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에 겨워 지나치게 흥분했던 것일까. 재롱을 떨고 까불다가 구름 위에서 땅으로 곤두박질치며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나는 호랑이 굴에서 살아 나온 토끼였다. 이대로 못난이 토끼로 있을 수는 없었다. 아내로서 엄마로서 더욱더 성숙해져야 한다고 나를 다그쳤다.
“얘들아, 이것도 먹어봐. 맛있어. 묘흥.”
계속되는 외로움과 자기부정, 그리운 호랑이 가족 생각에 나도 모르게 참고 있었던 호랑이 말이 불쑥 튀어나와 버렸다. 게다가 피 묻은 날고기까지 내밀면서. 갑작스러운 일에 나도 놀랐지만, 새끼 토끼는 까무러쳐 버렸다. 내 비밀을 알고 있는 수컷 토끼까지도 눈을 크게 떴다. 놀라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을 것이다. 호랑이 말을 하며 날고기를 먹으라고 하는 토끼는 처음 봤을 테니까.
수컷 토끼는 원래가 감정변화가 없는 토끼였다. 튀어나온 눈알을 서둘러 제자리에 돌려 넣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행동했지만, 날고기 조각을 같이 먹어 주지는 않았다. 보통 토끼와는 다른 내 행동에 대해 그러지 말라고 강요하지는 않았지만, 공감해 주지는 못했다. 우리의 굴 안에서만이라도 수컷 토끼가 나와 함께 날고기를 먹어주었더라면, 호랑이 말을 조금이라도 익혀서 가끔은 호랑이 말로 대화를 했더라면, 사춘기를 겪는 새끼 토끼들 앞에서 내 편을 들어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참았던 원망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영원할 것 같았던 호랑이 굴에서의 불안한 나날에도 끝은 있었고, 영원히 행복할 것 같았던 섬나라 생활도 어딘가 달라지고 있었다. 나는 한껏 수컷 토끼를 사랑했고, 새끼를 용감하게 키우려고 애썼다. 섬나라 토끼와 잘 지내려고 노력했다. 호랑이와도 살아낸 내가 같은 종족인 토끼와 못 살 이유가 없을 거라고 생각한 것은 내 오만이었다.
호랑이 가족은 몸집이 작은 나를 좋아해 주었다. 내 기다란 귀부터 발가락까지 전부 다 예쁘다고 말해주던 아빠 호랑이가 보고 싶었다. 다른 동물들이 할퀴지나 않을까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주던 엄마 호랑이가 생각났다. 산속의 이곳저곳을 데려다주던 큰오빠 호랑이가, 말이 없고 불쌍한 작은오빠 호랑이가 너무나 그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