이미 이사벨은 마음을 빼앗겼다. 비록 아라곤은 포르투갈에 비해 힘이 없는 왕국이었지만, 그 점 또한 이사벨은 마음에 들었다. 카스티야에 비해 막강한 힘을 가졌던 포르투갈 왕과 결혼한다면 카스티야가 포르투갈에 합병되겠지만, 힘이 비슷한 아라곤과 결합한다면 대등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사벨은 페르난도와 결혼하기로 결심하였다 하지만 오빠 엔리케가 그녀의 뜻을 따라줄 리 없었다. 엔리케는 강대국 포르투갈 국왕과의 혼사를 서둘렀고, 힘이 없었던 이사벨은 어찌할 도리 없이 전전긍긍할 뿐이었다.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했던 이사벨은 가만히 있다가는 포르투갈 국왕과 결혼할 판이었다. 그녀는 또다시 궁궐을 탈출하는 거사를 감행하며 자신의 미래를 개척한다.


다행히 무사히 궁을 빠져나온 이사벨은 한 수도원에서 페르난도를 만나 오빠의 허락 없이 결혼식을 올린다. 이사벨과 페르난도의 결혼 소식에 백성들은 열렬한 지지를 보내주었다. 사실상 그 결혼은 엄청난 위험을 무릅쓰는 결정이었다. 결혼식이 이루어지기 전에 페르난도와 만나지 못할 수도 있었고, 그 전에 국왕이 군대를 파병한다면 그대로 잡혔을 것이다. 하지만 대담한 이 공주는 차분하고 당차게 이 위기의 상황들을 대처하였다. 그녀는 아라곤에 밀사를 보내 페르난도 왕자가 속히 자신이 있는 곳으로 와줄 것을 부탁했다. 이에 마부로 변장한 페르난도가 카스티야 국경을 몰래 넘었고 천신만고 끝에 그녀가 있는 곳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엔리케 왕은 자신의 허락 없이 결혼한 이사벨을 용서할 수 없었다. 분노한 엔리케는 이사벨의 왕위계승권을 박탈해버리고, 자신의 딸인 후안나를 왕위계승자로 임명했다. 금까지의 결과로만 본다면 오빠의 말을 무시한 이사벨의 결정은 어리석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매우 파격적이고 주체적이던 이사벨의 그 결정은 뒷날을 보면 아주 현명것이다. 그것은 뒤에서 다시 살펴보겠다. 어쨌든 용감한 공주 이사벨은 또다시 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만들며 멋진 왕자 페르난도와 부부가 되었다. 그들 부부는 작은 카스티야와 아라곤을 대 스페인 제국으로 만드는 기틀을 마련했고, 죽는 날까지 서로를 사랑하고 의지하며 함께하였다.  



아직 끝나지 않은 왕위계승전쟁


이사벨의 결혼으로 인해 엔리케 국왕은 그녀의 후계권을 박탈해버리고 자신의 딸인 후안나를 후계자로 지목하였다. 하지만 이사벨은 근본을 알 수 없는 후안나에게 왕위를 물려줄 수 없다며 의회에 반박문을 제출하였다. 이사벨은 자신이 합당한 왕위계승자이며 결코 왕권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포하였다. 이는 선전 포고나 다름없었다. 이에 이사벨을 지지하는 귀족들이 규합하였고, 그 세력은 생각보다 엄청났다. 생각했던 것보다 후폭풍이 크자 엔리케 왕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러던 중 엔리케 왕이 사망하게 되었고, 그 소식을 들은 이사벨은 즉시 왕위 즉위식을 거행, 백성들의 환호 속에서 드디어 카스티야의 여왕이 되었다. 카스티야 왕궁에서 이루어지지 못한 대관식은 매우 간략했지만, 여왕의 즉위 소식이 카스티야 전역으로 퍼져 나가자 백성들은 젊은 여왕에게 열렬한 지지를 보냈다. 백성들의 지지를 등에 업은 이사벨은 곧 의회에서도 승인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포르투갈을 등에 업은 후안나 역시 왕위 즉위식을 거행하며 카스티야 여왕으로 등극하였다. 후안나는 이사벨과의 왕위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기 위해 외삼촌이 되는 포르투갈의 국왕 아폰수와 결혼하기까지 했다. 이사벨과 후안나는 서로 자신이 합당한 왕위계승자라고 주장하며 또다시 기나긴 왕위 계승 전쟁에 돌입한다.


