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에, 나무 둥치에, 동굴 벽에도 가리지 않고 적었다. 내게 벌어진 많은 일, 나와 관계 맺은 많은 인연. 나는 그것들을 언제까지나 기억하고 싶었다. 글을 써서 남기기로 했다, 그들을 잊지 않기 위해.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그들의 이야기를 적으면 그 이야기 속에서 내가 보였다. 호랑이 가족의 무서운 이야기 속에는, 그들에게 사랑받는 내 모습이 담겨 있었다. 섬나라에서 내가 느낀 이질감 가득한 이야기 사이에서는, 행복한 순간들이 비죽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나를 따돌린 산골 동물들 이야기를 적노라면, 잘난 체 뻐기기만 했던 내 모습이 튀어나와 얼굴이 화끈거렸다. 야속하다고 생각했던 섬나라 토끼들. 나는 과연 그들의 진심을 알려고 했던 걸까. 원망만 했던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린 내 이야기도 적어 보았다. 불안한 눈빛으로 몸을 웅크리고 있는 작은 토끼가 글 속에 있었다. 나는 떨리는 두 팔로 작은 토끼를 힘껏 보듬었다.
“무서웠지……. 다 지나갔어. 이제 괜찮아.”