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잠자리는 아직도 날고 있었다. 안심한 탓이었을까, 나도 모르게 깜빡 잠이 들었다. 수컷 토끼와 함께했을 때는 순식간이라고 생각했는데, 혼자서 하는 하늘 여행은 두렵고도 길었다.
큰잠자리는 옛날 수컷 토끼와 함께 탔던 광장에 도착했다. 나는 수컷 토끼에게서 배운 대로 인간들의 움직임이 멀어지기를 기다렸다가 광장을 빠져나왔다. 나는 거침없이 호랑이 굴로 향했다. 작은 오솔길이 큰길로 바뀌기도 했고, 큰오빠 호랑이와 다니던 샛길이 없어져서 한참을 돌아가야 했지만, 나는 기억하고 있었다. 개울가를 따라 한참을 올라가서 개울이 시작되는 곳, 무성한 덩굴로 가려진 큰 바위 밑에 있는 우리의 굴. 다리에 힘이 다 빠질 때쯤에야 내가 살던 호랑이 굴이 보였다.
‘아빠 호랑이는 지금도 굴 안이 떠나갈 듯이 포효하고 있을까? 엄마 호랑이는 맛있는 사슴을 사냥해 왔겠지? 성질 급한 큰오빠 호랑이는 어서 섬나라 이야기를 해 보라고 재촉하겠지? 작은오빠 호랑이도 슬며시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거야.’
모두를 놀라게 해 줄 생각에, 조용히 그러나 급하게 뛰어 들어갔다. 하지만 굴에는……, 아무도 없었다. 온기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나는 털썩하고 주저앉고 말았다.
굴의 여기저기에는 뽀얀 먼지와 거미줄 사이로 우리가 함께했던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벽에 패인 호랑이 발톱 자국과 바닥에 남아 있는 동물의 뼈가 그리움으로 다가왔다. 먼지 묻은 사슴 뼈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아보았다. 아빠 호랑이의 냄새가 났다. 늘 뒷다리가 아프다고 했던 아빠 호랑이. 아빠 호랑이의 다리를 정성껏 주물러 주지 않았던 것이 생각났다. 후회의 눈물이 쏟아졌다.
시간은 천천히 흘렀다. 혼자서 생활해 보고 나는 알게 되었다. 나는 혼자가 되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을. 내 삶에는 언제나 누군가가 있었다. 호랑이 가족의 잔심부름, 토끼 가족의 먹거리 준비와 토끼 굴 청소가 싫기만 했는데, 식구들을 위해 몸을 움직였던 그때가 그립기만 했다. 하지만 마냥 그리워하며 지낼 수만은 없었다.
‘이제 나는 정말 혼자야. 누구도 내 삶을 대신해 줄 수 없어. 내 행복은 내가 만드는 거야.’
나는 앞발을 불끈 쥐었다. 하지만 젊은 날을 섬나라에서 보낸 나에게는, 이제는 이곳 산속이 또 낯선 곳이었다.
‘실컷 날고기를 먹어 보리라, 새 토끼 친구를 사귀어 보리라, 그리웠던 계곡을 매일매일 산책하리라.’하고 마음먹었지만, 너무나 외로웠다. 잠이 덜 깨어 정신이 몽롱할 때는 여기가 섬나라인지 산속인지, 지금 내가 어디 있는지 모를 때도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어버린 것 같은 그 기분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먹먹한 것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옆에는 아무도 없었고, 어둠이 내려앉아도 돌아올 그 누구도 없었다. 굴에 무언가가 부딪히는 소리만 들려도 새끼 토끼가 돌아온 줄 알고 나도 모르게 깡충하고 마중을 나간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섬나라에서 호랑이 가족을 그리워했던 것처럼, 이제 또 나는 산에서 섬나라 토끼 가족을 생각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