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끼 토끼들도 이제 자기 일은 스스로 할 수 있을 만큼 자랐다. 내가 없어도 그들은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마음을 정하고 수컷 토끼에게 말했다. 큰잠자리 타는 곳까지만 같이 가주면 혼자서 산으로 돌아가겠다고. 수컷 토끼는 놀라면서도 예상한 듯한, 체념한 듯한 표정이었다.
어지간한 일에는 놀라지 않는 수컷 토끼지만, 호숫가에서 본 토끼들의 모습은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자신만을 의지하고 섬나라로 오게 된 내가 그렇게 된다는 것이 슬프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했고, 공동체 역할에 충실할 수밖에 없었다고 자기 합리화를 하는 그의 마음도 보였다. 원망하는 마음과 이해하는 마음이 번갈아 들었지만, 확실한 것은 이대로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마음을 정하고 나니 하루도 더 섬나라에 머물기 싫어졌다. 며칠을 고민하며 쓴 기나긴 편지를 새끼 토끼에게 남기고, 수컷 토끼와 나는 다음날 당장 큰잠자리 광장으로 향했다. 젊고 행복에 겨웠던 그때는 먼 것도 몰랐는데, 나이가 들어버린 우리는 뛰다가 쉬고, 뛰다가 쉬기를 반복하며 큰잠자리 광장에 도착했다. 무서운 소리를 내며 날갯짓을 준비하는 큰잠자리를 향해 나는 뛰었다. 무정하게 아빠 호랑이와 이별했던 그때처럼, 이번에도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깡충하고 큰잠자리의 배에 올라탔다.
“이방토끼야. 산에서 잘 지내고 있어. 나는 새끼를 좀 더 키워야 하고, 공동체 일도 해야 해서 지금은 같이 갈 수 없어. 공동체 일이 끝나면 반드시 호랑이 굴로 찾아갈게. 그때는 그곳에서 같이 살기로 하자.”
수컷 토끼는 다급한 소리로 외쳤지만, 우리는 둘 다 그 말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알고 있었다. 수컷 토끼의 목소리는 큰잠자리의 날갯짓 소리에 묻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