초반의 이사벨의 군대는 전쟁 경험이 많은 포르투갈의 아폰수 군대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였다. 하지만 남편 페르난도가 아라곤의 군대를 이끌고 등장하자, 조금씩 상황이 역전되기 시작했다. 페르난도는 직접 전쟁에 참여하여 진두지휘하며 점차 상황을 역전시켰다. 이사벨 역시 친히 전쟁터에 나가 병사들을 격려했다. 여왕의 방문에 사기를 충전한 병사들은 여왕을 위해 죽음도 불사하리라 다짐했다.


결국 이사벨의 군대는 5년여의 지루한 전쟁 끝에 아폰수의 군대를 무찔렀다. 전쟁에서 패배한 아폰수는 후안나를 데리고 포르투갈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길고도 길었던 카스티야의 왕위계승전쟁은 끝이 났고, 이사벨은 카스티야의 단 하나뿐인 완벽한 여왕이 되었다. 포르투갈과의 전쟁의 승리는 이사벨의 왕위를 공고했으며, 카스티야 백성들에게도 희망과 자신감을 심어줄 수 있었다.     



끊임없이 노력하는 여왕


이처럼 이사벨1세의 왕위는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었다. 여러 차례의 치열한 전쟁 끝에 힘들게 '얻어낸' 것이다. 힘들게 얻어낸 그 카스티야의 왕 자리를, 그녀는 남편에게 위임하지 않았다. 보통의 여왕이 남편에게 국왕의 자리를 주고 자신은 왕후가 되었던 것과 다른 것이다. 이사벨은 이전의 관례대로 국왕이라는 이름은 남편에게 주었지만 실질적인 권한은 자신이 갖도록 남편과 합의하였다. 마음이 넓은 남자였던 페르난도는 아내와의 그 약속을 잘 지켜주었고, 카스티야의 실제 통치자는 이사벨이 되었다.


이사벨은 백성들의 삶을 개선시키고, 카스티야를 최고의 국가로 만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였다. 그녀는 카스티야 각지를 돌며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해나갔다. 그녀는 더 많은 곳을 둘러보기 위해 소박한 수도원에 머물며 그곳에서 수녀들과 침식을 함께 했다. “여왕께서 일하시던 방에는 종종 동이 틀 때까지 불이 꺼지지 않곤 했다.”는 기록처럼 이사벨은 성심을 다해 국민을 위해 일했다. 임신을 했을 때조차 일을 손에서 놓지 않았으며, 다섯 자녀를 모두 다른 곳에서 출산할 정도로 쉬지 않고 돌아다니며 일했다. 너무 열심히 일하던 이사벨은 심지어 수차례 유산을 경험하기도 했다. 이러한 여왕의 부단한 노력 덕분에 황폐한 약소국 카스티야는 점차 강대한 왕국으로 재탄생해나갔다.


당시의 이베리아 반도는 카스티야와 아라곤, 그리고 남부의 그라나다라는 국가로 나뉘어 있었다. 이사벨과 페르난도의 결혼으로 카스티야와 아라곤은 거의 통일되었지만(통치자는  페르난도로 되어있었지만, 실제로는 이사벨과 페르난도 두 사람이 각각 독립적으로 각국을 통치하였으므로 실제적인 통일은 이사벨의 손자대에 이르러 완성되었다.) 이슬람교를 믿는 그라나다는 완전히 분리되어 있었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이사벨과 페르난도 부부는 이베리아 반도가 영토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통일을 이루기를 소원하였다.


이사벨 부부는 이베리아 반도를 하나님의 영향력 아래 두겠다는 목표 하에, 당시 카스티야나 아라곤에 비해 전혀 약소하지 않았던, 그라나다와의 전쟁에 돌입하였다. 이 전쟁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사벨 부부는 처절한 전쟁을 이어나갔고, 마침내 승리하였다. 드디어 스페인 민족이 장장 700년 동안 꿈꿔온 스페인의 통일을 이루어냈다. 이 업적만으로도 그녀는 스페인 역사에서 길이 남을 위대한 군주였다. 하지만 그녀는 앞으로 더 찬란한 스페인의 역사를 펼친다.     



새로운 기회를 발견하다


이사벨이 스페인을 지배하던 시대 유럽에서는 대항해의 물결이 일고 있었다. 당시 항해에 심취해있던 콜럼버스는 지구는 둥글다는 주장을 굳게 믿으며 그것을 증명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는 자신의 그 위대한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당시 대해양국이던 포르투갈 국왕에게 자신을 후원해줄 것을 부탁했다. 하지만 포트투갈 왕은 그를 미치광이, 사기꾼으로 치부하며 그의 요구를 일언지하에 거절하였다.


하는 수 없이 스페인으로 온 콜럼버스는 이사벨과 페르난도에게도 자신의 계획을 설명했다. 페르난도 역시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콜럼버스를 미치광이로 치부해버렸다. 하지만 이사벨은 콜럼버스 제안에 흥미를 보였다. 당시 포르투갈과 해상패권을 두고 맞서고 있는 상황에서 콜럼버스가 대서양 항해에 성공한다면 이는 분명 스페인에게 엄청난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었다. 이사벨은 콜럼버스의 대항해를 후원하는 모험을 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콜럼버스의 그 항해는 대성공이었고, 그로 인해 스페인은 전 세계에 수많은 식민지를 건설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식민지로부터 막대한 금과 은을 확보함으로써 '대 스페인 제국' 시대의 기틀을 다질 수 있게 되었다. 이사벨 1세가 지금과 같은 명성을 가질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 덕분이다.    

 



그녀에게 배울 것


위기라는 말은 위험과 기회합해말이다. 모든 위기에는 기회가 숨어있는 법이다. 그녀의 인생도 마찬가지였다.


어린 시절, 공주였던 그녀는 아레발로의 작은 성에 유폐되었고, 그로 인해 어머니는 정신이상자가 되었다. 당시의 이사벨은 너무 어렸기에 충격을 받진 않았겠지만, 세상일에 대해 알만한 나이가 된 후 자신의 상황을 생각해본다면, 이 어린 공주는 억울한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자신을 그렇게 만든 이복오빠에 대한 원망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고단한 생활을 인내하였고, 오히려 그 시간을 훗날 좋은 군주가 될 자질을 습득하는 시간으로 삼았다.

 

엔리케와의 왕위쟁탈전쟁 중 하나뿐인 동생이 죽었을 때, 그녀는 전쟁의 목적을 잃고 좌절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위기 속에서 자신이 스스로 왕이 되는 기회를 발견하고, 현명하게 처신하며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였다.  


오빠가 강제로 결혼시키려고 하는 위기 속에서도 페르난도와의 결혼이라는 또다른 기회를 발견했고, 적극적인 행동으로 자신의 미래를 개척하였다. 여자가 먼저 청혼을 한다는 것은 현대의 여성들에게도 생소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사벨은 페르난도에게 먼저 청혼하면서 자신의 미래를 적극적으로 개척하였다. 이사벨이 선택한 페르난도는 훌륭한 남자였다. 페르난도는 결혼 후에도 실질적인 통치권은 자신이 갖겠다는 이사벨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이사벨은 그와 결혼함으로써 남편에게 모든 권한을 위임하는 대신 자신이 직접 통치권을 유지하고 통치할 수 있는 기회 또한 갖게 된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모든 사람이 우습게 여기며 미치광이로 치부했던 콜럼버스에게서 그녀는 새로운 시대를 열 기회를 발견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 결과는 우리가 아는 그대로이다.


그렇게 그녀는 매순간, 위기에서 기회를 발견하며 한 단계 한 단계 성장해 나다. 그녀가 대 스페인 제국의 초석을 닦은 여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늘 행운의 여신이 그녀와 함께 해서가 아니었다. 그녀가 강대국 스페인을 만든 것은 절대로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위기는 닥치지만, 그 위기에서 기회를 잡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위기에는 기회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할 수 있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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